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7

2011.03.07

혁명 바람 지나면 이슬람 땅에도 다양성 꽃핀다

중동 변혁의 계절 친미파 영향력 감소 … 초승달 모양 시아파 블록은 더욱 강화

  •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중동아프리카학과 교수

    입력2011-03-07 09: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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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 바람 지나면 이슬람 땅에도 다양성 꽃핀다

    2011년 2월 27일 자위야를 점령한 반정부 시위대가 ‘우리의 요구는 자유’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10년 혹은 20년 후의 중동은 현재와는 딴판일 겁니다. 그동안 서방이 견지해오던 획일화된(monolithic) 시각으로 이 지역을 보면 많은 것을 놓칠 겁니다.”

    아랍권 최고의 이슬람학자인 유수프 알 카라다위(Yusuf al-Qaradawi)는 2월의 마지막 날 알 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중동의 장래에 대해 이렇게 전망했다. 튀니지와 이집트에 이어 다른 공화정 국가인 리비아가 사실상 내전 상태에 돌입했고, 입헌군주제 국가인 바레인에서는 연일 시위가 이어지고 있으며, 절대왕정 세습군주제의 정치 형태를 띤 오만에서도 시위로 여러 명이 사망한 무렵이었다.

    중동을 구성하는 3대 정치체제, 즉 공화제, 입헌군주제, 절대왕정 세습군주제에서 모두 심각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시위나 반정부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은 나라는 아랍에미리트(UAE)와 카타르뿐이다. 공화정인 예멘에서는 32년 통치한 알리 살리흐 대통령이 2013년으로 끝나는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지 않고 대통령직을 세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그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는다. 입헌군주국 요르단도 내각을 해산하고 정치개혁 작업에 나섰지만, 즉각적이고 포괄적인 개혁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하겠다고 야권은 강력히 맞서고 있다. 절대왕정 오만의 술탄 카보스 국왕도 개각을 단행하고, 일자리 5만 개를 창출하며, 구직자에게 매달 390달러의 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유화책을 내놓았지만 유혈충돌이 악화하고 있다.

    공화정의 부자 권력세습 물 건너가



    중동 최대의 정치·문화 강국 이집트가 붕괴한 배경에는 권력세습이 있다. 생활고와 부패도 근본적 원인이었지만, 민초는 물론 기득권층의 반발을 가져온 사안은 아들에게 대통령직을 세습하려는 무바라크의 움직임이었다. 이미 2005년부터 ‘키파야(충분해!)’ 세습반대 저항운동이 시작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카이로에 자리한 알 아흐람 전략정치연구소 이마드 가드 정치부장은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것은 이집트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아들에게 정권을 넘기는 게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이집트는 물론 다른 공화정 국가에 전한 것이 이번 시민혁명의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번 시민혁명은 왕정에 이어 공화정에서도 권력을 대물림하는 현상에 종말을 고했다. 최소한 공화정에서는 부자 세습이 더는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가장 불안해할 것은 시리아 정권이다. 1971년 정권을 잡은 후 2000년까지 29년을 통치한 하페즈 알 아사드 대통령의 후계자는 바로 그의 아들 바샤르 알 아사드였다. 그는 영국에서 의학 공부를 하던 중 아버지의 죽음으로 급작스럽게 귀국해 대통령이 됐다. 정치 경험도 전혀 없는 그는 아버지 측근의 도움으로 현재까지 큰 탈 없이 시리아를 통치하고 있다. 아직은 국민의 입을 철저히 막고, 무력으로 불만을 억누르고 있지만 머지않아 국민의 반감이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집트의 정권 붕괴와 리비아의 봉기는 시리아 국민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둘째 아들 가말 무바라크에게 정권을 물려주려고 물밑작업 중이었다. 차남은 집권여당인 국민민주당의 사무총장이었다. 사실상 여당의 제2인자 자리에 올라 있었다. 리비아도 그렇다. 둘째 아들 사이프 알 이슬람이 정국을 주도하면서 후계자임을 널리 알리고 있었다. 리비아의 대외 업무를 상당 부분 장악하면서 정권의 핵심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공화정으로 헌법에 따라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하지만 큰 어려움은 없었다. 상징적인 직선제 혹은 간선제 찬반투표를 거치기 때문에 이들의 당선은 기정사실이었다.

    “헌법에 따라 통치해라.”

    인구 130만 명, 작은 입헌군주국 바레인의 혼란은 아랍권의 또 다른 충격이다. 물론 바레인 시위 사태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나라와 다르다. 시아파가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하지만 수니파 알 칼리파 가문이 1971년 독립 후 권력을 장악해온 것이 가장 큰 불만의 대상이다. 현 국왕의 삼촌 칼리파 빈 살만 알 칼리파는 40년째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2002년 입헌군주제로 전환한 이후 총선제도를 부활하는 과정에서 집권 왕족이 수니파 인구비율을 늘리려고 파키스탄 등으로부터 온 수니파 외국인 노동자에게 시민권을 남발한 것이 시아파의 분노를 자아냈다.

