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7

2011.05.16

독재자 사냥꾼 ‘리드’가 간다

차드 등 인권 유린 후 도주 악랄한 독재자 지구 끝까지 추격

  • 파리=백연주 통신원 byj513@naver.com

    입력2011-05-16 09: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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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재자 사냥꾼 ‘리드’가 간다
    이집트, 튀니지, 그리고 리비아까지. 중동권 젊은이들이 수십 년간 대물림된 정부의 부정부패에 반기를 들었다. 인권법도 전 세계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인권법의 국가’ ‘자유의 나라’ 프랑스는 한 남성에 주목하고 있다. 인권 유린을 저질렀던 각국의 독재자를 쫓는 리드 브로디(사진)가 그 주인공이다. 그의 끝없는 싸움에 프랑스 현장보도 프로그램 ‘별도의 추적(Complement d’enquete)’이 동행했다.

    파격적인 결단 새 길을 선택한 남자

    브로디는 1953년 미국 뉴욕의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술교사 어머니와 헝가리 출신 프로 테니스선수 아버지 밑에서 평범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1949년 미국 국적을 취득한 뒤 촉망받는 뉴욕 검사로 재직했지만, 84년 검사 자리를 던져버렸다. 우연히 니카라과의 사회주의 정당인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사건을 접한 뒤 현장으로 달려간 것이다. 그는 니카라과에서 산디니스타의 반대파인 콘트라 반군이 미국의 지원을 받은 사실을 증명해 ‘뉴욕타임스’ 1면을 장식했다.

    브로디는 이 일을 계기로 1987년부터 92년까지 제네바 국제법률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유엔 인권보호운동에도 참여했다. 그는 살바도르, 콩고를 방문해 인권법을 다양하게 연구한 후 “각국의 인권 유린과 관련한 진실을 찾겠다”며 끝없는 여행을 시작했다. 현재 국제 인권단체 휴먼 라이트 워치(Human Rights Watch)의 대변인을 맡아 혁명 또는 정부개혁으로 파멸한 뒤 타국으로 망명했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독재자의 정당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그의 끝없는 싸움은 2007년 ‘독재자 사냥꾼(The Dictator Hunter)’과 2009년 ‘히센 하브레 : 독재자에 대한 사냥(Hissene Habre: La Traque d’un Dictateur)’ 등 다큐멘터리로도 방송됐다.

    최근 브로디는 중앙아프리카의 한 공화국 차드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독재자 히센 하브레의 자국 송환에 집중하고 있다. 1982년부터 90년까지 차드를 통치한 하브레는 민중 학살과 고문 등 반인도적 범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무려 20년간 세네갈에 피신 중이다. 브로디는 오랜 시간 범죄증거를 찾지 못하다가 2000년 폐허가 된 차드의 경찰서 건물에서 기록을 입수했다. 수천 장이 넘는 문서에는 하브레 독재시절 무고하게 붙잡혀 희생당한 국민의 신상명세가 담겨 있었다.



    브로디는 추적 끝에 일부 생존자를 찾아냈다. 피해자 대부분이 사망한 가운데 든든한 현지 동료 조슈아도 만났다. 이유 없이 독재경찰에 체포됐던 조슈아의 증언에 그의 수사는 탄력을 받았다. 조슈아에 따르면 독재시절의 상황은 심각했다. 하브레는 낡은 수영장을 지하 고문장으로 개조했다. 무고한 국민이 10㎡ 남짓한 방에 30~40명씩 갇혔다. 40℃를 넘는 열기에 숨 쉬기도 어려웠다. 죽음의 장소를 찾은 브로디는 조슈아가 들려준 어느 오후의 기억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천장에 뚫린 손바닥만 한 창문으로 보초를 선 군인이 보였어요. 그날 굶주림에 고통 받던 친구 한 명이 고문으로 죽었어요. 모두가 사람이 죽었다고 소리쳤죠. 그러나 그들은 죽었으면 먹으면 될 것 아니냐고 대답했어요.”

    독재자 사냥꾼 ‘리드’가 간다

    중앙아프리카의 차드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독재자 히센 하브레.

