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1

2011.04.04

한류 열풍 불났네, 佛났어

프랑스, 한국 가전제품부터 김연아까지 인기 … 공중파에선 한국 다큐로 집중 조명

  • 파리=백연주 통신원 byj513@naver.com

    입력2011-04-04 1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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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류 열풍 불났네, 佛났어

    프랑스인들은 대부분 한국 제품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파리 몽파르나스 지하철역의 삼성 갤럭시폰 광고.



    프랑스에 사는 한인들은 올초‘France 2’에서 방영된 ‘un œil sur la planet’를 보고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이 프로그램은 공신력 있는 인터내셔널 다큐멘터리로 유명한데, 새해를 맞아 대한민국을 90분 동안 집중 조명했기 때문. 먼저 세계적 브랜드인 삼성의 위업을 세부적으로 분석했다. 대한민국 수원에 거대하게 형성된 디지털 단지와 각종 최첨단 휴대전화를 손에 쥔 한국인들을 보여줬다. 이와 더불어 최근 연평도 포격 도발로 긴장감이 고조된 남북한의 안타까운 현실도 재조명했다. 마지막으로 한류를 집중 취재했는데, KBS 드라마 ‘겨울연가’와 새로운 한류주자인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아시아 투어 콘서트 등을 보여주며 아시아에 부는 한국 바람을 확인했다.

    이렇듯 자국 방송에서 다룰 만큼, 프랑스에서 한국의 위상은 매우 높아졌다. 우선 프랑스인들은 한국 제품 하나쯤은 소유하고 있다. 삼성의 휴대전화, LG의 세탁기, 현대나 기아의 자동차가 대표적. 그런데 대부분의 프랑스인은 이들 브랜드가 미국이나 일본이 아닌 ‘한국의 것’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삼성이 한국 브랜드임을 아는 프랑스인은 많지 않았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줄리앙(29)은 한국 제품의 열렬한 팬이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자동차·영화에 특히 많은 관심

    “한국 제품은 고장이 거의 없다. AS도 프랑스나 다른 유럽의 브랜드들보다 제공 기간이 길고 확실하다. 한번 한국 제품을 사용하면 다른 것들은 자연히 구입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한국 사랑은 자동차업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한 자동차 세일즈맨은 “푸조나 시트로앵 등 프랑스 차가 많은데도 한국 차를 구입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합리적인 가격일 뿐 아니라 무상 서비스 기간이 최소 3년에서 5년까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프랑스 자동차들은 무상 서비스 기간이 1~2년에 지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특히 인기를 끄는 한국산 제품은 영화다. 이는 아시아에 부는 한류와는 확실히 다른 부분이다. 한국 영화가 적극적으로 프랑스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칸영화제를 통해서다. 1984년 이두용 감독의 ‘여인 잔혹사-물레야 물레야’가 한국 영화 최초로 비경쟁 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양윤호 감독의 ‘유리’나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 등이 연달아 초청되며 한국 영화 보급의 길을 조심스레 닦아갔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영화는 칸영화제의 뜨거운 지지를 얻어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과 ‘취화선’(감독상 수상)에 이어 2004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심사위원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특히 ‘올드보이’는 지금도 프랑스인 사이에서 회자되는 명작으로 남아 있다.‘올드보이’는 영화 전체에 깔린 묘한 분위기와 배우들의 열연, 탄탄한 스토리 등으로 프랑스 관객을 사로잡았다. ‘올드보이’ 외에 긴박함이 살아 있는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나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마더’ 등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 영화 마니아인 에세이스트 마리 로즈 로드리게즈 마르탕은 한국 영화의 특징으로 매우 강한 캐릭터를 꼽았다.

    “‘올드보이’의 최민식이나 유지태,‘마더’의 김혜자 등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강한 캐릭터가 한국 영화의 매력이다. 프랑스인들이 잘 모르고 있던 한국의 사회나 정치 상황을 알게 해줘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김기덕 감독의 ‘빈집’이다. 이 작품을 통해 김 감독을 알게 된 후 ‘나쁜 남자’ ‘사마리아’ 등 그의 작품을 모두 챙겨봤다. 한국 영화는 그 어느 나라의 영화와도 비교할 수 없다. 그만큼 독창적이고 새롭다.”

