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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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노신사도 응원, 깜짝 인기에 아직 얼떨떨하죠”

‘나는 가수다’ 탈락으로 뜬 가수 정엽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11-04-11 11: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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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대 노신사도 응원, 깜짝 인기에 아직 얼떨떨하죠”


    사실 조금 떨렸다. 기자 역시 2003년 1집 음반 ‘Soul Free’가 나왔을 때부터 그룹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팬이었기 때문이다. 가수 겸 작곡가 정엽(34·본명 안정엽)은 이 그룹의 리더. 3월 5일 저녁 서울 논현동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강렬한 원색 니트에 중절모를 쓰고 있었으며, 다소 수척해 보였다. 사방이 꽉 막힌 어두운 녹음실에서 탁자를 두고 마주 앉아 마치 친구와 수다떨 듯 이야기를 나눴다.

    MBC ‘우리들의 일밤’의 한 코너인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 출연하면서 유명세를 탄 정엽은 이미 20~30대, 특히 여성 팬 사이에서 ‘아이돌’ 이상의 스타였다. 특히 ‘사랑하는 당신이 내 곁에 있어주면 더는 좋을 게 없다’는 내용의 대표곡 ‘Nothing Better’는 최고의 프러포즈 노래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나가수’는 그를 전 세대를 아우르는 가수로 만들었다.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무대에 올랐고, 3월 27일 방송에서 7명의 가수 가운데 7위를 했지만 재도전하지 않고 ‘쿨’하게 물러서는 모습은 시청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나가수’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정엽은 “지금의 상황이 무척 신기하면서도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예전에 식당에 가면 젊은 친구들만 간혹 저를 알아보곤 했는데, 지금은 다 알아보세요. ‘나가수’를 하면서 공중파, 특히 ‘프라임 타임’의 중요성을 깨달았죠. 한번은 길을 걷는데 나이 지긋한 노신사가 ‘정엽 씨, 노래 잘 들었어요’라며 악수를 청하셨어요. 제 블로그에 50~60대 분들도 글을 남겨주시고요. 회사로 응원 전화도 많이 오고 있어요. 제 미션곡이 ‘짝사랑’이어서 어르신들이 더욱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무척 감사하죠.”

    정엽은 ‘나가수’ 출연 요청이 왔을 때 흔쾌히 응했다.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녹화 첫날 다른 출연진의 면면을 보고 깜짝 놀랐고, 그만큼 기뻤다. 특히 그가 아주 좋아하는 목소리를 가진 가수 김건모와 함께 출연한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 가장 부담이 없었기에 무대에서도 전혀 떨지 않았고, 7위를 했을 때도 크게 낙담하지 않았다.



    “솔직히 단 한 번도 긴장한 적 없어요. 오히려 탈락하니 조금씩 조여오던 부담감에서 해방돼 마음이 무척 편했어요. 제가 물러나면 다른 가수가 와서 좋은 무대를 보여줄 수 있잖아요. 방송에서 ‘아쉽다’고 말한 장면이 있는데, 실은 제 매니저를 맡은 개그우먼 김신영 씨에게 ‘너랑 헤어지는 게 아쉽다’고 말한 건데, 앞부분이 잘렸더라고요(웃음). 신영 씨나 저나 낯가림이 좀 있어서 서먹하다가 마지막 녹화하는 날 겨우 친해지기 시작했거든요.”

    신인가수? 실력 갖춘 8년 차 베테랑

    그는 ‘나가수’ 첫 경연에서 7위를 한 김건모의 재도전이 이처럼 논란을 불러일으킬지 몰랐다. 녹화할 때는 가수 간 경쟁 구도가 방송처럼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편집된 방송을 보니 느낌이 많이 달랐다. 정엽은 “결과를 다 알고 방송을 봐도 긴장됐는데, 시청자들은 더 그랬을 것”이라며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기에 논란도 그만큼 커진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김건모 선배의 재도전은 또 다른 용기였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부담을 안고 가는 거고, 연륜과 경험이 없으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없거든요. 개인적으로는 김건모 선배가 부른 ‘You‘re my lady’를 들을 수 있어 행복했어요. 솔직히 제 노래보다 좋은 것 같아요.”

    프로그램이 잠정 중단되는 등 ‘나가수’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오히려 정엽은 탈락함으로써 논란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나가수’를 통해 새로 알게 된 가수 1위에 꼽힐 만큼 인지도도 쌓았다. 하지만 TV에서 모습을 보기 힘들었을 뿐, 정엽은 브라운 아이드 소울 앨범 3장, 솔로 앨범 1장을 냈고 공연도 수없이 많이 한 데뷔 8년 차 베테랑이다. 그는 언제부터 가수를 꿈꿨을까.

