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6

2011.05.09

눈을 사로잡는 낯선 미지의 공간

‘스페이스 스터디’전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11-05-09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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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사로잡는 낯선 미지의 공간

    정재호의 ‘메타모포시스’.

    전시 흥행 제1 조건은 바로 ‘위치’입니다. 관람객이 얼마나 접근하기 쉬운 곳에서 전시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거죠. 이런 점에서 볼 때 서울시청 인근의 ‘서울시립미술관’과 ‘덕수궁미술관’은 위치가 매우 좋습니다. 방학 같은 주요 시즌에는 이곳에서 전시하려는 기획자의 경쟁이 무척 치열하다고 해요.

    최근 문을 연 삼성미술관 ‘플라토(Plateau)’도 위치로만 따지면 앞의 두 미술관에 전혀 뒤지지 않습니다. 서울 태평로2가 삼성생명 본관에 있는 이 미술관은 1999년 개관한 ‘로댕갤러리’가 전신인데 3년 만에 재개관하면서 ‘퇴적층(堆積層)’ ‘고지(高地)’라는 뜻의 ‘플라토’로 이름을 바꿨죠. 플라토 홍라영 총괄부관장은 새 이름에 대해 “과거의 예술적 성과와 현재 및 미래의 예술적 실험이 한곳에서 만나 재해석된다는 의미의 ‘퇴적층’과 예술가들이 한 번은 오르고 싶어 하는 ‘고지’를 합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재개관 후 첫 전시는 7월 10일까지 열리는 ‘스페이스 스터디(Space Study)’전입니다. 김수자, 이불, 안규철, 노재운, 구동희, Sasa[44]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4명의 현대 작가가 ‘플라토’라는 전시 공간을 탐색 대상으로 삼아 각자의 방법으로 풀어낸 작품이 전시됩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돔으로 된 천장을 ‘붉은 꽃’(384개의 연등)으로 수놓은 김수자의 ‘연꽃 : 제로지대’가 눈에 띕니다. 원기둥에 설치한 6개의 스피커에서는 티베트 승려의 만다라 독송, 그레고리안 성가, 이슬람 성가가 섞인 ‘신을 부르는 노래’가 흘러나오죠. 서울 한복판의 미술관이라는 ‘장소’에서 삶과 죽음, 신과 인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미지의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 낯섦이란.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짙은 하늘색 벽면에 암호문 같은 숫자가 적혀 있는 Sasa[44]의 ‘107가지의 수와 네 단어’는 로댕갤러리가 개관한 1999년을 숫자로 기록한 작품입니다. 그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사건과 사고를 숫자로 표시했는데, 이 미술관이 소유한 로댕의 ‘지옥의 문’에 호응하듯, 주로 죽음에 대한 기록입니다.



    김인숙의 ‘토요일 밤’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독일 뒤셀도르프에 실제로 존재하는 한 호텔과 그곳의 66개 방 하나하나에서 벌어지는 일을 묘사한 사진 작품입니다. 호텔 방 창문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 군상의 온갖 행위를 ‘엿보며’ 즐거워하는 제 모습에 저에게 관음증이 있는 건지, 아니면 그들이 의도적으로(그러면서도 은밀하게) 자신을 노출한 것인지 헷갈립니다. 호텔의 모습은 길거리에서 흔히 만나는 유리건물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무척 낯설게 느껴지더군요. 전시물 앞면이 아닌 뒷면을 표현한 안규철의 ‘식물의 시간’, 플라토의 내부와 외부 전경을 콜라주 기법으로 표현한 정재호의 ‘메타모포시스’도 제 발길을 붙잡았습니다.

    눈을 사로잡는 낯선 미지의 공간
    신선하고 재미있는 전시지만, 두 가지가 아쉬웠습니다. 하나는 전시 설명 없이는 이해하기 다소 어렵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직장인이 많은 서울 중심가에 위치한 미술관이지만 오후 6시 ‘칼처럼’ 문을 닫는다는 점입니다. 일반 3000원, 초중고생 2000원. 전시 설명 오후 2시, 오후 4시(주말과 공휴일 오전 11시 추가). 매주 수요일 오후 12시 40분 직장인을 위해 전시 핵심만 설명하는 ‘10-minute talks’ 진행. 문의 1577-7595 www.platea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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