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7

2011.05.16

급조된 리더십? 세일즈 리더십?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 체제 출범… 청와대와 각 세우며 원칙론 목소리 높여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11-05-16 08: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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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조된 리더십? 세일즈 리더십?

    5월 9일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취임 인사차 방문한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왼쪽)의 양복 깃에 자신의 국회의원 배지를 떼서 달아주고 있다.

    원내대표는 사실상 당의 리더다. 당에는 대표가 있다. 최고의원도 있다. 하지만 국회의사당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이는 원내대표다. 2인자 같은 1인자다. 책임과 소임도 막중하다. 1년 임기 동안 여야를 가리지 않고 동료 의원과 가장 활발하게 접촉해야 한다. 야당과의 협상에서는 자기 당의 뜻을 최대한 관철해야 한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언론에 이름이 등장한다. 행동 하나가 뉴스고, 말 한마디가 ‘어젠다’다. 그만큼 쉽지 않은 자리다.

    김무성 의원에 이어 4선의 황우여 의원이 한나라당 새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18대 국회에서는 홍준표, 안상수, 김무성 의원에 이어 여당의 4번째 원내대표다. 황 원내대표는 친이(친이명박계)-친박계(친박근혜계)에 속하지 않는 소위 중립 성향으로 분류된다. 당내 정치적 기반도 약하다. 18대 국회 3년여 간 관심은 친이-친박으로 쏠렸기 때문에 그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도 않았다. 그런 그가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소장파 일시적 대변자 분위기

    황 원내대표의 리더십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의문 부호라는 시각이 대세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자리에 걸맞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황 원내대표는 경선에서 예상보다 많은 표를 받았다. 이는 4·27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후 당내 계파 대립에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한 의원들이 황 원내대표 쪽으로 쏠렸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결국 원내대표의 리더십은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핵심 당직자의 설명이다.

    “급조된 리더십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확고한 지지 기반을 갖고 선출된 원내대표가 아니지 않은가. 정두언 의원 등 소장파가 힘을 실어줬기 때문에 향후 행보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더욱 냉정하게 말하면 소장파의 ‘수렴청정(垂簾聽政)’이다. 황 원내대표 스스로도 그동안 국회에서 확실한 색깔을 보여주지 못했다. 일각에서 리더십에 대한 부정적인 논란을 제기하는 건 당연하다.”

    황 원내대표는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듯, 자신의 존재와 차별성을 적극 알리고 있다. 그래서 점잖고 온화한 성품도 잠시 묻었다. 먼저 당 쇄신과 관련해 “그동안은 당 주류(친이계)가 무한책임을 졌지만, 앞으로는 한나라당 당직자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한다”라며 긴장감을 조성했다.

    청와대와도 일정 부분 대립각을 세웠다. ‘MB(이명박 대통령) 노믹스’의 간판인 감세정책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이다.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에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친이계 중심으로 비대위가 재편될 가능성에 강한 브레이크를 걸었다. 정의화 비대위원장이 당대표 구실을 해야 한다는 친이계 측 주장에 맞서 국회 사무처에 유권 해석을 의뢰했다. 결국 권한이 원내대표에 있다는 답을 받아냈다.

    황 원내대표의 이런 행보와 관련해 소장파의 견해를 대변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전당대회가 열릴 7월까진 원내대표 중심으로 당을 끌어가겠다는 의지로 해석하는 사람도 많다.

    황 원내대표는 그동안 당내에서 관심을 받지 못한 서민정책 개발과 정치자금법 개정 문제에 대해서도 강한 의욕을 보인다. 특히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정치자금법 개정안에 대해선 “(기소된) 의원들을 구제하는 내용으로 개정해선 안 된다”고 확고하게 선을 그었다.

    “웰빙 정당, 부자 정당의 오명을 씻겠다”는 말도 자주 내뱉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원래부터 본인 소신이었겠느냐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다분히 당 안팎 여론을 의식한 즉흥적인 ‘언사’가 아니냐는 뜻.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은 “시기적으로나 당의 역학구도 및 율사(律師) 출신이라는 점에 비춰 이런 행보가 오해를 낳을 수는 있다. 그러나 소신이 아니라고 몰아세울 수도 없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인 황 원내대표는 자유선진당 이회창 전 대표의 측근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보수적인 이미지를 벗으려고 많이 노력했다. 15대 국회에 들어오자마자 민생 관련 법률안을 폐기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고, 공직자부패방지법을 정비하는 차원에서 공무원 재산 실사제, 퇴직 후 관련 업체 취업 금지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보면, 황 원내대표가 최근 내놓은 주장이 즉흥적인 것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친이·친박 화학적 결합 노려

    그동안 국회 상임위원회(이하 상임위) 경력에서도 황 원내대표 리더십의 한 ‘단면’을 예측할 수 있다. 황 원내대표는 4선 임기 동안 주로 교육, 보건, 복지 분야 상임위에서 활동했다. 대학원에서도 보건학과 교육학을 전공했고, 3개 학교에서 학위를 받았을 만큼 관심도 남다르다. 국민 사이에서 개선 요구가 높은 사안과 관련해 일단 당내에서 주도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필요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렇다면 황 원내대표가 생각하는 자신의 리더십은 어떨까. 이는 앞으로 그의 행보를 예상할 때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황 원내대표는 이번 경선에서 리더십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9년 당 원내대표 경선에선 ‘섬기는 리더십’으로 당 변혁을 이끌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당 의원들의 관계, 특히 친이와 친박계의 유기적, 화학적 결합을 도모하겠다는 의미였다.

    황 원내대표는 초선의원 시절 당내 지도자의 리더십 방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밝히기도 했다. 그는 정치적 리더십의 핵심을 ‘세일즈’에 맞췄다. 1996년 2월 신한국당 중앙선대위의장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 황 원내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한 발언이다.

    “정치는 세일즈인데, 소비자인 국민을 상대로 내 상품의 장점만 홍보하면 그만이지, 다른 회사 상품의 단점을 뭐하러 들추느냐.”

    당내에서 민심을 충실히 대변하되 야당과는 불필요한 정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15년이 지난 최근 발언에서도 황 원내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야당을 존중하고 무서워하면서 걷겠다” “야당과 타협이 안 되더라도 몸싸움이나 위법적, 위헌적 조치는 하지 않겠다” 등이 그것이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원칙론을 말한 것이지만, 한편으론 당·청 관계에서 험난한 가시밭길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황 원내대표에 대해 민주당의 핵심 관계자는 “원래 적이 없고, 원칙에 충실한 분이기 때문에 기대가 크다”고 전제한 뒤 “다만 스스로 입지를 견고히 구축하지 못한 채 당내 계파적 관계에 파묻힐 경우 오히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황 원내대표는 그동안 자신이 몰랐던 리더십까지 찾는다는 각오로 뛰어야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주류 원내대표의 향후 행보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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