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1

2011.04.04

배호 노래로 울리고 젊은 감각으로 웃기고

음악극 ‘천변카바레’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입력2011-04-04 1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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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호 노래로 울리고 젊은 감각으로 웃기고
    음악극 ‘천변카바레’(극본 강헌·박현향, 연출 김서룡)는 1960~70년대를 풍미하던 대중가수 배호의 노래를 바탕으로 한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그렇다고 배호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오마주 형식을 취한 건 아니다. 주인공은 천변카바레의 웨이터 ‘찰스’다. 찰스의 본명은 ‘배춘식’으로, 그는 두메산골에서 상경한 총각이다. 춘식은 자신이 추종하는 배호의 노래를 듣기 위해 카바레에 한번 들렀다가 얼떨결에 그곳에 취직했다.

    어느 날 배호가 ‘마지막 잎새’로 마지막 무대를 선보인 다음 세상을 떠난다. 춘식은 갈림길에 놓인다. 배호의 노래를 기똥차게 부르는 춘식에게 음반사 사장이 배호의 모창가수 ‘배후’가 되기를 제안한 것. 춘식은 극구 거절하다가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바꾼다. 그렇게 그는 ‘가짜’ 인생을 살아가는데, 점점 자신의 이름도, 정체성도 사라져가는 것을 느끼고 괴로워한다.

    아울러 춘식의 마음을 헤집어놓은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애정 문제다. 찰스는 밤무대 가수인 미미와 몇 차례 데이트를 하면서 그에게 마음을 홀딱 빼앗겨 고향에 있는 약혼녀 순심을 매몰차게 밀어낸다. 춘식과 두 여자의 삼각관계에는 결국 배신과 상처만 남는다.

    이 작품은 느슨한 인과관계로 엮인 ‘레뷔(revue, 시사풍자극)’이기 때문에 치밀한 드라마 구조를 갖추지는 않았다. 이야기는 에피소드 중심으로 속도감 있게 진행되며, 일련의 문제는 극 말미에 순식간에 해소돼 해피앤딩으로 끝난다. 대신 이 공연은 콘서트적인 요소들과 드라마가 교차하는 방식으로 폭넓은 연령대의 관객을 사로잡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편으로는 담소를 즐기며 음식을 먹어도 될 것만 같은, 진짜 카바레 쇼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젊은 감각의 개그를 섞은 트렌디한 창작뮤지컬의 형식을 보여준다.

    기본 무대는 카바레 무대 형태로 꾸며졌는데, 이외의 극적 공간에서 사건이 진행될 때는 영상으로 배경을 만들어낸다. 보통 소극장에서 영상을 사용할 때 선명하고 강렬한 영상과 소박한 아날로그 무대가 어우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번 무대는 주름진 커튼에 영상을 투사하는 동시에 무늬가 있는 고보조명으로 보완해 영상과 무대의 괴리감을 최소화했다.



    이 공연은 사실적 묘사로 환영을 창출하기보다 사회자와 배우들이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고 관객과 소통하려 한다. 아울러 배호의 흑백 사진을 영상에 투사하기도 하고, 생전의 음성을 들려주기도 하는 방식으로 공연 속에 현실을 침투시킨다. 레뷔의 특성상 드라마의 짜임새와 전개 방식이 탄탄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내용이 너무 빈약하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반영해 내용에 깊이와 풍부함을 더하면 좋을 것 같다.

    ‘천변카바레’는 2010년 초연한 이후 계속 개발 중인 작품이다. 복고 코드에 동시대적 이슈와 스타일을 잘 버무린다면 ‘그때 그 시절’을 잘 아는 관객의 향수를 자극하고, 젊은 층에게는 호기심 이상의 독특한 ‘맛’을 느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JK김동욱, 최민철이 배춘식 역으로 더블캐스팅됐다. 미미 역을 맡은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의 키보드 연주와 음색은 이 작품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또 하나의 요소다. 4월 1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02-708-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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