    “초등학교 4학년 때 팝을 듣기 시작하면서 어렴풋이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단지 대중가수만 꿈꾼 것은 아니고, 그저 음악인이 되고 싶었죠. 대학도 국악과에 진학하려고 했어요. 고3 때 경기민요를 체계적으로 배웠는데, 참 좋았거든요. 집안에 문제가 생겨서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요. 대학 진학 후 가수가 되는 길을 다양하게 모색했지만 쉽지는 않았어요. 그러다가 군대 영장이 나왔고, 군복무 중에도 음악을 할 수 있는 해군 홍보단에 지원했어요.”

    그는 해군 홍보단 시절 무척 행복했다. 특히 낙도를 찾아다니면서 공연했는데, 자신의 노래에 덩실덩실 춤추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마음이 참 뿌듯했다. 주요 레퍼토리는 ‘봉선화 연정’ ‘섬마을 선생님’ ‘홍콩 아가씨’ 등이었다. 정엽은 “당시 어떤 상황에서도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트로트 10곡을 ‘장전’하고 다녔다”면서 “지금도 구성지게 트로트 한 곡 뽑을 자신이 있다”며 웃었다. 군복무를 하면서 음악 동지도 많이 만났다. ‘나가수’에서 ‘짝사랑’과 ‘잊을게’를 리듬앤블루스(R·B) 스타일로 편곡한 에코브릿지도 그때 인연을 맺었다.

    정엽은 전역 후 브라운 아이드 소울로 데뷔했다. ‘브라운 아이즈’로 유명해진 멤버 나얼 덕분에 데뷔와 함께 주목받았지만, 이후 공연을 주로 했을 뿐 방송 활동을 많이 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TV를 피한 것은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다.

    “사람들은 저를 포함해 우리 멤버를 베일에 싸인 독특한 음악인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아주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일 뿐이에요. 술과 담배를 좋아하고, 남자들끼리 우르르 몰려가 당구 치는 것도 즐기죠. 패션과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고, 쇼핑하는 것도 좋아해요. 특히 아이돌그룹의 팬입니다(웃음). 멋있잖아요. 사실 무대에서 그렇게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는 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거든요. 아이돌 위주의 가요계를 비판해달라는 분이 많은데, 솔직히 저는 대중이 아이돌을 원하면 그게 맞는다고 봐요. 그 대신 저 같은 뮤지션이 대중에게 선택받을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해야겠죠.”

    “60대 노신사도 응원, 깜짝 인기에 아직 얼떨떨하죠”
    내 인생 목표는 사랑 … 다양한 장르로 표현

    앞으로는 방송에서 정엽을 자주 볼 수 있을 듯하다. 오디션 심사위원 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출연 요청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 그는 ‘열린 마음’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또 그가 DJ를 맡고 있는 MBC 라디오 ‘푸른밤, 정엽입니다’는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기에 방송사에서 ‘자르지’ 않는 한 계속하고 싶다고. 9월 솔로 2집 앨범을 발표하고, 10월 단독 콘서트도 열 예정이다. 2집에는 R·B, 소울뿐 아니라 포크, 모던 록, 댄스까지 다양한 장르를 실을 계획이다.

    팬들은 그를 ‘숨소리마저 듣게 만드는 가수’라고 평한다. 진성과 가성을 넘나드는 음색과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는 섬세한 감성은 사랑과 이별, 그로 인한 기쁨과 슬픔을 때로는 감미롭고 때로는 처연하게 표현한다. 그의 음악은 거의 다 사랑 이야기다. 정엽은 “내 인생의 목표가 사랑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 고3 때 이후로 연애를 쉰 적이 없어요. 최근 2년만 솔로가 됐네요. 처음에는 혼자인 게, 주말이 한가한 게 어색했는데 지금은 너무 바빠서 괜찮아요. 하지만 제 인생의 목표는 여전히 사랑이에요. 음악을 하는 이유도 물론 사랑이죠.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좋은 감성을 받아 음악으로 표현하고, 이것이 물질적 혜택을 가져다주고, 이를 통해 다시 사랑하는 여자와 ‘맛있는 것’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그야말로 행복한 인생이죠.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려고요. 먼저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야겠네요. 지금 좀 외롭긴 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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