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1

2011.04.04

“이공계 신바람 나면 국가경쟁력이 춤춘다”

과학계 대표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 “과학벨트 선정, 정치에 휘둘려선 곤란”

  • 이설 기자 snow@donga.com journalog.net/tianmimi

    입력2011-04-04 09:4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이공계 신바람 나면 국가경쟁력이 춤춘다”
    원자력발전소, 지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이하 국과위)…. 최근 과학 관련 이슈를 접할 일이 부쩍 잦아졌다. 이런 이슈로 최근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인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의 이름이 종종 매체에 오르내린다. 20년간 명지대에 재직한 물리학자로 과학계를 대표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3월 2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에서 만난 그는 교육 및 과학 현안에 대한 의견을 차근히 꺼내놓았다.

    국과위 출범 일단은 고무적인 일

    인터뷰 하루 전날인 3월 28일 국과위가 공식 출범했다. 국과위는 장관급 수장을 둔 행정기관으로, 과학기술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고 각 부처의 과학기술 관련 계획을 총괄한다. 이명박 정부가 과학기술부(이하 과기부)를 통폐합한 데 대한 자구책으로 만든 기관이다. 박 의원은 국과위 강화 법안 통과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그는 첫걸음을 내디딘 국과위를 어떻게 바라볼까.

    “국과위는 전체 국가 연구개발(R&D) 사업 예산의 75% 이상을 배분하는 권한을 갖게 된다. 이 점은 고무적이다. 아쉬운 점도 있다. 예산 조정 권한은 여전히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가 갖고 있다. 기재부 장관이 공식 자리에서조차 국과위 역할을 폄훼하는데, 앞으로 과학계가 뜻을 모아 상황을 잘 헤쳐 나가야 한다. 기회를 봐서 관련 개정안을 입법할 생각이다.”

    과학벨트 입지 선정과 관련해서도 여야 지역 간 갈등이 첨예하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과학벨트는 정치적 지역 이기주의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기초과학 강국이 되려면 적합한 입지를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초과학’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손짓과 표정도 풍부해졌다.



    “이제 모방하는 연구를 넘어 선도하는 연구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초과학을 튼튼히 해야 한다. 과학벨트는 바로 이 기초과학 중흥을 위해 계획됐다. 과학벨트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려면 입지보다 시스템 정비에 집중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에서 내놓은 연구결과를 기업이 신속하게 상품화하는 시스템을 따랐다. 기초과학 연구는 오랜 기간을 필요로 하는데, 시스템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국내 기초체력이 약화된 배경에는 부실한 이공계 교육이 깔려 있다. 한때 선망받는 직업으로 통하던 ‘과학자’는 1990년대를 거치며 인기가 뚝 떨어졌다. 외환위기와 취업전쟁이 맞물리면서 석·박사급 정년이 단축되는 등 오랜 노력에 비해 보상이 박해진 결과다. 박 의원은 “장학금 등으로 이공계를 장려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당한 상실감으로 이공계 교수나 박사가 자녀에게 ‘과학을 하지 마라’고 하는 상황이 10년간 이어졌다. 이공계에 들어가도 기초과학이 아닌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쪽으로 몰린다. 최근 이공계 특별장학금 등 제도적으로 이공계 진학을 장려하지만, 이런 단기 부양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보다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공계 출신 리더를 키워야 한다. 현재 리더는 대부분 인문 및 사회 계열 출신이다. 장·차관은 물론, 고위 공무원 중에도 이공계는 거의 없다. 국회의원도 단 두 명뿐이다. 이공계 인재는 인문사회 지식이 부족하다고 보는 것은 편견이다. 오히려 커뮤니케이션 능력만 갖추면 전문가로 능력을 발휘할 여지가 많다.”

    현대문명은 과학 바탕 위에 탄생

    “이공계 신바람 나면 국가경쟁력이 춤춘다”
    박 의원은 초선이다. 2008년 서울 송파갑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정계 진출 전에는 ‘천재’ 소리를 들으며 20대 후반부터 대학 강단에 섰다. 대학에서 국회로 둥지를 옮긴 지 3년. 바지런한 의원이라는 꼬리표를 달았지만, 소통 능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평도 나온다. 그는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까.

    “대학에 재직할 때도 이런저런 대외 활동을 했다. 물리학계에 여성이 워낙 적은데, 2000년 이후 여성 과학자를 키우자는 붐이 일면서 맡아야 할 일이 생겼다. 그러다가 지난 대선 이후 과기부가 교육과학기술부에 통합되면서 과학계 의견을 대변할 채널이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공무원의 전문성 및 책임감 부족으로 정책 결정이 왜곡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부분을 바로잡고 싶어 정계에 진출했다. 나는 20년간 대학에 재직했고, 두 아이의 엄마로 초중고교 현장을 경험했으며, 과학도 출신이라는 3가지 강점을 갖고 있다. 당에서 이런 점을 인정해 공천을 한 것이라고 본다.”

    박 의원은 지난해 두 딸을 모두 대학에 보냈다. 강남 사교육 1번지에서 자녀를 키우며 수시로 학교 현장의 모순을 체험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부터는 학교운영위원회를 맡아 적극적으로 생활 정치에 가담했다. 그는 “학교에서는 상식적인 부분을 바꾸는 일도 힘들더라”며 교육 현안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지금 평가에서 자유로운 직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 교수는 이미 30년 전부터 평가를 받고 있다. 초중고교 교원만 여기에서 비켜나 있다. 계류 중인 교원평가제는 반드시 관철돼야 한다. 대학 교육은 지나치게 보통 교육화된 측면이 있는데, 교과 과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무상급식은 시행 중인 학교·학부모 사이에서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안다. 원하지 않아도 똑같은 식단을 먹어야 하니까. 시설 보수 등 먼저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부분도 있는데, 무상급식을 시행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본다.”

    국내 과학기술계 종사자는 대학 7만 명, 출연연 1만 명, 기업 1만 명이다. 이런저런 인력을 모두 합하면 500만 명에 이른다. 박 의원은 입법 활동을 통해 과학계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동시에 대한민국 과학기술 마인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기술과 사람이 괴리되면 사회가 우울해진다. 현대 문명 전부가 과학과 관련 있는데, 과학을 모르면 사람이 기계에 끌려다니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적 마인드를 키우는 것은 필수적이다. 고등교육에서도 과학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