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1

2011.04.04

20대는 왜 ‘나가수’에 폭발했나

치열한 생존경쟁 그들 서바이벌 ‘룰’ 위반에 격렬한 반응

  • 박혜림 기자 yiyi@donga.com journalog.net/inourtime

    입력2011-04-04 09: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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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는 왜 ‘나가수’에 폭발했나
    3월 20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우리들의 일밤’의 코너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는 7위를 한 가수 김건모에게 재도전 기회를 주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나가수’는 7명의 가수가 노래 실력을 겨루고 7위를 한 가수를 탈락시키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참여 가수는 김건모, 이소라, 윤도현, 박정현, 김범수, 백지영, 정엽으로 한 명이 탈락할 때마다 새로운 가수를 투입할 예정이었다. 심사위원은 현장에서 공연을 관람한 일반인 500명이다.

    논란이 커지자 MBC는 23일 “담당인 김영희 PD를 교체한다”고 발표했고, 같은 날 가수 김건모 역시 프로그램에서 자진 하차할 뜻을 밝혔다. 27일 방송에서 7명의 가수가 혼신의 힘을 다한 무대를 선보인 후 누리꾼의 반응은 호의적으로 바뀌었지만, MBC는 프로그램 재정비 차원에서 한 달여 결방하기로 결정했다.

    흥미로운 점은 20대가 유난히 이번 사건에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냈다는 사실. 온라인 리서치업체 ‘마크로밀 코리아’가 ‘나가수’ 논란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전체 응답자의 47.2%가 ‘재도전 결정은 원칙을 어겼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답했다. 그런데 20대는 66.9%가 이같이 응답했다. 이는 평균보다 거의 20%포인트 높은 수치다.

    자신들에게만 가혹…예민하고 까칠

    왜 20대가 유난히 분노한 걸까. 지금의 20대가 다른 세대보다 훨씬 치열한 생존경쟁에 몰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이주희 교수는 “20대가 처한 상황이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무척 비슷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하면서 “20대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더 감정적으로 투사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강조했다. 직장인 전모(27) 씨는 “탈락자가 대선배인 김건모가 아닌 나이 어린 후배였어도 재도전을 허용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며 “자신들이 룰을 어기는 것에는 관대하면서 젊은 세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기성세대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대학생 권모(25) 씨는 ‘우리들의 일밤’의 또 다른 코너인 아나운서 선발 프로그램 ‘신입사원’이나 가수 선발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이하 위탄)을 떠올리며 이렇게 푸념했다.



    “‘신입사원’이나 ‘위탄’을 보면 기성세대인 심사위원이 아주 혹독하게 10, 20대 지원자를 평가하고 몰아붙인다. 가끔 내 처지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나가수’ 도전자들은 이미 프로다. 그렇다면 더더욱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10, 20대 지원자에게 ‘이 무대가 마지막인 것처럼 임하라’ ‘나중이 아닌 지금 이 자리에서 재능을 보여라’라고 다그치는데, 김건모에게는 ‘마지막에 립스틱을 바른 게 실수였다’고 알아서 옹호해줬다.”

    막 사회에 진출했거나 준비 중인 20대는 유난히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가 탄력성이 없고 자신에게 가혹하다고 느낀다. 서강대 사회학과 전상진 교수는 “지금의 20대가 처한 상황은 사회 진출 통로가 막혀 있고 경쟁도 거센 편”이라며 “이런 사회 구조가 20대를 예민하고 까칠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예능 프로그램에 공정과 원칙의 잣대를 들이미는 20대가 정작 정치인의 부정이나 사회적 부조리에는 별 관심이 없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사회적 참여는 시간, 책임, 의무 등 여러 면에서 비용이 많이 들어가지만, 미디어와 관련해서는 일회적으로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데다, 자신과 직접 관련이 없어 더 즉흥적이고 여과 없이 감정을 드러낸다”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연예인 비판은 뒷일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 연예인의 일탈에 대해서는 더 쉽게 흥분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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