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2

2011.04.11

‘골 가뭄’ 이청용을 위한 변명

소속팀에선 ‘펄펄’ 대표팀에선 ‘설설’…잠재된 멀티능력 키우기 ‘시간 필요’

  • 최용석 스포츠동아 기자 gtyong@dona.com

    입력2011-04-11 1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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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 가뭄’ 이청용을 위한 변명

    이청용은 박지성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득점보다는 팀이 득점을 올리고 승리를 거두는 데 더 집중한다.

    박지성(30·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함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한국 축구의 우수성을 자랑하는 ‘블루 드래곤’ 이청용(23·볼턴 원더러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2골을 넣는 등 맹활약했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조광래호 출범 이후 A매치 10경기 내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윙어를 맡은 그의 임무 중 하나가 득점이다. 3월 국내에서 열린 온두라스와의 평가전에서 그는 3번의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그러자 팬들 사이에선 이청용이 태극마크를 달면 유독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이청용은 “소속팀과 대표팀에서의 임무가 조금 다르다. 아직은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가 언급한 대표팀과 소속팀에서의 임무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이 왜 득점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측면에서 중앙으로 포지션 변경

    볼턴 원더러스(이하 볼턴)에서 이청용은 전형적인 윙어를 맡고 있다. 측면 돌파에 이은 크로스를 통해 최전방 공격수에게 볼을 전달하는 것이다. 볼턴의 오언 코일 감독은 이청용이 측면에서 가운데 쪽으로 이동해 플레이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측면 플레이가 좋은 이청용의 장점을 극대화하겠다는 것. 볼턴에는 제공권 장악과 득점력이 좋은 스트라이커가 즐비하다. 굳이 이청용이 측면을 버리고 중앙으로 이동해 플레이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게 코일 감독의 생각이다. 이청용도 이에 동의한다.

    반면, 대표팀 조광래 감독은 이청용에게 중앙에서의 플레이도 요구한다. 그래야 오른쪽 측면에 공간이 생기고 풀백들의 오버래핑을 통해 더 많은 득점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 어려서부터 이청용을 지켜봤던 조 감독은 제자가 중앙에서도 충분히 잘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대표팀에 이청용이 합류하기만 하면 스트라이커에 가깝게 움직이도록 주문한다. 지난해 일본, 그리고 3월 온두라스와의 평가전에서 중앙을 넘나드는 이청용의 모습이 자주 보였다.



    이처럼 볼턴과 대표팀이 이청용에게 원하는 플레이가 다르다. 그가 좋은 선수라는 칭찬을 받기 위해선 대표팀과 소속팀 감독이 원하는 각각의 임무를 100%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청용에게는 중앙 플레이가 아직 불편한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박지성도 이청용처럼 득점력과 관련해 아쉬움을 지적받은 적이 있다.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서 득점 기회가 있어도 자신보다 더 좋은 자리에 있는 선수에게 볼을 패스해 득점을 유도했다. 팬과 관계자들은 “박지성이 좀 더 욕심을 부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후 박지성의 득점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그런 지적은 사라졌다.

    다시 이청용의 플레이를 보자. 이청용은 이타적인 플레이를 통해 팀의 조직력을 한층 올리는 선수다. 하지만 혹자는 박지성에게 한 것처럼 “좀 더 욕심을 부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는 조 감독도 이청용에게 바라는 점이고, 전임 허정무 감독도 주문했던 사항이다. 득점이 가능한 시점에는 과감한 슈팅으로 골을 노려야 한다는 것.

    2010년 남아공월드컵 본선에서 이청용은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전과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골을 만들어냈다. 득점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골을 터뜨리며 한국이 원정 월드컵 사상 첫 16강 진출을 이루는 데 기둥 구실을 했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면 지금 이청용의 대표팀 골 가뭄에 조급증을 가질 필요는 없다. 잠시 골이 터지지 않고 있을 뿐이다. 박지성에게도 그런 시기는 있었다.

    박지성 “경험 쌓으면 나 넘을 것”

    이청용이 전형적인 스트라이커를 맡았던 적은 없지만 공격에서 멀티 포지션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미 FC서울 시절부터 입증됐다. 세뇰 귀네슈 전 감독은 FC서울 지휘봉을 잡았을 때 2~3차례 이청용을 섀도 스트라이커로 기용했다. 일부 선수의 부상과 팀 사정으로 임시방편적인 시도였지만 이청용은 골을 넣고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중앙에서도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조 감독이 대표팀에서도 이청용에게 좀 더 공격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섀도 스트라이커는 아니지만 중앙에서 플레이하며 골과 어시스트로 대표팀의 공격력을 좀 더 끌어올려주길 바란다. 물론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처한 현실은 다르다. 소속팀에서는 새로운 포지션으로 옮길 경우 준비할 시간이 많다. 프로팀은 훈련시간이 그만큼 많이 보장된다. 그리고 한 경기에서 실패해도 다음경기를 위해 준비할 시간은 또 있다.

    그러나 대표팀에서는 그렇지 않다. 훈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힘들다. A매치를 위해 단 몇 경기를 뛰고 다시 소속팀으로 가야 한다. 물론 소속팀에서 대표팀에서와 같은 임무를 원한다면 대표팀 적응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청용은 볼턴으로 돌아가면 측면 플레이에만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청용이 중앙 플레이에 대한 적응도를 높이는 데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다.

    이청용이 대표팀에서 좀 더 많은 구실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조 감독이나 팬들 모두 인식하는 부분이다. 그가 오른쪽에서 더 많은 활약을 해야 박지성의 은퇴로 생긴 대표팀 내 왼쪽 윙어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 박지성의 경우를 보자. 박지성은 A매치 100경기에 출전해 13골을 기록했다. 박지성도 많은 골을 넣지는 못했다. 그러나 중요한 경기에서 어려울 때 한 방씩 터뜨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또한 박지성은 골뿐 아니라 동료들의 플레이까지 살리는 구실로 한국 축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이청용은 이제 A매치 38경기를 뛰었다. 그리고 5골을 만들어냈다. 박지성이 A매치 38경기를 뛰었을 당시보다 더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청용이 좀 더 경험을 쌓는다면 박지성 못지않은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박지성은 한 인터뷰에서 “청용이는 나보다 어린 나이에 영국에 와서 더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나보다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며 높이 평가했다.

    한 축구인은 우스갯소리로 “이청용이 당장 박지성만큼 플레이할 수 있다면 그가 왜 볼턴에 있겠는가. 첼시, 리버풀 등 더 좋은 팀이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잉글랜드뿐 아니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다른 빅리그 상위팀도 이청용 영입에 가세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평가 절하하는 의미로 들릴지 모르지만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한 말이다.

    이청용이 박지성 같은 존재감을 가지려면 많은 경험을 쌓아 한 단계 더 성숙해져야 한다. 지금은 이청용에게 부담을 주기보다 시간을 주고 기다려야 한다. 중요한 무대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 더 나아가 2018년 러시아월드컵이다. 그때가 되면 박지성의 말처럼 이청용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 축구에 대한 이해력과 영리함을 갖춘 이청용에게는 지금 잠시 쉬어가는 게 더 좋은 보약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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