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9

2011.05.30

삼성생명 대주주만 웃었다

상장 1주년 공모가 밑도는 초라한 성적…‘자본 확충’ 명분도 유명무실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1-05-30 09:1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글로벌 보험업계의 트렌드는 외형 확대가 아닌 리스크 관리로 무게 중심이 옮겨 갔다. 삼성생명의 경우 국내 최고 리스크 관리 능력이라 하지만 이것이 글로벌 일류 보험사 수준에 도달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있다.
    삼성생명 대주주만 웃었다
    2010년 4월 23일 삼성생명은 상장을 앞두고 공모가를 11만 원으로 결정했다. 시장 예상치를 훌쩍 넘긴 가격이었지만 청약 열기는 뜨거웠다. 불과 이틀 만에 청약 증거금만 20조 원가량 유입돼 국내 증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화려한 신고식을 치른 삼성생명은 2010년 5월 12일 마침내 유권증권 시장에 입성했다.

    ‘명분을 위한 명분 아니냐’

    삼성생명의 상장은 생명보험회사(이하 생보사) 상장을 논의하기 시작한 1990년부터 따진다면 20년 만에 이뤄진 일이다. 그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상장 방법이나 의도를 두고도 비판이 많았다. 특히 일부 시민단체는 그동안 이익 및 손실을 주주와 분담하던 유배당 계약자에게도 상장 차익의 일부를 나눠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제기에 대해 삼성그룹과 삼성생명 측은 “2015년 글로벌 톱 15위권 진입을 위한 자본 확충의 필요성”이란 명분을 내세워 적극 방어했다. 향후 글로벌 일류 보험사로 도약하려면 내실 경영으로 수익성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신수종사업 발굴, 적극적인 해외 진출, 인수합병(M·A)을 통한 외형 성장이라는 전략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데 이 경우 막대한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는 게 삼성 측 주장이었다.

    금융당국 역시 상장 차익 배분을 놓고 시민단체와 보험업계의 대립이 팽팽한 상황에서 ‘글로벌 생보사 출현’이라는 명분을 들어 과감히 보험업계의 손을 들어줬다. 2007년 금융감독위원장으로 재임하던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거래소가 마련한 ‘유가증권 시장 상장 규정 개정안’을 승인했다. 이로써 상법상 주식회사인 생보사가 상장 차익을 계약자에게 배분하지 않고 상장할 수 있게 됐다.



    생보사 상장을 두고 격론이 벌어질 당시 상장을 강력히 주장했던 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상장이 옳았다고 말한다. 위험집합이라는 보험업의 특성상 외형 성장을 통해 한 단계 진화해야 한다는 설명. 중국 생보사들이 대형화를 통해 유럽이나 미국계 보험사를 제치고 자산 규모 세계 1위로 올라선 것을 예를 든다. 상명대 금융보험학부 김두철 교수는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려면 상장해 주식회사로 변모한 뒤 세계 생보사와 경쟁할 수 있는 체질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장 1년이 지난 지금 과연 당초 금융감독 당국이나 삼성이 내세운 상장 목적을 얼마나 만족시켰는지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 이어진다. 비상장 회사가 기업을 공개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상장하면서 신주를 발행한 뒤 이를 불특정 다수의 주주에게 팔아 상장에 필요한 새로운 자금을 마련하는 일반적인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신주 발행 없이 구주만을 매각하는 것이다.

    삼성생명은 자본 확충을 상장의 주된 이유로 내세웠지만 지난 1년간 신주를 발행하지 않았다. 상장 때도 기존 주주가 보유한 4400만 주를 매각하는 구주 매각 방식을 이용했다. 삼성생명의 지급여력 비율이 높은 데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신주를 발행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자본 확충이라는 명분이 결국 ‘명분을 위한 명분’이지 않았느냐는 비판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삼성생명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추후 대규모 자본이 필요할 때를 고려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삼성자동차 채권단이 삼성생명 주식을 담보로 확보했고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신주를 발행하지 못했지만, 추후 이사회 결의를 통해 얼마든지 신주를 발행할 수 있다는 게 삼성생명 측 주장이다. 또 상장 당시 삼성생명의 자기자본이 12조1330억 원에 달해 신주 발행이 급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상장은 미래 성장동력 확보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차원에서 필요한 경우 원활하게 자본을 확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사전에 마련했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삼성생명이 주장한 글로벌 생보사에 대해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글로벌 생보사는 규모도 규모지만 해외 진출도 활발히 한다. 보험연구원 장동식 수석연구원은 “선진 생보사의 경우 지주회사 형태가 많다. 많은 계열사가 있고 재보험사까지 있다 보니 리스크 관리를 안 할 수 없다. 해외 진출 현황과 리스크 및 비용 관리도 글로벌 일류 생보사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말했다.

    상장 후 1년이 지났지만 삼성생명이 주장한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비전과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2010년 12월 3일 삼성그룹은 금융계열사 임원단 인사를 단행하면서 삼성생명 보험담당 사장으로 삼성전자 중국본사 박근희 사장을 임명했다. 이때 ‘2015년까지 글로벌 톱 15위’라는 목표는 슬그머니 ‘글로벌 일류 기업 달성’이라는 두루뭉실한 내용으로 바뀌었다.

