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9

2011.05.30

미국 인디언 대추장과 용산 참사

연극 ‘여기, 사람이 있다’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1-05-30 13:5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미국 인디언 대추장과 용산 참사
    미국 인디언인 수우족 대추장 ‘성난말(Crazy Horse)’은 인디언 영웅이다. 1880년대 백인은 ‘인디언 보호구역’ 블랙힐스 일대에서 금을 발견하고 인디언을 내쫓았다. 그러자 용맹한 인디언 용사 ‘성난말’은 기습공격으로 미국의 한 기병대를 전멸시켰다. 하지만 그는 결국 전쟁에서 패했다. 35세에 인디언 출신 경찰관에게 살해당했고, 그의 부족은 힘을 잃었다.

    연극 ‘여기, 사람이 있다’는 우리 세대의 인디언에 대한 이야기다. 2009년 1월 서울 중구 용산동 4가 남일당 건물에서 발생한 ‘용산 참사’ 피해자 말이다. 그들은 “자식에게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망루에 올랐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 등 6명이 목숨을 잃었고, 남은 사람들은 더 오래 고통받고 있다.

    시기는 2029년, 용산 참사의 터에는 시가 80억 원인 고급아파트 ‘스카이 팰리스’가 들어섰다. 이곳에 사는 강성현은 ‘아메리칸 인디언 멸망사’를 연구한 인류학 박사인 동시에 용산 참사를 무자비하게 진압한 경찰청장의 아들이다. 용산 참사 피해자는 영혼이 돼 여전히 그곳을 떠돌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경비원, 말단 경찰로 스카이 팰리스 거주자를 위해 일한다. 그러던 중 성현의 아들 소원이 갑자기 뇌사 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꿈속에서 용산 참사 피해자인 상룡과 ‘성난말’을 만난다.

    의미 있는 주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이 연극의 단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지나치게 복잡한 줄거리다. 인디언과 철거민, 그리고 훗날 새로운 인디언이 될지도 모를 북한 주민을 한 궤로 엮은 아이디어는 훌륭하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가 얽히고설켜 몰입을 방해한다. 어떤 인물이 커튼콜 마지막에 나올지(대부분 커튼콜 마지막에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연극 막판 10분까지도 감을 못 잡을 정도로 여러 인물에 이야기가 분산된 점도 아쉽다. 민지은, 김지섭 등 주변 인물의 분량은 줄이거나 역을 삭제하고 이정하의 비중을 키우는 것이 극의 완결성을 위해서는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연극의 여운은 미덕이다. 잔이 덜 채워졌더라도 관객이 그 여운으로 잔을 충분히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연극은 줄거리만으로도 관객의 ‘잔’이 철철 넘쳐흐르니, 관객은 붉은 얼굴로 침략자를 노려보는 ‘성난말’의 눈빛을 가슴에 담아오길 부담스러워한다.



    미국 인디언 대추장과 용산 참사
    그럼에도 이 연극은 중요하다. ‘잊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만으로도 위대하다. 용산 참사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고 새로운 인디언이 등장하는 2029년의 모습은 불타오르는 2009년의 영상보다 더 섬뜩하다. 영화 ‘부당거래’에서 억울한(?) 범인으로 나왔던 우돈기의 모습이 반갑고, 경비 박일두 역을 맡은 선종남의 호연이 돋보인다. 5월 19일부터 6월 5일까지, 연우무대 소극장, 문의 02-745-4566.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