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6

2011.05.09

여전히 ‘알자와히리’는 살아 있다

빈 라덴보다 위험한 알카에다 2인자 … 美, 제2의 대형 테러 경계령 내려

  •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기자(정치학박사) kimsphoto@hanmail.net

    입력2011-05-09 10: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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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알자와히리’는 살아 있다
    파키스탄의 한 안가에 숨어 지내던 오사마 빈 라덴이 5월 2일 새벽 미군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됐다. 반미저항조직 알카에다의 우두머리이자 2001년 9·11테러를 계획한 인물로 1990년대 이후 20년간 ‘반미 지하드’(성전)에 몰두해온 그의 죽음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비무장 상태였던 빈 라덴을 체포하지 않고 즉결 처형하듯 사살한 것이 과연 적절했나, 미군이 빈 라덴 제거를 위해 펼친 비밀 군사작전이 파키스탄의 주권을 무시한 것은 아닌가 등의 논란이 꼬리를 물고 있다.

    빈 라덴의 사부 9·11테러 기획

    좀 더 현실적인 관심은 빈 라덴의 죽음으로 미국이 테러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빈 라덴 사살 소식에 미국인은 성조기를 흔들며 환호했지만,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9·11테러 이후 세계 곳곳(스페인 마드리드, 영국 런던, 인도네시아 발리, 모로코 카사블랑카, 튀니지,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에서 벌어진 테러는 대부분 빈 라덴의 지령이 아닌, 그의 투쟁에 공감하는 소규모의 자생적 과격조직이 저지른 것이었다. 이를 두고 테러 전문가들은 “9·11테러 이후 빈 라덴과 그의 조직 알카에다를 축으로 한 반미저항이 조직에서 운동으로 바뀌었다”고 풀이한다. 9·11테러 이후 빈 라덴은 체포를 피해 잠행을 거듭했고, 따라서 일선에서의 구실은 제한적이었다. ‘지하드 닷컴(jihad.com)’의 회장이라는 상징적인 직함을 지녔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빈 라덴에 이어 지하드 닷컴의 최고경영자(CEO)가 될까. 이집트 출신의 의사이자 알카에다의 2인자로, 9·11테러를 함께 계획한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첫손에 꼽힌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2008년 9·10월호에서 알자와히리를 가리켜 ‘1인자보다 영향력이 큰 2인자’라고 했다. 빈 라덴(1957년생)이 알카에다의 ‘얼굴’이자 간판스타라면 6세 위인 알자와히리는 ‘두뇌’다. 알카에다의 이론가로서 빈 라덴의 사부 같은 존재가 바로 그다.

    이집트 국립카이로대 의대를 졸업한 의사 출신인 알자와히리는 청년 시절에 “이슬람 근본주의만이 서구세력의 침탈로부터 아랍세계를 살릴 수 있다”는 신념 아래 무슬림 형제단의 한 과격분파에 가입했다. 1979년 이집트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 아랍국 지도자 가운데 처음으로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자, 그는 사다트를 ‘아랍의 배신자’로 여겼다. 그는 공식행사장에서 군부대를 사열 중이던 사다트를 사살(1981년)한 사건에 연루돼 3년간 감옥에서 지냈다. 그가 빈 라덴을 처음 만난 것은 1984년 출옥한 후 파키스탄 서부 페샤와르로 활동무대를 옮겼을 때다. 빈 라덴은 당시 아프가니스탄 내전에 무자헤딘(이슬람 전사)으로 참전하고 있었다. 첫 만남 이후 두 사람은 말 그대로 ‘평생 동지’가 됐다.



    9·11테러를 사실상 계획하고 이끌었던 알자와히리는 지난 10년 가까이 빈 라덴을 대신해 반미 지하드를 이끈 사령탑이다. 미국 정부가 알자와히리에게 건 현상금이 2500만 달러라는 사실이 그의 무게감을 잘 말해준다. 포토맥정책연구소의 토피크 하미드를 비롯한 미국의 중동 전문가들은 “빈 라덴보다 더 어렵고 위험한 상대가 알자와히리”라고 경고한다. 그는 알자지라를 비롯한 아랍계 미디어를 통해 반미 지하드를 촉구하는 수십 편의 메시지를 잠재적 동조세력에게 보냈다. 때로는 빈 라덴과 함께 투쟁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우리는 아직 살아 있고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가장 최근에 전달한 메시지는 4월 14일 공개된 비디오 연설. 여기서 그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의 리비아 내전 개입을 비난했다.

    지하드로 끊임 없는 투쟁 강조

    알자와히리의 행방은 안갯속이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지난 10년간 그가 빈 라덴과 함께 지낸다고 믿었으나 빈 라덴 사살 과정에서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게 밝혀졌다. 알자와히리는 9·11테러 이후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공습 때 ‘예언자의 깃발 아래 모여든 기사들(Knights Under the Prophet’s Banner)’이라는 글을 썼다. 파키스탄으로 밀반출된 원고는 2002년 영국 런던의 한 이슬람계 출판사에서 책으로 나왔다. 모두 3부 21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빈 라덴과 알카에다의 투쟁이념을 이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1차 자료다.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은 잘 훈련된 소수 정예요원으로 이뤄진 비밀조직의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는, 마치 9·11테러 같은 대형 테러 방식을 알자와히리가 선호하며, 따라서 빈 라덴 사망 후 보복 차원에서 제2의 9·11테러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작은 규모의 조직이 미국과 유대인을 겁에 질리도록 할 수 있다. 자살 폭탄공격은 소수의 희생으로 적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안기는 가장 성공적인 방법이다. 나는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가들에게 가능하면 적의 피해를 극대화하는 방법을 찾으라고 촉구한다. 피해가 크면 클수록 적들이 우리 말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다.”

    알자와히리는 결론 부분에서 “손실과 희생이 아무리 크더라도 무기를 내려놓지 말아야 한다”며 끊임없는 투쟁을 강조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십자군연합은 우리가 아랍에서 권력을 잡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이슬람세계 중심부에 이슬람 근본주의 이념을 구현하는 국가를 세운다는 것은 쉽지 않으며, 가까운 시일 안에 이뤄질 가능성도 적다.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가들은 조급한 마음을 가져선 안 된다. 인내심을 지닌 투쟁이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지하드(성전) 없이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

    미국 워싱턴의 오바마 대통령이나 정보기관 간부들이 이런 구절을 읽는다면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빈 라덴 제거 작전의 성공에 취해 있기보다 제2의 대형 테러를 경계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울러 반미테러의 정치적 동기인 미국의 친이스라엘 일방정책과 중동 석유자원을 겨냥한 미국의 패권정책을 수정, 완화함으로써 중동지역의 흉흉한 반미정서를 다스리는 데 힘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빈 라덴의 반미투쟁 이념에 공감하는 자생적 저항조직이 끊임없이 생겨날 테고, 그들과의 전쟁이 끝없는 무한전쟁 양상을 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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