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4

2011.07.04

‘스페인의 아이유’ 도대체 말이 되니?

러시안 레드의 프로모션 투어

  • 정바비 julialart@hanmail.net

    입력2011-07-04 11: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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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의 아이유’ 도대체 말이 되니?
    1980~90년대부터 팝음악을 즐겨 들은 사람이라면 스티비 원더나 이글스 같은 매머드급 아티스트가 줄지어 내한공연을 하는 것을 볼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내한공연시장의 활성화는 상대적으로 팝 음반시장의 침체를 더욱 두드러져 보이게 한다. 원래 우리나라는 팝음악이 잘 팔리던 곳이다. 일본이라는 압도적 규모의 시장과 비교하다 보니 작아 보였을 뿐, 한때는 팝 음반 판매가 꽤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내한공연은 정말 가뭄에 콩 나듯 드물었지만, 신인가수가 음반을 홍보하려고 우리나라를 찾는 일은 심심치 않게 있었다. 소위 ‘프로모션 투어’다.

    프로모션 투어로 한국에 오는 가수는 ‘뉴 페이스’가 많다. 토리 에이머스나 백스트리트 보이스 같은 대스타도 데뷔 직후에는 우리나라를 찾아 자기 이름을 알리는 데 힘썼다. 때로는 명동 거리 한복판에서 촬영했지만 알아보는 이 아무도 없는 굴욕을 당하기도 하고,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온 기자한테 “우리나라 연예인 중 누구와 닮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같은 수준 낮은 질문을 받는 일도 많았다. 아마도 그들에게 한국은 ‘밑바닥부터 다지자’는 마음가짐을 수련하러 오는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최근 서울을 다녀간 러시안 레드를 보면서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러시안 레드는 스페인의 포크 뮤지션으로, 자신의 마이스페이스에 올린 자작곡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무서운 신인으로 떠올랐다. 고국 스페인에서는 이미 골드 레코드를 기록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21세기 웹2.0 시대의 스타 탄생 스토리다. 물론 그는 아직 한국에서 인지도가 낮아 방한 일정을 자신의 단독 콘서트가 아닌, 3박 4일 동안의 프로모션 투어로 구성했다. 게릴라 콘서트나 몇 차례 방송 출연을 포함한 스케줄이었던 모양이다.

    그의 서울 투어에 대한 기사를 보며, 나는 문득 좀 불편했다. 어느새 이름 옆에 ‘스페인의 아이유’라는 호칭이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인터넷 스타인 러시안 레드와 기획사 가수인 아이유 사이의 접점이 무엇인지 나는 도통 알 수 없었다. 러시안 레드는 2장의 앨범을 자기 곡으로 채운 싱어송라이터인 데 비해 아이유는 아직 작곡을 배워가는 단계다. 심지어 아이유는 고등학생이고 러시안 레드는 26세다. 대관절 어디가 스페인의 아이유란 말인가. 어떤 기자는 아이유의 뮤직비디오를 보여주고 의견을 요구한다. 러시안 레드는 이렇게 답한다.

    “와, 호흡 참 기네요(Long breath)!”



    이렇게 해서 우리의 아이유는 졸지에 폐활량 만점의 아이가 됐다.

    ‘스페인의 아이유’ 도대체 말이 되니?
    오늘도 수많은 해외 뮤지션이 한국을 찾는다. 한국 특유의 다이내믹함에 매력을 느낀 나머지 일정 기간 머무르는 사람도 있다. 한국, 특히 서울은 점차 글로벌하고 쿨한 메트로시티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더는 우리 스스로 팝음악의 오지를 자처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정바비는 1995년 인디밴드 ‘언니네이발관’ 원년 멤버로 데뷔한 인디 뮤지션. ‘줄리아 하트’ ‘바비빌’ 등 밴드를 거쳐 2009년 ‘블로컬리 너마저’ 출신 계피와 함께 ‘가을방학’을 결성, 2010년 1집 ‘가을방학’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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