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7

2011.03.07

한국경제 덮치는 리비아 모래폭풍

직격탄 맞은 건설업계 피해 눈덩이 … 유가 연일 급등 생활물가도 빨간불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1-03-07 09:4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한국경제 덮치는 리비아 모래폭풍

    대우건설은 화력·수력·조력·원자력 발전소 등 다양한 발전 플랜트 시공 경험을 바탕으로 리비아에서 발전 플랜트를 주력으로 수주하고 있다.

    연일 격화하는 리비아 시위에 세계가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머나먼 이국에서 벌어지는 시위가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리비아발 위기가 한국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상황 전개에 따라 한국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질 수도 있는 만큼, 리비아 사태는 2011년 한국경제의 중요 변수가 됐다.

    수출대금 떼일 우려에 전전긍긍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리비아에 진출한 국내 건설사들이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2010년까지 24개 국내 건설사가 리비아에서 수주한 공사는 295건, 366억 달러(약 41조2482억 원) 규모로 전체 해외 누계 수주액의 8.6%를 차지한다(표 참조).

    하지만 리비아 정세가 악화일로를 걷는 데다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 등이 카다피 일가의 자산을 동결하면서 건설사들은 수출대금 수금에 비상이 걸렸다. 1991년 걸프전 당시 현대건설은 이라크에서만 11억4000만 달러의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 미수채권이 생긴 적이 있고, 대우건설도 미국의 리비아에 대한 금수조치로 5억 달러의 공사비를 받지 못했다.

    실제 코트라(KOTRA)가 2월 23일 리비아 수출 기업 575개사를 대상으로 긴급 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 기업 111개사 중 35개사(31.5%)가 수출대금 220만 달러(약 25억 원)를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KOTRA 비상상황반 김용석 팀장은 “기존 거래처와의 거래 중단, 계약 보류까지 고려하면 35개사의 연간 피해액은 1870만 달러(약 210억6500만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고 말했다.



    피해 사유로는 바이어 교신 두절(45.7%)이 가장 많았고 선적·하역 불가에 따른 운송 차질(31.4%), 수출대금 미수(28.6%), 수출 잠정 중단(22.9%)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이번 설문에 응하지 않은 기업을 감안하면 실제 피해 액수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이에 건설사들은 리비아 사태 전개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현재 리비아 사태는 △ 카다피 퇴진 △ 시위대 진압 △ 내전 발생으로 인한 사태 장기화 등 크게 3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다. 일단 건설업계는 앞의 두 가지일 경우 어떻게든 빠르게 안정을 되찾는다면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본다.

    한국경제 덮치는 리비아 모래폭풍
    특히 발전소, 플랜트 위주로 발주처를 선별했던 대형 건설사는 카다피가 물러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도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전력이 부족하고 노후화한 석유 생산시설을 갖춘 리비아로선 전력 및 석유 생산시설은 정권이 바뀌어도 추진해야 하는 분야라는 것. 대우건설 관계자는 “이런 사업은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한번 돈을 주지 않으면 국제적 신뢰도가 떨어져 다음에 추진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고 강조했다.

    우려되는 점은 사태가 장기화돼 공사 진행이 전면 중단되는 경우다. 해외 수주의 경우 전체 계약금액의 일정 부분을 선수금으로 받고, 월 단위로 공사 진척도를 따져 공사대금을 받는다. 따라서 공사를 멈추면 미수금을 받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현재 건설사들은 현지 인원 철수 방침을 세우면서도 최소한의 필수 인력은 남겨두고 있다. 공사현장을 떠나면 철수를 빌미로 미수금이 발생할 수 있고, 추후 파손된 시설에 대한 책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건설사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리비아인과 네트워크를 구축했을 뿐 아니라 현지 부족 유력 인사의 자녀를 직원으로 채용하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것에 기대를 건다. 원건설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사태가 진정되면 협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현재 시행 중인 공사 중단에 그치지 않고 신규 공사 발주마저 끊긴다면 국내 건설업계의 타격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국내 건설업계 불황이 지속되자 건설사들이 중동지역으로 대규모 진출해 활로를 뚫었던 탓이다.

    한국경제 덮치는 리비아 모래폭풍
    3차 오일쇼크 위기 대두

    한편 중동지역의 정세 불안이 확대되면서 유가는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이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는 튀니지 ‘재스민 혁명’으로 중동 정세가 불안정해지자 90달러를 돌파하더니, 리비아 시위가 격화하던 2월 21일 100달러를 넘어섰다. 문제는 앞으로다.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센터 구자권 해외석유동향팀장은 “현재 유가는 이집트 사태로 10달러, 리비아 시위로 10달러 정도 오른 것으로 분석되는데, 최상의 시나리오대로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석유 생산이 재개되면 곧 원래 가격을 되찾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리비아에서 내전이 벌어져 친(親)카다피 세력이 석유시설을 공격하고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중동 시위 여파가 미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구 팀장은 “사우디가 무너지면 유가가 150~200달러까지 상승해 자칫 ‘3차 오일쇼크’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어떤 시나리오로 사태가 전개되든 당분간은 가파르게 오른 유가 때문에 물가 상승을 피할 수 없게 돼버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10% 오를 때 소비자물가 상승 효과는 0.20%포인트에 이른다. 1, 2월 두 달 연속 4%대 물가 상승세를 보인 것도 이런 외부 요인 탓이 크다. 무역수지도 타격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은 “국제유가 상승이 지속되면 생활물가가 올라 가계 실질소득이 줄어들고 기업 채산성은 악화돼 실물경제가 침체에 빠지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