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7

2011.05.16

“간 나오토 총리, 물러나시오!”

국난 대처 미흡 당내외 퇴진 압력…오자와파 내각불신임안 제출 검토

  • 도쿄=이종각 한일관계 전문 칼럼니스트

    입력2011-05-16 10:0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간 나오토(管直人) 총리에게는 위기를 극복해나갈 리더십이 없다.” “간 총리로는 이제 안 된다.”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고 1개월여가 흐른 4월 중순부터 그동안 대여공세를 자제하던 자민당, 공명당 등 일본 야당이 간 총리의 퇴진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총리 퇴진을 요구하는 야당의 주장에 여당인 민주당 내에서도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대표 지지파가 “이 상태론 민주당이 괴멸하고 만다”며 동조하나 간 총리는 퇴진요구를 무시하는 작전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동안 내각 안에서조차 “수상을 바꾸라는 요구는 당연하다. 목적과 권한을 명확히 하지 않은 조직만 늘렸기 때문에 혼란이 일고 있다”(4월 19일, 재무성 부대신)는 비판까지 공공연히 제기되는 등 자중지란의 양상마저 나타났다(문제가 되자 부대신은 간 총리에게 사과했다).

    위기관리 능력 없이 우왕좌왕

    또 총리에게 자문하기 위해 내각에 참여한 방사성 전문가(도쿄대 교수)가 초등학교 운동장 이용 기준을 ‘연간 방사선량 허용치 20mSv 이하’로 규정한 정부의 조치는 극히 위험하다며 반발, 사임한 뒤 4월 29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며 정부의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 사고 대응이 ‘즉흥적’이라고 비난해 파문이 일었다. 이에 후쿠시마(福島) 현의 시장, 읍장이 정부에 명확한 방사성량 허용치를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등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처럼 간 총리가 퇴진 압력을 받는 이유는 일본이 대지진, 쓰나미, 원전사고로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약 2만7000명, 피난민이 13만 명에 달하는 ‘미증유의 국난’에 직면한 상황에서 국민 대부분은 현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각종 여론조사에서 간 총리가 지진재해 대응에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잘 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75~80%를 차지했다. 그러나 간 총리가 ‘당장 사임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찬반이 각각 40~45%로 비슷했다. 여론은 간 총리의 지진 대응에는 낙제점을 매겼지만, 지금 당장 그만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모순된 반응을 보였다. 정치공백을 우려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지진 발생 이후 일본 정부는 시급한 원전사고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위기관리 능력에 문제를 드러낸 것은 물론, 피난민 대책 등 산적한 난제에도 우왕좌왕하고 있다. 현 일본 정부의 대응 미숙과 혼란을 웅변하는 것이 지진 발생 후 정부 안에 마련한 ‘긴급재해대책본부’ ‘부흥대책회의’ 등 비슷한 이름과 성격의 기구 20여 개. 난립한 기구에 대해 여론으로부터 “기구만 많지, 무엇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5월 9일에서야 본부급 3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그 아래 팀이나 대책실로 교통정리를 했다.

    1995년 고베(神戶) 지진 때는 사흘 후 행정 경험이 풍부한 자민당 중진의원 오자토 사다토시(小里貞利)가 재해대책 담당상에 임명돼 현지에서 진두지휘했고, 도쿄가 괴멸 직전에 놓인 1923년 간토(關東) 대지진 때도 3주 후 거물정객인 고토 신페이(後藤新平) 내무상이 신설된 부흥원의 총재에 임명돼 도쿄를 근대적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고토는 이번 대지진 후 도쿄의 부흥을 주도한 인물로 새삼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간토, 고베 지진 때보다 피해 규모와 지역이 몇 배 크고, 원전사고까지 발생한 이번 동일본 대지진에서 간 총리는 복구, 부흥 대책을 지휘할 책임자를 임명하지 않고 있다. 간 총리는 자민당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에게 부흥담당상을 제의, 대연정을 시도했지만 자민당이 거부해 무산됐다.

