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6

2011.05.09

낯선 사람 위험? 불안은 불안을 먹고 자란다

우리는 왜 공포에 빠지는가?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1-05-09 1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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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선 사람 위험? 불안은 불안을 먹고 자란다

    프랭크 푸레디 지음/ 박형신·박형진 옮김/ 이학사/368쪽/ 1만9000원

    학생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아동성범죄자들이 학교에서 범행 대상을 찾고 있다. 학교에 들어가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지난해 6월 김수철은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들어가 8세 여학생을 납치한 뒤 성폭행했다. 학부모들은 불안에 떨며 대책을 내놓으라고 정부를 다그쳤다. 하지만 8개월 뒤 40대 남성이 서울의 다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던 유치원생을 인근 놀이터로 데려가 성추행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 가운데 하나는 학교지킴이를 배치하는 것. 어린이 안전을 책임지는 만큼 인성까지 철저히 검증해 뽑겠다고 했다. 이것으로 학부모와 학생의 공포가 사라질 수 있을까.

    영국 켄트대 사회학과 프랭크 푸레디 교수는 ‘우리는 왜 공포에 빠지는가?’에서 “모든 것에 공포가 달라붙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현재를 공포가 만연한 ‘공포 문화’ 사회로 본다. 그리고 공포에 떨기보다 자기 성찰을 통해 공포 유발의 근원을 치유하라고 강조한다. 책에도 아동성범죄가 하나의 예로 나온다. 그는 “범죄에 대한 고도의 불안”이 “세계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뿐”이라고 지적한다. 아동성범죄와 관련한 불안이 패닉에 가까운 공포를 불러일으킨다는 것. 그는 신문의 과장 보도와 ‘낯선 사람 위험’ 감시대 같은 시민단체의 활동이 공포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고 비판한다.

    그는 아동성범죄 예방이라는 선의의 목적에서 한다 해도 공포를 조장하거나 정보를 선동적으로 조작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괴 같은 비극이 “모든 아이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데 일조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미국에서는 1년에 100명이 안 되는 아이가 유괴되지만 오히려 각종 정보가 일반인의 우려를 낳았고, 그 결과 ‘오하이오 취학 아동의 절반이 자신이 유괴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됐다며 안타까워한다.

    또한 저자는 “과거 인간은 예측할 수 없는 자연에 공포를 느꼈지만 이제는 ‘인간이 스스로 만든 위험’에 공포를 느낀다”며 “그 대안은 서로에게 ‘유독(有毒)한 존재’가 된 사람들이 서로 믿을 수 있도록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공포의 원천인 사람 간 불신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 아이의 부모 입에서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마라”는 당부의 말이 더는 나오지 않을 정도로 신뢰 네트워크가 쌓여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를 위험에 너무 신중한 나머지 타인의 위험을 외면하는 태도를 버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 책이 한국 독자를 설득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현실은 절망적이다. 광주에서는 중학교 학교지킴이로 근무하던 60대 남성이 재학생에게 음란물을 보여주고 강제로 입맞춤하다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정부가 보증한다던 안전장치마저 위협으로 돌변할 때 누가 누구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바로 여기에 이 책의 아쉬운 점이 있다. 저자는 공포 문제를 분석하면서 소득 수준을 비롯해 각 나라, 지역, 공동체가 처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한 덩어리로 취급했다. 저자도 이 책에서 저소득층 아이의 사망 위험이 중산층 아이보다 2배 이상 높고, 가난이 평균수명을 9년 정도 단축한다는 사실을 언급했지만, 거기까지가 끝이다. 과연 소득 수준과 처지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포를 줄여보겠다’며 신뢰를 쌓고 연대하는 일이 가능하기나 할까. 그가 말하는 ‘신뢰 회복에 의한 공포 해결’이라는 대안은 공포에 떠는 사람들에게 와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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