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4

2011.07.04

‘반짝 사랑’ 호들갑이거나 수익 창출의 돌파구?

프랑스와 영국 언론은 비판적 시선…케이팝 안착엔 노력과 시간 필요

  • 입력2011-07-04 10: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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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처럼 볼 수 없는 매력 vs 음악성보다 비주얼”

    ‘반짝 사랑’ 호들갑이거나 수익 창출의 돌파구?

    프랑스 신문 문화면이 보도한 케이팝 공연 소식.

    6월 중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케이팝 콘서트. 프랑스인은 물론이고 스웨덴과 영국 등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팬이 ‘아침의 나라’ 한국의 가수를 보려고 줄을 섰다. 케이팝이 한국 위상을 드높이는 문화상품이 될 수 있을까.

    파리시민과 프랑스 언론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프랑스 유력지들은 케이팝 관련 기사를 통해 “한국 음악을 듣고자 수천 명이 파리에 도착했다”며 전례 없는 한국 가수들의 프랑스 진출을 높이 평가했다. 까다로운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이들이 수년간 연습생 시절을 거치면서 춤과 노래는 물론, 외국어까지 교육받은 후 데뷔하는 한국 특유의 엔터테인먼트산업 시스템을 설명하며 놀랍다는 반응도 보였다.

    신랄한 비판으로 유명한 카날플러스(Canal+)의 간판 프로그램 ‘르그랑저널’은 케이팝에 비판적이었다. 파리 콘서트 현장을 내보내면서 “가발 쓴 한국 남자가 춤추고 노래한다”고 비꼬았다. 동양인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노란색으로 머리칼을 염색한 가수의 헤어스타일을 가발에 비유한 것. 또한 콘서트를 보려고 그리스에서 날아온 소녀 팬에 대해서는 “나라가 망할 판인데 파리에 와서 이러고 있다”면서 비난했다. 케이팝에 열광하는 팬층이 10대라는 점을 지목하면서 수년 전 프랑스를 강타한 독일 아이돌 밴드 ‘도쿄 호텔’과 비교하기도 했다. 도쿄 호텔은 프랑스에 입성해 폭발적 성장을 했지만 인기가 10대 소녀에게만 국한했다. 다수 성인은 도쿄 호텔의 음악을 한심하게 여기면서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우려했다.

    케이팝을 들은 적이 있다는 소피안(16)은 “케이팝을 좋아하는 친구는 만화나 코스프레 같은 일본 문화에 빠졌다가 뒤늦게 한국 문화를 알게 된 경우가 많다”면서 “케이팝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프랑스에 퍼져 있는 일본 문화 덕분”이라고 말했다.



    여자 청소년은 대부분 ‘색다르다’ ‘프랑스에선 볼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스타일이 세련됐다’ 등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반면 남자 청소년은 대체로 ‘소녀시대’ ‘F(x)’ 같은 걸 그룹은 귀엽지만 ‘샤이니’ ‘슈퍼주니어’ 등 남자 아이돌 그룹은 다소 꺼려진다고 밝혔다. 형형색색의 머리색을 지닌 동양인 남성을 보는 게 거북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몸에 과하게 밀착한 의상과 과도한 액세서리로 성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아 보인다는 견해도 많았다.

    성인들의 의견은 날카로웠다. 일부를 소개한다.

    “케이팝이 프랑스에서 사랑받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케이팝 열풍이 실제로 있다면 왜 한 기획사 가수들만 콘서트를 열었겠는가.”(루도빅·28·엔지니어)

    “프랑스에서 가수로 사랑받으려면 음악성이 뛰어나야 한다. 파리 콘서트에 참석한 한국 가수는 음악성보다 비주얼을 앞세운다. 유행을 따르는 청소년의 관심만 받을 뿐이다.”(루시·25·대학생),

    “케이팝? 그게 뭔지 잘 모르겠고, 들어본 적도 없다.”(파비앙·32·회사원)

    물론 긍정적 의견도 있었다.

