주간동아 794

2011.07.04

누굴 위해 벌거벗은 채 머리 손질하나

몸단장하는 여인

  • 입력2011-07-04 12:1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누굴 위해 벌거벗은 채 머리 손질하나

    ‘몸단장’, 피카소, 1906년, 캔버스에 유채, 151×99, 버펄로 올브라이트녹스 갤러리 소장.

    연예인이나 일반 여성이 민낯 사진을 인터넷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것이 유행이다. 민낯 종결자가 되려면 화장으로 외모를 빛나게 할 때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목구비와 피부가 남보다 돋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아름다워지고자 남자가 결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비록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여자는 끊임없이 외모를 업그레이드하려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여자가 외모를 돋보이게 하려고 애쓰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랑받고 싶어서다. 사랑받기 위해 몸단장하는 여인을 그린 작품이 퐁텐블로 화파의 ‘몸단장하는 여인’이다.

    속살이 비치는 날개옷을 입은 여자가 목걸이를 만지면서 보석함에 든 반지를 꺼내고 있다. 화장대에는 나체 여인상을 조각한 거울과 장미꽃, 그리고 빗이 놓여 있다. 비스듬히 놓인 거울에 여인의 얼굴이 반쯤 보인다. 여인 뒤에서 하녀는 열심히 욕조를 청소하는데 이는 여자가 목욕을 끝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뒤에 열려 있는 창문은 아침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퐁텐블로 화파는 16세기 프랑스 퐁텐블로 황실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가 집단을 말한다. 이 작품에서 장미꽃은 비너스를 상징하는 것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나타내며, 여자가 들고 있는 반지는 성적 결합을 뜻한다. 비스듬한 거울은 사랑의 갈등을 암시하며 여자가 매춘부라는 것을 보여준다.

    미모의 여자일수록 몸매를 뽐내는 것에 열중한다. 자신감 덕분이다.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몸단장’은 이렇듯 몸을 자랑스럽게 뽐내는 여자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피카소가 자신의 첫 번째 연인이던 페르낭드를 모델로 그린 것. 피카소는 고향 스페인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면서 모델들과 문란한 성생활을 즐겼다. 그는 몽마르트르에 살고 있던 누드모델 페르낭드 올리비에를 동네 술집에서 만났고, 자신의 작품을 봐달라며 그를 유혹했다.



    두 사람은 사귄 지 1년 만에 동거에 들어갔는데 사랑에 빠진 피카소는 페르낭드가 자신의 아틀리에에만 있기를 원했다. 다른 사람과 함께 그를 소유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피카소의 질투심 때문에 자유롭게 외출하지 못한 페르낭드는 아틀리에에서 누드로 돌아다녔고 피카소는 이런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페르낭드와 동거하면서 피카소는 광란의 밤을 즐겼다.

    두 사람은 8년 동안 함께 살았다. 페르낭드는 다른 여자와 끊임없이 사랑을 나누는 피카소의 질투심을 유발하고자 젊고 잘생긴 화가 우발도 오피와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페르낭드가 다른 남자와 떠나자 피카소는 질투 대신 해방감을 느꼈다.

    그림에서 페르낭드는 거울을 들고 있는 하녀 앞에서 벌거벗은 채 갈색 머리를 손질한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거울을 통해 확인하는 모습은 전통적인 비너스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피카소는 전통적인 비너스의 모습과 다르게 페르랑드를 적극적인 여인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에서 거울을 들고 있는 여자는 피카소 자신을 상징한다. 하녀 이미지를 통해 페르낭드의 아름다움에 존경을 표한 것이다.

    누굴 위해 벌거벗은 채 머리 손질하나

    (좌)‘몸단장 하는 여인’, 퐁텐플로 화파, 작가 미상, 1559년경, 목판에 유채, 105×70, 우스터 예술박물관 소장. (우)‘몸단장하는 캐시’, 발튀스, 1933년, 캔버스에 유채, 165×150, 파리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여자는 남자와 사귈 때 가장 공들여 몸단장한다. 여자가 이렇게 몸단장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곁눈질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다. 또한 여자는 남자에게 아름다움을 칭송받는 것보다 다른 여자가 어떤 평가를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데이트를 앞둔 여자의 몸단장을 그린 작품으로는 발튀스(본명 발타자르 클로소브스키 드 롤라, 1908~2001)의 ‘몸단장하는 캐시’가 있다. 이 작품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1847년)의 한 장면을 묘사했다.

    히스클리프가 마구간에서 나오다 우연히 캐시와 하녀 넬리의 이야기를 엿듣는 바로 그 장면이다. ‘폭풍의 언덕’에서 캐시와 히스클리프의 사랑이 비극으로 바뀌는 중요한 대목이다. ‘몸단장하는 캐시’에서 넬리는 캐시 머리를 빗겨주고 있고, 캐시는 실내 가운을 열어젖힌 채 화장대 앞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본다. 작품 왼쪽 어두운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가 히스클리프다.

    히스클리프는 이 작품에서 원작과 다르게 정장 차림의 중산층 남자로 묘사됐는데 발튀스는 “히스클리프의 모습에 나 자신을 그려넣을 줄은 나도 몰랐다. 오늘날 이 그림을 보니 젊은 날 반항했던 나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