    멀고 먼 글로벌 생보사의 길

    삼성생명은 국내시장에선 은퇴시장과 부유층시장에 집중할 계획이다. 해외시장의 경우 현재 영업을 활발히 진행 중인 중국과 태국 이외에 성장 가능성이 높은 아시아 국가에 추가로 진출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그동안 삼성생명이 내세웠던 내용과 별반 차이가 없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삼성그룹 내 대표적인 중국통이자 해외통인 박근희 사장 주도하에 지난해 영입한 글로벌 보험영업 전문가인 스테판 라쇼테 부사장 등이 종합적인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는 중이다. 빠르면 올 하반기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적인 보험사로 성장하려면 자본 확충 및 인수 합병(M·A)을 통한 외형 확대가 필수인 것처럼 말하는 국내 전문가가 많다. 그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글로벌 보험업계의 트렌드는 외형 확대가 아닌 리스크 관리로 무게 중심이 옮겨 갔다. 삼성생명의 경우 국내 최고 리스크 관리 능력이라 하지만, 이것이 글로벌 일류 보험사 수준에 도달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있다. 삼성생명은 과거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세계 금융위기로 대규모 손실을 입어 리스크 관리 능력을 의심받았다.

    또 삼성생명이 상장을 통해 회사-소액주주-보험 계약자 간 상호이익을 실현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삼성 특검을 통해 발견된 차명 주식을 실명 전환해 삼성에버랜드(지분율 19.34%)를 제치고 삼성생명 최대주주(20.76%)가 됐다. 한성대 무역학과 김상조 교수는 “아들인 삼성전자 이재용 사장이 삼성에버랜드 최대주주이고,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을 지배함으로써 삼성그룹 전체를 장악하는 현재의 지배구조를 지켜낸 이건희 회장이 상장의 최대 수혜자”라고 지적했다.

    삼성생명 대주주만 웃었다

    세계 생명보험사(생보사)와 경쟁할 수 있는 글로벌 생보사의 필요성을 주장하던 삼성생명은 큰 기대를 안고 상장에 성공했지만, 명분과 달리 대주주만 최대 수혜자로 남았다.

    상장 이후 두 가지 소송서 유리한 판결

    더군다나 삼성생명은 2010년 당기순이익 1조9335억 원을 시현하면서 최대주주인 이건희 회장에게 무려 4000억 원을 배당했다. 물론 개미 투자자도 배당금 수혜를 받았지만, 주가가 공모가 아래(2011년 5월 25일 현재 9만1600원)로 떨어지면서 투자 손실을 기록했다.

    주가가 공모가를 밑도는 것에 대해 삼성생명 측은 “생보사 주가를 제대로 평가하는 기준을 확산하는 게 시급하다”고 항변했다. 은행과 달리 장기간에 걸쳐 손익이 발생하는 보험업의 특성상 다른 산업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나 주가수익비율(PER)이 아닌, 자기자본과 보유계약의 미래가치 등을 더한 EV(Embedded Value, 내재가치)로 평가하는 게 세계적 흐름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생보사는 1월부터 3개사 모두 전년 대비 20% 이상 성장세를 이어가지만,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게 삼성생명의 설명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내재가치에 따를 경우 중국의 상장 생보사는 EV 대비 2~3배 이상의 평가를 받는 반면, 한국은 0.7~1배의 평가를 받으며, 심지어 대만이나 싱가포르 보험사보다 저평가된다”고 말했다.

    증권사 역시 주가가 낮은 이유로 삼성생명의 체질보다 금융주 전체가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는 현재 시장 상황을 든다. 하나대투증권 성용훈 연구원은 “소위 화정자(화학, 정유, 자동차)만 투자자의 관심을 받는 상황인 데다 환매되는 펀드 종목을 보험주처럼 비인기주로 메우다 보니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상장 이후 있었던 두 가지 소송에서 삼성생명이 유리한 판결을 얻어내자 이것이 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거리였다. 삼성자동차 채권단이 부채 2조4500억 원과 연체이자 2조2880억 원 및 위약금 등을 포함해 5조2000억여 원을 요구한 환수 소송 항소심에서 법원은 “삼성 측은 채권단에 위약금 6000억 원을 지급하라”며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삼성자동차 부채 문제를 정리했다.

    법원은 또 보험소비자연맹이 삼성생명 유배당 보험 계약자 2802명을 모아 미지급 배당금을 달라며 삼성생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보험소비자연맹 오연행 사무국장은 “지난 1년간 삼성생명 상장으로 이익을 본 이는 개인투자자도 계약자도 아닌 대주주”라고 비판했다.

    삼성생명 측은 “이제 1년이 지났을 뿐”이라고 말했다. 빠른 시일 안에 비전을 만들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가면 소액주주나 계약자도 상장의 과실을 맛볼 것이라는 설명이다. “명분은 무색해지고 대주주만 웃었다”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삼성생명이 어떻게 대응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