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4

2011.07.04

마린 르펜 “가자, 엘리제궁으로”

2012년 국민전선 대선 주자로 본격 행보…佛 국민은 극우파 움직임에 경계 눈초리

  • 파리=백연주 통신원 byj513@naver.com

    입력2011-07-04 11:2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 대중운동연합(UMP) 후보로 출마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사회당(PS)에서는 프랑소아 올랑드와 마르틴 오브리의 후보 경합이 치열하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은 극우파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에 주목한다. 여론조사 전문 업체 CSA와 IFOP의 조사에서 ‘마린이 출마한다면 1차 선거에서 20%를 웃도는 득표율을 보일 것’이라는 결과가 나와 프랑스를 놀라게 했다.

    마린은 올해 마흔세 살의 이혼녀로 세 자녀를 키운다. 장마리 르펜의 딸이라는 사실만 제외하면 평범한 주부로 보인다. 그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은 1972년 국민전선을 창당한 후 39년간 당을 이끌었다. 그러면서 외국인, 특히 무슬림 때문에 프랑스가 위험하다며 아랍인과 흑인, 더 나아가 유대인에게 거침없는 발언을 일삼았다. 이 때문에 ‘공공의 적’이 돼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숱한 비난과 공격을 받았다. 마린은 이런 아버지 때문에 힘든 유년기를 보냈다. 그가 8세였던 1976년 르펜 가족이 살던 파리의 아파트에서 5kg의 다이너마이트가 터져 건물 전체가 붕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올 1월 투르 합동회의에서 국민전선 총재 자리를 물려받은 마린은 마침내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다섯 차례 대선에 출마했던 장마리 르펜은 이제 명예총재로 2선에서 딸의 대선 준비를 조언하게 됐다. “젊고 매력적인 마린은 내게 없는 것을 가졌다”라는 그의 말처럼 마린은 특유의 패기와 현대적 여성상을 강조하며 2012년 엘리제궁 입성을 노린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난 나의 이데올로기가 있고 내 방식으로 꾸려나갈 것이다. 난 치마를 입은 장마리 르펜이 아니다.”

    인종차별주의자 ‘르펜의 딸’ 딱지



    마린의 말에 결기가 묻어나지만 국민전선과 그의 앞날은 험난해 보인다. 수십 년간 ‘인종차별주의자’로 찍힌 극우파 정당의 미래를 개척하기란 쉽지 않다.

    총재에 오른 후 마린은 대대적인 쇄신작업을 시작했다. 먼저 언론과의 관계를 개선해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로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그동안 유대인에 대해 했던 발언은 잔인함의 극치”라고 사과했다. 그는 또한 프랑스 유대인 단체 임원들도 직접 만나 이스라엘 방문을 모색하는 중이다.

    최근 국민전선의 분위기는 좋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무능력함과 몇몇 의원의 돌출 발언으로 뿔난 대중운동연합 당원이 국민전선으로 옮겨오기 때문. 마린은 신규 당원과 만남의 행사를 갖는 등 친근함을 과시하며 당 안팎 관리를 열심히 한다. 그리고 튀는 발언으로 자칫 극단주의자로 몰리기 쉬운 당원들의 입단속도 한다.

    5월 1일 파리의 잔 다르크 동상 앞에서 열린 국민전선 집회는 이전과 확실히 달랐다. 삭발한 머리, 문신, 나치 깃발은 사라지고 티셔츠를 맞춰 입은 젊은 당원이 질서 있게 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국민전선이 5개월 만에 이미지를 바꾸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악마로 불리는 아버지와 국민전선을 재건설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인터넷에선 마린에 대한 마녀사냥이 벌어진다. 신나치주의자와 찍은 사진이나 히틀러 숭배 포즈를 취한 극우파 단체인 스킨헤드 사람과 동석한 국민전선 당원의 동영상이 떠돌아 마린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는 것.

    마린이 혐오하는 스킨헤드는 1980년대 프랑스 사회를 흔들던 극우파 단체다. 지금도 비밀스럽게 활동하며 백인만 존재하는 세상을 꿈꾼다. 한때는 국민전선과 형제 같은 관계를 유지했다. 2007년 프랑스를 뒤흔든 참혹한 살인사건으로 스킨헤드는 위협적인 단체가 됐다. 랑스에 살던 당시 21~28세 스킨헤드 청년 4명이 알렉시(20)의 피부색을 꼬투리로 잡았다. 그들은 랑스에 테제베(TGV)가 처음 들어오던 6월 10일 알렉시를 시외에 있는 창고로 끌고 가 달군 칼로 전신에 화상을 입혔다. 또 머리를 강제로 삭발시킨 후 TGV 개통식 인파가 몰린 시내로 끌고 갔다. 그들은 알렉시에게 수 시간 린치를 가하다 끝내 목 졸라 살해한 후 랑스 강에 밀어 넣었다. 알렉시의 사체는 일주일 후 발견됐고 경찰은 4명을 체포했다. 스킨헤드 청년 4명에게 미성년 범죄를 적용해 14년의 징역을 구형했다. 언론이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해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스킨헤드와 관계 청산 가능할까

    스킨헤드 사건이 이어지자 국민전선은 “극우파 한계에서 벗어난 별개의 개인단체”라며 등을 돌렸다. 그러나 지금도 스킨헤드는 음지에서 활동 반경을 키운다. 프랑스 스킨헤드 전 회장 세르주는 스킨헤드의 정치 세력화를 시도한다. 그의 지방 사무실은 낮엔 닫혀 있지만, 밤이 되면 스킨헤드 교류의 장으로 변한다. 그곳에서 맥주와 콜라, 티셔츠 등을 판매하며 스킨헤드 동료의식을 키운다. 세르주는 최근 프랑스 2채널과의 인터뷰에서 “한 국가에는 하나의 뿌리와 색깔만 존재해야 한다. 무분별한 다양성이 프랑스를 죽인다”며 인종 혐오증을 드러냈다. 또한 스킨헤드와 신나치주의 단체를 국민전선에서 제외시키겠다는 마린의 결단에 대해 “그동안 극우파 사상을 보호하려고 싸웠던 동료를 배신했다”며 맹렬히 비난했다. 마린에 관한 저서를 출간한 언론인 카롤린 푸레스트도 “마린이 진정 극단주의자를 제외시킨다면 국민전선은 텅 비어버릴 것”이라며 아직도 국민전선 당원의 상당수가 극단주의를 지향한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국민은 마린이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과 현대성을 지녔다고 믿지만, 국민전선의 기본 사상과 장마리 르펜 시절부터 자리를 지킨 옛 당원이 ‘국민전선의 근본적인 변화를 방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대생 레오폴딘(24)은 “마린이 아버지보다 친근함을 강조하며 유권자에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긍정적 이미지를 구축해 정권을 장악하려는 고도의 전술이 아닐까 싶다”고 지적했다. 또 교사 클로딘(34)도 “마린은 영리하고 민첩한 인물이다. 그래서 더욱 두렵다”고 털어놓았다.

    “내년 대선보다 새 이미지 구축으로 2017년을 노린다” 혹은 “국민전선 혁신을 가장한 장마리 르펜 사상의 연장이다” 같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마린은 도전을 시작했다. 2012년 과연 프랑스 국민은 여성 최초 극우파 대통령의 엘리제궁 입성을 허락할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