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1

2011.04.04

쓰러지고 깨져도 2~3년이면 ‘별’ 딴다?

연예인 지망생이 말하는 오디션…1차 선발부터 ‘바늘구멍’, 선행학습 상술도 기승

  • 박혜림 기자 yiyi@donga.com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1-04-04 09: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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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러지고 깨져도 2~3년이면 ‘별’ 딴다?
    #1. 황빛나(23·가명) 씨는 지난해 2월 고향 부산을 떠나 홀로 서울에 왔다. 강남에 있는 실용음악학원과 댄스학원에 다닐 수 있을 뿐 아니라, 대형 기획사 오디션에 응시하기도 편하기 때문. 황씨는 대형 기획사를 비롯해 웬만한 유명 가수가 소속된 기획사의 오디션을 다 꿰고 있다. “A기획사는 발라드를 잘 부르는 사람이 유리하다” “B기획사는 20대도 잘 받아준다” 등의 정보를 들려주기도 했다. 오디션에서 평가받는 시간은 길어야 30초, 보통은 15초다. 황씨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평일에는 노래와 춤 연습에 몰두한다. 그리고 주말에는 생활비와 학원비를 벌려고 압구정에 있는 한 보드카페에서 10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한다.

    #2. 김모(28·가명) 씨는 오디션에 여러 차례 응시했다가 결국 자비로 앨범을 내기로 결심했다. 기획사 오디션에서 떨어지기도 했고, 소형 기획사에 들어갔다가 찜찜한 기분이 들어 박차고 나오기도 했다. 그는 현재 20대 초반부터 음악을 함께 해온 친구 네 명과 데뷔 앨범을 준비 중이다. 금전적으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다섯 명 모두 녹음실과 학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김씨는 “합격 가능성이 낮은 오디션에 자꾸 매달리느니 막막해도 우리 힘으로 앨범을 제작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오디션 열풍으로 지망생 더욱 늘어

    대한민국은 연예인 지망생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씨와 김씨처럼 연예인을 꿈꾸는 이가 넘쳐난다. 지난해 큰 인기를 끌었던 케이블TV Mnet의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2’에 지원한 이는 약 134만 명. 공식 통계는 없지만, 연예산업 관계자들은 연예인 지망생이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연예인 지망생이 각종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카페 ‘별을 꿈꾸는 아이들’은 3월 30일 기준으로 회원 수가 7만800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이 가수가 되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관문이 바로 오디션. 주로 연예기획사 오디션을 의미하지만, 최근에는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좋은 기회로 여기는 사람도 많다. 지난해 ‘슈퍼스타K 2’가 큰 인기를 끌면서 지상파, 케이블TV에서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을 너도나도 내놓고 있기 때문. 올 하반기만 해도 SBS ‘기적의 오디션’, tvN ‘코리아 갓 탤런트’ 등 다양한 연예인 선발 프로그램이 기다리고 있다. 배우 겸 가수 지망생 최민욱(24·가명) 씨는 “‘슈퍼스타K 2’의 허각이 대형 기획사에 도전했다면 합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자신은 “노래 실력만으로 가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반면, 사회 전반적으로 오디션 열풍이 확산되면서 데뷔할 기회는 별로 늘지 않았 는데 연예인 지망생 수만 많아졌다는 부정적 시각도 있다. 한 지망생은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고 스타에 대한 환상을 품는 사람이 오히려 많아지면서 오디션 경쟁률만 높아졌다. 갈수록 연예인 되기가 더 어려워지는 느낌”이라며 푸념했다.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한 명의 가수만 탄생할 뿐, 가수가 되는 주요 방법은 여전히 대형 기획사의 오디션이라는 것. 실제 기자가 만난 가수 지망생 대부분은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 등 대형 기획사에 들어가길 원했다. 대형 기획사 연습생이 되는 것이 연예인이 될 수 있는 지름길로 여겨지기 때문.

    대형 기획사의 연습생 시스템은 다방면에서 실력이 뛰어난 가수를 만드는 결정적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일본 후지TV의 한 프로그램에서는 ‘동방신기’ ‘카라’ ‘소녀시대’ 등 한국 아이돌그룹이 한류 열풍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로 연습생 시스템을 꼽기도 했다. JYP 측은 “연습생은 기획사가 만든 커리큘럼에 따라 보컬, 댄스, 외국어 등을 철저히 교육받는다”며 “요즘은 가수로 데뷔해도 연기, MC 등을 다 소화할 수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돼야 하기 때문에 커리큘럼이 더 복잡하고 전문화됐다”고 설명했다. 이 모든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을 기획사가 전액 부담한다는 점도 연예인 지망생에게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뜰 수 있는 대형 기획사 가장 선호

    쓰러지고 깨져도 2~3년이면 ‘별’ 딴다?

    JYP엔터테인먼트 연습생을 선발하는 공개 오디션 현장.