    프랑스에서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특히 인기를 끈다는 점도 독특한 부분이다. 마르탕은 “김기덕 감독은 몇 마디 대사만으로 영화 한 편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장”이라고 치켜세웠다.

    재미있는 사실은 프랑스인들이 ‘대장금’ ‘주몽’ 같은 한국 사극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다양한 연령대에게 사랑을 받는 한국의 사극은 이들의 눈에는 신기하게만 보인다. 프랑스 내 한국 드라마 마니아들은 “한국 사극이 다루기 쉽지 않은 역사 속 인물들을 대상으로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한다”며 극찬한다. 프랑스 낭시 2대학의 미디어 철학과 마뉴엘 교수는 “한국 사극처럼 자국의 역사를 대중화해 보여주는 것은 국민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그는 프랑스가 사극 드라마를 만들지 않는 이유와 한국 드라마의 인기 요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 프로덕션이 18세기 프랑스를 소재로 드라마를 만든다면, 배경에 맞추기 위해 어마어마한 스튜디오를 건설해야 한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자국 드라마에 관심이 별로 없다. 이러한 악순환 때문에 프랑스 시장은 더욱 침체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한국 드라마는 프랑스인들에게 참 매력적인 콘텐츠다.”

    한류 열풍 불났네, 佛났어

    프랑스인들은 삼성·LG·현대 등 기업 브랜드와 ‘문화상품’이 ‘한국의 것’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그것이 몇 년 전과 달라진 점이다.

    박주영, 남태희 선수에 찬사

    아시아권 한류의 일등공신은 K-Pop, 즉 가요 그리고 아이돌 그룹이다. 또한 한국 힙합에 관심을 가지는 젊은이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프랑스는 유럽 국가 중 독일과 함께 힙합이 크게 사랑받는 나라다. 프랑스 힙합 가수 ‘윈즈 D’는 5년 전 한국계 프랑스인 친구를 통해 한국 힙합을 접한 후 꾸준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한국의 대표적 힙합 가수인 드렁큰 타이거를 비롯해 리쌍, 다이나믹 듀오 등을 좋아한다”며 “한국 힙합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프랑스를 사로잡은 또 하나의 아이템은 한국 스포츠다. 특히 프랑스는 국민의 90%가 대표팀 유니폼을 소장할 정도로 축구에 관심이 많다. 한국 축구에 대한 관심은 단연 박지성에게서 연유했다. 프랑스인들은 90분간 지칠 줄 모르고 뛰는 한국 축구 스타에 놀랐고, 이후 다양한 한국 축구 선수들의 가능성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현재 프랑스 리그1에 완벽히 적응한 ‘AS 모나코’의 박주영과 ‘발랑시엔’의 남태희는 단연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축구 전문 방송 ‘르퀴프 데 디망시’의 평론단은 박주영에 대해 “정확한 패스 연결과 팀 동료와의 완벽한 호흡으로 한층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다. 프랑스 무대에서 쉼 없이 성장해 외국인 선수의 좋은 본보기가 됐다”며 찬사를 보냈다.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는 ‘킴(Kim)’이라 불리며 프랑스 내에서 많은 팬을 확보했다. 피겨스케이팅에 열광하는 프랑스는 자국의 간판선수인 남자 싱글의 브라이언 주베르(Brian Joubert)를 제외하고 이렇다 할 스타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동양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는 김연아의 화려한 무대에 빠지기 시작한 것. 더불어 마니아층이 많은 골프에서도 신지애나 미셸 위 등이 무척 인기를 끈다.

    특유의 끈기와 의지로 세계의 중심에 선 대한민국. 프랑스 한인들은 한국의 선전을 피부로 느끼며 뿌듯해한다. 특히 제품뿐 아니라 영화, 스포츠 등 문화 콘텐츠로 ‘문화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프랑스인들을 사로잡은 건 대단한 일이다. 최근엔 소수이긴 하지만 한국 드라마나 대중음악, 아이돌 스타에게 관심을 가지는 프랑스인도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 방송에서 한국 콘텐츠를 볼 날도 머지않은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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