    조슈아는 당시 독재경찰의 고문법을 생생하게 그림으로 그려 리드에게 주었다. 그에 따르면 하브레의 군인들은 무고한 사람을 천장에 거꾸로 매단 뒤 그 밑에서 물을 끓여 수증기에 숨 막혀 죽을 때까지 방치했다. 또 손과 발을 등 뒤로 묶어 하늘을 보게 한 후 배 위에 올라가 밟거나 몇 시간씩 망치로 구타하기도 했다. 고문을 당했던 조슈아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고질적인 복통에 시달리고, 온갖 지병까지 얻었다. 조슈아와 같은 고통을 겪은 시민이 수백만 명에 달한다.

    브로디는 차드 정부와 수차례 교류를 시도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최근에도 차드를 방문해 이드리스 데비 대통령과 만남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는 방송 인터뷰를 가장해 어렵게 미팅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데비 대통령은 “자국의 일이니 우리에게 맡겨 달라”는 말만 전한 채 황급히 자리를 떴다. 하브레는 역대 독재자 가운데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남겼다. 그의 공식처벌 움직임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를 포함해 벨기에 등 유럽에서도 진행 중이다. 정작 차드 정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하브레도 세네갈로 떠났으니 아픈 기억으로 남겨두자”며 발뺌한다.

    피해자와 그 후손에게도 잊혀져가는 일일까. 조슈아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한탄했다. 현재 데비 대통령을 포함해 90%가 넘는 정부 관계자가 하브레 독재시절 그를 위해 일했던 사람이다. 대학살에 가담했던 인물들이 차드를 그대로 통치하고 있는 것. 그들이 하브레를 공식처벌하면 스스로 죄를 인정하는 셈이니 제 얼굴에 침 뱉기다. 그들이 하브레 처벌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히센 하브레 처벌 왜 묵인하나

    몇 년째 하브레를 체포하려고 여러 나라를 전전하고 있는 브로디는 걱정이 앞선다.

    “하브레가 늙어 버릴까 걱정이죠. 그가 노쇠해진 뒤 재판이 이뤄지면 사람들이 그에게 동정심을 가질 게 분명합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그가 참여했던 칠레 전 독재자 피노체트 송환 작전 때도 그랬다. 피노체트가 영국 런던으로 도주해 살다가 재판정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의 겉모습을 보고 “불쌍하다. 늙어서 안 됐다”는 동정표를 보냈다. 피노체트는 건강이 나쁘다며 휠체어를 타고 재판정에 나타났지만, 재판이 무사히 끝난 뒤에는 두 발로 걸어 나갔다는 소문도 있다. 국민이 악랄한 독재자에게 두 번 속은 셈이다. 브로디는 독재자를 공식적으로 처벌하려면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신이 한 명을 죽이면 감옥에 갇힙니다. 10명을 죽이면 정신적 문제가 있다며 정신병원으로 보내집니다. 하지만 4만 명을 죽이면 혈세를 빼돌려 만든 비자금을 들고 타국의 초호화 별장에서 경호원의 보호를 받습니다. 본질적인 것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현재 하브레는 세네갈의 부유한 마을에 있는 초호화 빌라에서 가족과 산다. 그의 빌라는 이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택으로 꼽히며 경호원이 24시간 문 앞을 지킨다.

    ‘Bay kou bliye, pote mak sonje’(때린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맞아서 상처가 남은 사람은 영원히 기억한다)라는 아이티 격언이 있다. 무참히 학살을 저지른 뒤 타국으로 도주해 평화로운 여생을 즐기는 독재자들. 그들을 보면 브로디의 정의감이 불탄다.

    그는 차드에서 하브레 처벌을 위한 자료를 수집하던 중 튀니지 독재자 벤 알리 일가가 거리로 나온 튀니지 군중의 분노에 공포를 느껴 급히 사우디아라비아로 도망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날아갔다. 자국 영토에서 벗어나 안전을 보장받은 뒤 교묘한 방법으로 타국에서 재판을 피하는 제2의 하브레를 막기 위해서다. 그는 ‘늦기 전에’ 알리 일가를 심판대에 올릴 작정이다. 그의 끝없는 추격이 마침표를 찍는 날이 어서 오길 우리 모두 희망한다. 그의 말이다.

    “나는 미국인도, 유대인도, 검사나 변호사도 아니다. 그저 인권을 보호하고 싶은 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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