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4

2011.07.04

사생활 보장 이웃과 소통 ‘코하우징’을 아십니까

노년의 고독사(孤獨死) 공포

  • 김동엽 미래에셋자산운용 은퇴교육센터장 dy.kim@miraeasset.com

    입력2011-07-04 1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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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생활 보장 이웃과 소통 ‘코하우징’을 아십니까
    “자식에게 간섭받는 건 싫습니다. 그렇다고 자식에게 버림받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노후 준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게 가족과의 관계다. 하지만 이보다 어려운 일도 없다. 자식 처지에선 부모 봉양도 중요하지만 2세 교육 문제가 더 시급한 게 현실이다. 게다가 자신의 노후 준비도 빠듯한데 부모까지 책임지라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부모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 며느리나 사위와 함께 살면서 나타날 갈등이 두렵다. 손자도 가끔 보는 것은 즐겁지만 매일 돌보기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자식과 함께 살면서 볼썽사나운 꼴을 보느니 차라리 떨어져 사는 게 편하다고 여기는 부모가 많다.

    이러한 이유로 고령화가 진전하면서 혼자 사는 독신가구가 늘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1980년만 해도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 비중이 5%도 안 됐지만, 2005년에는 20%까지 증가했다고 밝혔다. 2030년에는 24%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독신가구가 늘어나는 현상은 특히 고령자 집단에서 두드러진다. 1인 가구 중 65세 이상 노인가구의 비중이 2000년에는 24.0%에 불과했지만, 2030년에는 49.6%까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독신가구 두 집 중 한 집은 노인가구인 셈이다.

    나 홀로 사는 노인이 늘면서 대두하는 문제가 ‘고독사(孤獨死)’다. 고독사란 혼자 외롭게 죽은 뒤 시신이 나중에 발견되는 것을 말한다. 일본 NHK는 한 해 평균 3만2000명이 가족이나 친지 모르게 죽음을 맞는다고 보도했다. 일본에서 고독사는 1995년 한신 대지진이 발생하고 몇 달 뒤 임대주택에 혼자 살던 재난 피해자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가족, 친지와 연락을 끊고 홀로 사는 저소득층 고령자에 국한한 것이라 심각한 사회문제로 여기진 않았다.



    하지만 2009년 8월 인기 여배우이던 오오하라 레이코(大原麗子·62)가 도쿄 부촌인 세타가야구 자택에서 사망한 지 사흘 만에 발견되면서 사회적 이슈로 부각했다. 고독사가 단순히 빈민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젠 ‘딴 지붕 한 가족’ 형태 출현

    사생활 보장 이웃과 소통 ‘코하우징’을 아십니까
    일본에서 고독사로 사망한 시신은 평균 21.3일 만에 발견된다. 방에서는 악취가 나고 집 안은 당연히 엉망이다. 유족은 이런 방에 들어가기를 꺼린다. 그래서 ‘유품정리회사’라는 신종 비즈니스 업체가 생겨났다. 유품정리회사는 시신을 옮기고, 방을 청소하고, 유품을 정리해 유족에게 넘기거나 버리는데, 건당 25만~30만 엔을 받는다. 독거노인 중엔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사전 예약’을 하는 이도 있다. 최근 이 회사 지사가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문을 열었다. 한국도 고독사 문제를 비켜가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런데 고령 사회가 가져온 씁쓸하면서도 슬픈 고독사 문제를 극복하고 가족, 친지 간 소통 단절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보이지 않는 가족’과 ‘코하우징(Cohousing)’이다.

    1986~94년 ‘한 지붕 세 가족’이란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MBC에서 방송한 이 드라마는 한 지붕 아래 사는 서로 다른 계층의 세 가족이 펼치는 가족애를 그렸다. 당시만 해도 주택 수가 부족한 데다 아파트도 지금처럼 많지 않아 단독 주택에 여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기 일쑤였다. 그런데 고령화가 진전하면서 ‘한 지붕 세 가족’보다 ‘딴 지붕 한 가족’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한 새로운 가족이 나타났다. 부모, 자식이 한집에 살지 않지만, 도보나 차량으로 10~15분 거리에 살면서 유대 관계를 유지하는 가족 형태가 나타난 것이다.

    가족에 대한 의식 변화는 지난해 말 서울시 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서울시가 노후에 살기 희망하는 자녀와의 동거 형태를 묻자, 두 명 중 한 명꼴로 자녀와 함께 살기보다 ‘가까우나 독립된 공간에 따로 살고 싶다’고 응답했다. 자녀와 함께 살면서 간섭받기 싫지만, 그렇다고 멀리 떨어져 살기도 싫은 것이다. 고독은 즐기고 싶지만 고립은 원치 않는다는 이야기.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는 가까운 곳에 떨어져 사는 부모와 자녀를 ‘보이지 않는 가족(Invisible Family)’이라고 부른다. 떨어져 살기에 한 지붕 아래서 볼 수 없지만, 가까운 곳에 사는 덕에 유대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보살펴 줄 수 있어 이런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가족 관계 변화는 소비 행태 변화도 가져올 것이다. 자동차를 구입할 때 승용차보다 미니밴을 선호하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부모와 함께 쇼핑이나 여가를 즐길 기회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일용품, 식료품을 구입할 때도 낱개보다 대량으로 구입한 후 부모와 자식이 나눠 쓰는 방식으로 소비 패턴이 바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가족 형태 변화는 주거 형태의 변화도 가져올 것이다. 가족이 한집에 모여 살지 않으므로 대형보다 소형 주택 수요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공동체 활동하면서 교류 넓혀

    노후에 배우자가 사망한 다음 단독주택이나 아파트에 홀로 살면 사생활을 보호받으면서 혼자만의 시간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혼자 살면서 이웃이나 가족과 소통을 단절하면 고독사로 연결될 소지가 크다. 그렇다고 요양시설에 들어가긴 싫다. 사생활을 존중받으면서 이웃과 소통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 해답 중 하나가 미국, 유럽, 일본에서 유행하는 ‘코하우징’이다.

    코하우징은 여러 가구가 공동시설을 함께 마련해 모여 사는 협동주택으로, 1970년대 덴마크에서 짓기 시작해 조금씩 형태 변화를 거치며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갔다.

    사생활 보장 이웃과 소통 ‘코하우징’을 아십니까
    코하우징은 사생활을 보호하는 독립된 생활공간을 확보하는 동시에 식당, 부엌, 세탁실, 회의실, 집회실 등 공동시설을 갖추므로 이곳에서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가구 간 교류를 넓힐 수 있다. 한국에서도 같은 직업이나 취미를 가진 집단 등이 동호인 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다. 아직까지 생활을 공동으로 하는 경우는 별로 없으며, 한 장소에 주택을 짓고 모여 사는 수준이다.

    *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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