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7

2011.03.07

그녀 목소리에 “아, 신이여!”

‘이노센스 미션’의 ‘My Room In The Trees’

  • 정바비 julialart@hanmail.net

    입력2011-03-07 13: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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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 목소리에 “아, 신이여!”
    얼마 전 ‘한글로의 여행’이란 책을 읽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라는 시로 유명한 일본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가 늦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면서 쓴 에세이집이다. 재미있는 것은 정작 그의 시집들은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된 적이 없다는 사실. 한글과 한국어를 사랑한 나머지 ‘한국 현대시 선집’까지 번역했던 이 친한파 시인의 ‘본업’은 외면당하고, 어떻게 보면 사랑 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 이 에세이집만(그것도 사후에) 소개된 것이 얄궂다. 아니, 동방예의지국이 언제부터 이렇게 ‘나쁜 남자’ 캐릭터가 됐나. 하나 착한 사람이 짝사랑을 하면 이런 사소한 불행은 흔히 일어나는 법.

    사랑하는 임을 오매불망 그리는 ‘조그만 마음’을 만나려면 가까운 성당에 가보는 편이 좋다. 모친의 강권으로 ‘형사 가제트’ 대신 ‘찬미 예수님’을 택해야 했던 유년의 일요일 아침 성당에서 필자는 그런 여인을 숱하게 봤다. 봉사활동과 기부 등으로 세속의 인간보다 몇 갑절 선량하게 살았을 나의 어머니와 누이들은 그곳에서 도리어 자신을 ‘죄인’이라 칭했다.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 굽 낮은 신발을 신고 들어와 숨죽여 기도하던 여인들의 미사보 쓴 뒷모습은, 십자가와 스테인드글라스 아래에서 평소보다 유난히 작아 보였다.

    ‘이노센스 미션(The Innocence Mission)’의 최근 앨범 ‘My Room In The Trees’를 들으면 어쩔 수 없이 또 그 가련한 여인들을 떠올리게 된다. 3인조 모던포크 그룹인 이들은 전원이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본격적으로 신앙을 노래하는 몇몇 곡은 대중음악과 가스펠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다. ‘순결’과 ‘선교’란 단어로 이뤄진 그룹의 음악을 종교 코드 없이 이해하는 게 무리일 수도 있겠다(단, 종교 색채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분들에게는 이들의 음반 대신 역시 최근에 나온 ‘디어사이드(Deicide)’의 ‘To Hell With God’이란 음반을 추천하고 싶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에서 미사보 쓴 여인의 뒷모습, 혹은 일찍이 조동익이 ‘엄마와 성당에’란 곡에서 묘사했던 ‘선한 종교인’을 연상하게 되는 건 무엇보다 보컬인 캐런 페리스(Karen Peris)의 음색과 창법 때문이다. 초창기 앨범에서는 막 드넓은 세상에 나온 소녀의 벅찬 떨림이 느껴졌지만 최근작에서는 데뷔 20년 차에 접어든 그가 마치 아무것도 호소하지 않겠노라고 호소하는 듯하다. 행복과 사랑을 노래하지만 얼굴엔 여전히 번뇌로 입술을 깨문 자국과 번진 화장이 남아 있을 것 같다. 애달픈 어린 양의 울음소리를 듣노라면, 성당에 발길 끊은 지 오래지만 마음속에 영성(靈性)의 바람이 지나간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로부터 종교적 연상을 하게 된 이가 필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앨범 소개 글을 보면 평소 그들의 팬이었다는 진은영 시인이 이런 추천사를 썼다.



    “신은 세상을 창조하고 하루를 쉬었다. 그렇다면 그다음 주 월요일엔 뭘 했을까? …그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브를 빚기도 전에 한 여자의 목소리를 미리 만들었다.”

    그녀 목소리에 “아, 신이여!”
    여하튼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을 듣고 신을 떠올리게 되니 이들의 짝사랑은 무엇보다 큰 보상을 받은 셈이 아닐는지.

    정바비는 1995년 인디밴드 ‘언니네 이발관’ 원년 멤버로 데뷔한 인디뮤지션. ‘줄리아 하트’ ‘바비빌’ 등 밴드를 거쳐 2009년 ‘브로콜리 너마저’ 출신 계피와 함께 ‘가을방학’을 결성해 2010년 1집 ‘가을방학’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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