    “파리에서 한국 가수가 콘서트에 성공한 것이 놀랍다. 한국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멜리사·20·의류매장 직원)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나라에 가보지 못했어도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수단이 음악이다. 한국은 이러한 점을 제대로 파악한 것 같다.”(실비·38·교사)

    “관심도 많고 비판도 많다. 누군가 비판한다는 것은 주목받는다는 뜻 아닌가.”(마리아·19·학생)

    케이팝의 인지도와 인기는 한국 언론이 보도한 것과는 결이 다르다. 10대에 국한한 팬의 ‘반짝 사랑’이라는 게 프랑스인 대부분의 시각이다. 물론 케이팝이 유럽 10대의 호응을 받고 있다는 것은 ‘사건’이다.

    파리=백연주 통신원 byj513@naver.com



    “유럽 심장부 진출 놀라워 vs 한국 대중음악 그늘 커”

    프랑스 파리에 상륙한 케이팝 열풍은 아직 도버해협 인근에 머무른다. 그러나 최근 유럽 팝음악의 확산 추세에 비춰볼 때 케이팝이 영국에 상륙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케이팝을 보는 영국 언론의 시각을 마냥 우호적이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현상’에는 놀라움을 표시하지만 ‘배경’에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기 때문.

    먼저 우드스톡이나 글라스톤베리 같은 대중음악 페스티벌의 전통이 없는 한국 대중음악이 아시아를 거쳐 유럽 심장부까지 진출한 데 대해 영국 언론은 당연히 관심을 표명한다. 그러나 이런 초고속 성장의 배경을 놓고는 부정적 시각을 내보였다.

    파리의 케이팝 열풍 이후 공영방송 BBC가 내보낸 보도가 대표적이다. BBC는 서울 특파원발 기사를 통해 케이팝 현상의 빛과 그늘, 그중에서도 ‘그늘’에 초점을 맞춰 분석했다. BBC는 케이팝 현상의 이면에는 국내 대중음악 산업의 취약한 수익 기반과 노예계약 같은 복합적 문제가 자리 잡았다고 보도했다.

    BBC는 케이팝이 해외에서 선풍을 일으키는 현상을 디지털 음원이 지배하는 국내 대중음악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하기 어려운 기획사들이 해외 진출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즉, 싱글앨범 판매를 통한 안정적 수익 모델 확보가 더는 불가능해진 디지털 시대를 그 배경으로 꼽았다. 한국의 소비자가 돈을 주고 디지털 음원을 구입하는 일이 드문 현실을 타개하려는 기획사들이 해외 투어에 사업 비중을 맞춘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해외 팬 입맛에 맞는 청소년 스타를 길러내려고 장기간 노예계약을 맺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과거 ‘동방신기’가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냈던 노예계약 소송을 예로 들고, 여성 7인조 그룹 ‘레인보우’를 통해 기획사로부터 터무니없는 처우를 받는 청소년 스타의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케이팝에 대한 BBC의 보도가 부정적 시각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다. 이에 앞서 4월에는 서울 중심가의 음반 매장을 찾아 케이팝이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그리고 동남아 팬에게도 인기를 얻는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그러니 영국 언론이 케이팝에 대해 보도하는 ‘삐딱한’ 방향을 탓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영국 언론이 문화산업을 보는 시각이나 영국 사회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인본주의적 전통과 관련지어 보면 이러한 보도 경향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언론이 온통 G20 정상회의 개최로 달아올랐던 지난해 11월 초 BBC에서 서울 정상회의 관련 보도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그 대신 BBC 서울 특파원은 “G20 정상회의로 선진국 행세를 하는 한국에서 아직도 반달곰을 사육한다”는 동물 보호 캠페인 기사를 송고했다. 국가적 자부심으로 가득 찬 한국인에게는 분통 터질 일이지만 적어도 ‘언론은 입에 쓴 약’이라는 상식을 가진 또 다른 한국인에게는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런던=성기영 통신원 sung.ki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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