    이후 일본 정부는 ‘정치 주도’를 내세우며 지진, 원전사고 수습과 대응책에 긴요한 관료들을 배제한 채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관방장관 등 측근 몇 명만으로 대처하고 있다. 여기에 에다노 장관과 당내 실력자의 주도권 다툼까지 벌어지는 등 혼선과 시행착오를 자초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가 하면 간 총리의 ‘돌발행동’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간 총리는 지진 발생 다음 날인 3월 12일 오전 헬기로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을 급히 방문했다. 하지만 야당으로부터 “원자력에 문외한인 총리가 불필요한 시점에 원전을 방문해 도쿄전력 직원들의 초동 단계 사고 수습을 오히려 방해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일본 정부는 4월 12일 원전사고의 심각성을 구(舊)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같은 ‘레벨7’로 상향 발표해 일본 국민과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레벨7’은 ‘일본은 위험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결정적 근거가 됐다. 이에 따라 일본 내에선 왜 사고 후 한 달이나 지나 ‘레벨7’로 수정 발표했느냐는 불만이 제기됐다. 또한 원전사고와 관련한 각종 언론 발표도 내각, 원자력안전위원회, 도쿄전력이 제각기 하고 있어 혼선을 부르고 정보공개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국내외 지적을 받고서야 4월 말부터 공동 발표로 바꿨다.

    여론은 “정쟁보다 힘 합쳐라”

    특히 후쿠시마 원전 반경 20km 안은 주민 접근을 법률로 금지하는 경계구역으로, 반경 30km 안은 계획적 피난지역으로 설정해 집을 두고도 피난생활을 하는 주민이 수만 명에 달하며, 이들이 언제 집으로 돌아갈지는 알 수 없다. 이에 따라 지역 주민과 국민의 불안, 불만이 고조된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4월 중순 간 총리가 내각에 참여한 방사성 전문가에게 “그 지역은 20년 이상 사람이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돼 파문이 확산되자 그는 서둘러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동안 간 총리는 국회에서 “권력에 연연하지 말고 물러나라”는 야당의원들의 잇단 퇴진 요구에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총리에 재임 중인 것은 자신의 ‘운명’이라며 “이 같은 사태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해왔다. 대지진 대책에 필요한 추가 경정예산이 5월 2일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통과되자 자민, 공명당 등 야당과 민주당 내 오자와파는 내각불신임안 제출을 검토하고 있다. 중의원(정수 480의석) 중 민주당 소속은 307명으로 야당, 무소속 의원(173명) 대부분이 찬성하고 민주당 의원 가운데 80명 정도가 가세하면 과반수(240석)를 넘어 불신임안은 가결된다. 중의원 내 약 90명의 오자와파 가운데 어느 정도가 불신임안에 찬성할지가 주목된다.

    불신임안이 가결될 경우 ‘10일 내 중의원을 해산하지 않으면 중의원은 총사직해야 한다’(헌법69조). 그러나 현재 일본은 대지진으로 선거를 치를 상황이 아니므로 중의원이 총사직해야 해 간 총리도 물러나게 된다. 이 경우 후임 총리는 중의원과 참의원 합동본회의에서 선출한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참의원(정수 240석)은 민주당이 과반 이하인 여소야대인 만큼, 제1야당인 자민당(중의원 118명, 참의원 84명)과 제2야당인 공명당이 오자와파(중의원 약 90명, 참의원 약 30명)와 연합해 자민당 총리를 옹립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여론은 대체적으로 일본이 국난에 처한 상황인 만큼 여야가 정쟁보다 힘을 합쳐 난국을 헤쳐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이다. 따라서 자민당 등이 불신임안을 제출할지, 만약 제출할 경우 오자와파가 대거 찬성할지는 미지수다.

    간 총리는 골든 위크(대형 연휴)가 끝난 5월 6일, 전격적으로 지진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위치한 하마오카(浜岡) 원전 가동을 안전상의 이유로 전면중단할 것을 관리회사인 중부전력에 요청, 가동중지가 결정됨으로써 여론의 지지를 얻고 있다. 따라서 야당과 오자와파의 내각불신임안 제출은 힘이 약해지고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