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1

..

부끄러운 21세기 ‘동물의 왕국’

성추문 ‘3종 세트’

  •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의학박사 psysohn@chollian.net

    입력2011-04-04 11:2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부끄러운 21세기 ‘동물의 왕국’
    최근 연이은 성(性)추문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1탄은 상하이 총영사관 외교관들과 현지 여성의 부적절한 관계가 주제였고, 2탄은 2년 전 자살한 여배우 장자연 씨의 자필 편지 공개로 재점화한 사회지도층 성 접대 의혹이었다. 결국 가짜 편지임이 드러나긴 했지만 사회적 파장은 컸고, 감정 결과를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3탄은 현재 진행형으로 신정아 자서전 파문이다. 그의 자서전 내용에 따르면, 정운찬 전 총리는 서울대 총장 재직 시절 그에게 서울대 교수직과 미술관장 자리를 제안했고, 밤늦게 호텔로 불러냈으며, 호텔 바에서 스킨십을 시도하는 등 도덕관념이 ‘제로’였다고 한다. 또한 현직 C 국회의원이 과거 유력 일간지 기자였을 때 택시에서 자신을 성추행하려 했다는 것이다.

    한결같이 힘과 권력 또는 돈을 가진 남성이 여성을 노리개 삼아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려 했다는 내용이다. 전해진 의혹이 모두 사실이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도덕적, 사회적 책무를 내팽개친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3명의 여성이 상대방 남성에게 보인 반응이 제각각이라는 점. 1탄의 여성은 상대 남성들을 철저히 이용했고, 2탄의 여성은 남성들에 의해 희생됐으며, 3탄의 여성은 남성들에게 복수를 하고 있다.

    일련의 소식이 청소년에게 전해지면서 권력 있는 남성은 모두 파렴치한 늑대이고, 얼굴이 예쁘면서 힘없는 여성은 성공을 위해 몸을 바치거나 유린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여겨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성욕이란 인간의 본능으로, 종족 번식과 유지를 위한 필수적 요소다. 일찍이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의 본능을 ‘성욕과 공격성’ 두 가지로 설명했다. 이러한 성욕과 공격성을 잘 해소하지 못하거나 이로 인해 갈등이 있으면, 여러 성격적인 문제가 생기거나 신경증적 증상이 생겨난다고 주장했다.

    드러나는 성과 권력 그리고 탐욕



    그러나 현대 정신의학에선 성욕 자체보다 인간관계, 애착, 현실 판단 능력, 충동성 또는 욕구 조절 등에서의 균형과 발전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성욕과 공격성을 있는 그대로 분출시키기보다 예술 또는 창작활동을 통해 승화시키거나, 다른 생산적인 활동으로 전치(轉置)시키는 것이 더 건강한 정신상태라 말할 수 있다. 여하튼 프로이트의 학설은 성에 관한 이야기를 금기시하고 억압해왔던 그전까지의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그 결과 지금은 성에 대한 담론과 관심이 지나치게 극대화돼 산업의 한 분야로까지 발전했다.

    이제 반성할 때가 됐다. 섹스는 힘 있는 자의 전리품도, 돈 있는 자의 소비 품목도 아니다. 섹스는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사랑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고, 의사소통의 수단이며, 사랑을 확인하는 절차다. 단지 쾌락의 극대화를 위해 섹스를 선택하거나 지배 욕구의 충족을 위해 여성의 몸을 취하는 것은 한마디로 부끄러운 짓이다.

    신정아 사건에선 그가 주장한 내용의 사실 여부를 검증해야겠지만, 진위를 떠나 앞서 거론한 두 남성은 이미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그의 책은 벌써 많은 부수가 판매돼 출판사에선 추가로 책을 찍어내고 있다. 그는 이른바 ‘가짜 예일대 박사’ 학력 위조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아 수감 생활을 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일생과 행적을 추적하면서 ‘사이코패스’ ‘반사회성 인격장애’ ‘공상 허언증’ 등으로 표현했다.

    우리 시대 지도층의 슬픈 자화상

    부끄러운 21세기 ‘동물의 왕국’

    '신정아 씨의 자서전 ‘4001’.

    또한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학력 검증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렇게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던 그가 지금 제2의 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젠 자유의 몸이 돼서 말이다. 한마디로 잔인한 복수다. ‘내가 그렇게 사회에서 매장됐으니 너희도 한번 당해봐라’는 심리다. 그가 말하는 ‘너희’는 평범한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아닌, 잘나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다. 바로 이 점에서 안타까운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의 과거 전력으로 비춰볼 때 상식적인 사람은 ‘또 거짓말한다. 이제는 또 다른 거짓말로 책을 팔아 돈까지 벌려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별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 그의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그에 대한 비판과 다그침보다는 거론된 남성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부끄러운 21세기 ‘동물의 왕국’

    ‘상하이 스캔들’로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덩 씨.(위) 위조로 밝혀진 장자연 씨의 편지봉투 사본.(아래)

    국민은 짜증 나고 실망한 상태에서 “도대체 국무총리고, 국회의원이고, 대학교 총장이고 간에 다들 왜 그런대?”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사회적으로 존경할 만하고 본받아 마땅한 사람이 많아야 우리 사회는 더욱 발전한다. 그러나 사회 지도층 및 권력 지배층을 이루고 있는 사람이 나와 똑같거나 심지어 내 친구의 품성보다 못한 인격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면, 누가 그들을 따르고 본받겠는가. 그저 공부 좀 잘하고, 인맥 좀 잘 형성해서 운 좋게 높은 자리 꿰찬 사람이려니 간주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슬프다. 적어도 대한민국 지도자들은 ‘나’라는 국민 한 사람보다 훌륭한 사람이기를 바랐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속속 출현하니 어쩌란 말인가. 당사자는 물론 억울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그분이 그랬을 리 없다. 정신상태가 다소 이상한 여자가 하는 말을 왜 믿는가”라고 반응하지 않는 것일까. 그래서 또 슬프다. 그분들과 가까운 명사들이 “평소 내가 아는 그분의 인격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왜 반론하지 않는가.

    한편 장자연 씨 사건의 경우, 점잖은 얼굴에 유식한 말로 포장한 모습 뒤에 숨어 있던 악마적 본성이 한 젊은 여성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더 두려운 사실은 그러한 악마가 우리 세상에 얼마나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차라리 그들이 섹스 중독자였으면 좋겠다. 병적인 현상에 의해 그러한 행동이 이루어졌으니 의학적으로 치료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정상적인 성 행동을 보이면서도 권력과 돈에 취해 여성의 몸을 탐했다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은 무척 슬픈 모습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힘 있는 남성들이여, 그대들은 수컷 사자인가. 모든 암컷을 거느리겠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그것은 과대망상이다. 그리고 탐욕이다. 탐욕의 결과는 패망이다. 여기는 사람이 사는 세상이고, 도덕이 아직 살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동물의 왕국’이 아니고, 약육강식만 존재하는 세렝게티 초원은 더더욱 아닌 까닭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