    이 때문에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4000달러에 이르는 바레인의 반정부 시위는 이집트, 튀니지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민생경제 악화보다는 수니파 집권에 대한 시아파의 소외감이 주된 원인이다. 시위대는 칼리파 가문의 권력독점 중지와 시아파 차별 철폐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칼리파 왕족이 체포된 정치사범을 석방하고, 해외에 체류 중인 시아파 야당지도자들을 사면하는 한편, 가구당 약 30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야권과의 대화를 시도하고는 있지만 그동안 쌓인 국민의 분노를 달래기엔 역부족이다. 야권은 현재 개혁 요구에서 왕정 타파와 민주정부 설립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바레인 사태로 중동에선 헌법에 의거해 통치하지 않을 경우 입헌군주국가도 타도의 대상이라는 메시지가 전해지고 있다. 다른 입헌군주국가인 요르단, 모로코, 쿠웨이트에서도 반정부 시위 움직임이 일고 있다. UAE만이 유일하게 입헌군주국으로서 시위를 경험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는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오만의 왕족에게 딜레마로 다가가고 있다. 이 세 나라는 중동에 남아 있는 절대왕정 세습군주국가다. 사우디에서는 2월 27일 학자, 인권운동가, 기업인 등 123명의 인사가 웹사이트에 탄원서를 올렸다. 국왕의 지명이 아닌 선거를 통한 슈라(상원에 해당) 의원 선출, 여권 신장, 입헌군주제 도입 등을 촉구했다. 2월 23일 신병치료를 마치고 귀국한 압둘라 국왕이 주택 건설, 결혼자금 지원, 창업 지원을 위한 약 11조 원의 국가개발기금 편성을 지시하고, 국가공무원 급여를 15% 인상하는 조치를 발표했지만 사우디 야권의 동요는 계속되고 있다. 카타르에서는 아직 반정부 시위 움직임이 없지만 일부 웹사이트에서 입헌군주제 도입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입헌군주제를 수락할 경우, 곧이어 민주적인 공화정에 대한 추가 요구가 나올 것이라는 점에서 이들 세 국가의 왕족도 고심에 빠져 있다.

    혁명 바람 지나면 이슬람 땅에도 다양성 꽃핀다
    입헌군주국가도 타도의 대상?

    여러 정권이 붕괴하기 시작하면서 중동의 정세도 장기적으로 요동칠 것이다. 중단기적으로는 아랍의 최대 정치강국 이집트의 공백이 아랍 정세에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미국을 포함한 서방의 대중동 전략에도 큰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선 답보 상태에 있긴 하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에서 미국과 서방의 입장을 상당 부분 대변하며 중재자를 자처해온 이집트의 역할을 당분간 기대할 수 없다. 가장 먼저 평화조약을 체결했고 팔레스타인 저항단체 하마스 무력투쟁에 반대해왔던 이집트의 군부가 약화되면서 미국이 중시하던 이스라엘의 안보에 악영향이 예상된다. 더불어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전면에 나섰던 무바라크의 모습도 한동안 볼 수 없다. 이슬람권을 ‘악마화’하는 미국 내 강경보수파에게는 큰 충격이다.

    이보다 미국과 서방이 우려하는 것은 이란의 부상이다. 미국의 대중동 전략에서 양대 축을 구성하는 두 나라는 이집트와 사우디다. 그런데 사우디와 더불어 수니파 이슬람의 주축인 이집트의 역할이 약화되면서, 이라크전쟁 이후 확대되고 있는 시아파 초승달의 주축 국가인 이란의 영향력이 커지게 될 것이다.

    이란을 축으로 서쪽으로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그리고 남쪽으로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까지 연결되는 초승달 모양의 시아파 블록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란은 이미 현재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자국의 패권을 과시하려 한다. 이란은 3월 14일 터키와 9년 만에 정상회담을 갖고 중동지역 내에서 양국 간의 협력을 다졌다. 또 1979년 이슬람혁명 이래 최초로 이란 군함 두 척이 2월 23일 수에즈 운하를 통과했다. 군사적인 활동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시리아와 해상 합동훈련도 펼칠 예정이다.

    중동 ‘국가별’ 맞춤 대책 마련 시급

    그러나 이번 민주화사태 이후 나타날 중동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다양화와 다원화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다양한 정치체제의 등장이 예상된다. 정권이 바뀐 나라는 물론, 당장은 위기에 처하지 않은 산유국도 변신의 노력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나라마다 다른 정치체제 및 민주화 정부가 등장함은 물론, 경제정책 또한 달라질 수 있다. 더불어 한 국가 내에서도 다원화한 의사결정구조가 마련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 군부독재 최고 엘리트 혹은 국왕을 중심으로 한 왕족이 결정하던 사안들이 의회, 시민사회, 이익단체 등의 감시와 견제를 받을 것이다.

    석유 수입, 플랜트 수출 등 아랍 및 이슬람권과 경제적으로 깊숙한 관계가 있는 우리가 이번 사태를 주의 깊게 지켜보며 ‘국가별’ 대책을 마련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다 동반자적인 관계를 유지해 진정으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진출의 틀을 짜나가야 한다. 중동 각국의 경제 상황에 따른 수요에 맞춰 우리 기업도 과거의 단순한 상품수출 혹은 플랜트 수주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제조업에 있을 것이다. 조인트벤처를 통한 이 분야의 진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이제부터 아랍권은 본격적으로 제조업 육성전략을 추진할 것이다. 우리의 기술력과 현지의 오일머니를 결합하는 새로운 협력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의 진출 기회가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발전, 담수화, 정유화학 등의 플랜트 발주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 복지와 생활수준 향상에 산유국이든 비산유국이든 큰 관심을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혁명 바람 지나면 이슬람 땅에도 다양성 꽃핀다
    그리고 예멘, 수단, 시리아, 알제리, 이집트 등 그동안 서방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국가들에 대한 유전 및 가스전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아랍권 정부는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자원에서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철수를 해야 하는 건설업체를 비롯해 중동진출 기업들은 단기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중장기적 대책을 제대로 마련한다면, 위기와 혼란 속에 더 큰 기회가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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