    지망생들이 대형 기획사를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는 유명 가수로 뜰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높기 때문. 대형 기획사는 거대 자본, 인맥을 갖고 있어 소속 가수는 앨범 제작 및 홍보, TV 출연 등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 황씨는 “대형 기획사에 소속된 가수는 뮤직비디오에서부터 스타일까지 때깔이 다르다. 소속사가 가수를 팍팍 밀어주는 느낌이 든다”며 대형 기획사 오디션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하늘의 별 따기’라고 표현되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 대형 기획사의 연습생이 돼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데뷔도 기약이 없을 뿐 아니라, 연습 강도도 만만치 않기 때문. JYP 관계자는 “연습생 기간은 보통 2~3년”이라면서 “하지만 개인차가 크다. 2PM의 우영은 연습 기간이 10개월 정도였지만, 2AM의 조권은 8년 정도였다”고 전했다. YG 관계자 역시 “빅뱅 멤버만 해도 연습 기간이 다 다르다. 긴 경우에는 6~7년, 짧은 경우에는 1~2년”이라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대형 기획사의 연습생은 대부분 학교 수업을 마치고 오후 6~7시경에 시작해 밤 10~11시까지 연습을 한다. 방학이나 주말에는 하루 종일 연습실에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한 대형 기획사에서 연습생 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가수 지망생 정상우(20대·가명) 씨는 “연습 기간도 길지만 노래, 춤, 공부, 몸매, 인성 등 다양한 부분을 평가받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컸다”고 회상했다. 그는 강압적이고 치열한 분위기가 견딜 수 없어 연습생 생활을 2~3년 만에 관뒀다. 오디션을 어렵게 통과해 연습생이 된다고 해도 데뷔 전까지는 계속 오디션의 연속인 셈이다.

    대형 기획사에서 매번 탈락하거나 나이가 20대 중반을 넘긴 지망생 중에는 중소형 기획사에 도전하는 사람도 많다. 김씨는 “20대 후반이면 대형 기획사에서는 할아버지나 마찬가지라 절대 합격할 수 없다는 말도 들었다”며 씁쓸해했다. JYP 관계자는 “10대를 제일 많이 뽑는 것이 사실”이라며 “중고등학생이 가장 많고 초등학생도 있지만, 최근에는 점점 더 어려지는 추세”라고 전했다. 아주 특별한 재능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한 20대 중반을 넘어서면 대형 기획사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

    외모 비하 모욕 예삿일에 일부는 돈 요구

    쓰러지고 깨져도 2~3년이면 ‘별’ 딴다?

    JYP 연습생에 뽑힌 연예인 지망생. 연습생이 돼도 데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중소형 기획사 중에는 좋은 가수를 배출한 내실 있는 곳도 많다. 하지만 연예인 지망생에게 금전적 대가를 요구하면서 상술을 부리는 기획사도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최민욱 씨는 소형 기획사 오디션에 지원했다가 200만~300만 원을 먼저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최씨는 “연습 비용이나 앨범 준비 비용을 요구하는 곳이 종종 있다”며 “그 돈을 주느니 차라리 개인적으로 연습하겠다”고 말했다. 김씨 역시 불쾌한 경험담을 들려줬다.

    “소형 기획사에 들어갔는데, 레슨을 시작하기 전에 실력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때 마침 대학 축제 시즌이어서 댄스곡을 연습한 뒤 축제나 행사를 돌아다니자고 했다. 기획사에 이용만 당하는 기분이 들어 관뒀다.”

    기획사 규모를 막론하고 오디션 과정에서 일부 심사위원은 지망생에게 모욕감을 주기도 한다. 이영은(23·가명) 씨는 한 중소형 기획사에서 오디션을 본 후 가수의 꿈을 아예 접었다. 키 154cm에 몸무게 60kg인 이씨에게 심사위원이 “무슨 자신감으로 얼굴도 안 고치고 그런 뚱뚱한 몸으로 여길 왔느냐. 노래, 몸, 얼굴 다 별로다”라는 악평을 쏟아냈다. 이씨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다른 가수 지망생들에게 “그 정도는 심한 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황씨는 꽤 유명한 가수를 여럿 배출한 기획사의 비공개 오디션에 참가했다가 수치심을 느꼈다. 거기서 “가수 A는 목에서 발까지 다 가리는 옷을 입어도 섹시한데, 너는 그렇지 않다”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

    흥미로운 점은 가수 지망생 대부분은 학원을 최소 1군데, 많게는 4~5군데 다닌다는 것이다. 보컬학원, 댄스학원, 외국어학원 등 종류도 다양했다. 치열한 기획사 오디션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한 분야라도 더 잘해서 눈에 띄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현재 전국에 등록된 실용음악학원만 110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현재 현대무용, 재즈댄스, 연기학원에서 수강하고, 보컬 수업은 일대일 레슨을 받고 있다. 만능 엔터테이너를 원하는 시대인 만큼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금전적으로 부담이 크다”며 “한 달에 과목당 적게는 20만~30만 원, 많게는 60만~70만 원까지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망생 중에는 각종 학원비, 레슨비를 충당하려고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기획사들은 선행학습이 오디션 합격에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JYP 관계자는 “개인의 음악이나 실력이 중요하긴 하지만, 연습생이 되면 모두 다시 트레이닝을 받는다”며 “준비가 잘돼 있으면 뽑힐 확률이 높을 수 있지만, 실제 선발된 이 중에는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친구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YG 측 역시 “단순히 노래 실력이 뛰어나다고 뽑히는 것이 아니다. 잠재성, 재능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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