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6

2011.02.28

“잘했어!” 배려하다 오히려 상처

‘칭찬 강박증’

  • 김한솔 IGM(세계경영연구원) 책임연구원 hskim@igm.or.kr

    입력2011-02-28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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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 후반 방 과장은 괴롭다. 하루 12번 볶아대는 상사, 틈만 나면 치받는 부하, 그리고 내 편인 척하지만 뒤통수를 노리는 동기들 때문이다. 퇴근 후에는 더하다. 야근과 회식을 반복하는 사이 아내는 남처럼 멀어졌고, 아들딸도 아빠를 본 척 만 척이다. 이를 위한 해결책은 커뮤니케이션. 이도 저도 아닌 ‘경계인’ 방 과장이 직장, 가정, 비즈니스 현장 등에서 부딪히는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본다.

    “잘했어!” 배려하다 오히려 상처
    “뭐야, 그럴 거면 진작 자기가 하든지… 왜 괜히 날 고생시켜?”

    화장실 변기에 앉아 정신 집중을 하던 방 과장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안 그래? 내 앞에선 잘했다고 해놓고, 결국 다 자기가 바꿀 거면서…. 애초에 시키지 말든가!”

    방 과장과 함께 신제품 프로모션 제안서 작업을 했던 강 대리다. 자신이 아이디어를 낸 제안서가 최종 제안서로 채택되지 않은 게 불만이었는지, 전화로 온갖 불만을 쏟아낸다.



    상황은 이렇다. 며칠 전, 강 대리가 뿌듯한 표정으로 방 과장에게 제안서를 내밀었다. 하지만 방 과장이 보기엔 허점이 너무 많았다. 그걸 그대로 부장님께 들고 갔다간 불벼락을 맞을 게 뻔했다. 그렇지만 강 대리가 지난주 내내 제안서 작업하느라 끙끙댄 걸 봤기에, 뭐라고 지적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고생 많았네! 잘했어, 강 대리!”라는 말만 해줬다. 그리고 뒷수습은 방 과장의 몫. 결국 꼬박 이틀을 투자해 제안서를 마무리했고, 오늘 부장님의 최종 결재를 받았다. 이 기쁜 소식이 강 대리에겐 화가 나는 소식이라니….

    “아, 몰라. 일할 맛도 안 나고…. 조퇴나 할까 생각 중이야. 그래, 끊어.”

    화장실을 나가는 강 대리의 발자국 소리가 사라지고도 한참. 방 과장은 변기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방 과장은 억울하다. 힘들게 일한 부하직원을 위해 격려도 해줬고 그의 일도 대신 했는데…. 그런데 강 대리는 고마워하기는커녕 일할 맛이 안 난다니.

    부하직원의 ‘일할 맛’을 없애버린 방 과장. 그는 도대체 뭘 잘못한 걸까?

    리더들은 바란다. 자신이 좋은 상사로 인정받기를. 그래서 많은 리더가 ‘칭찬 강박증’을 갖고 산다. 자신의 지적 때문에 팀원의 사기가 떨어질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지적해야 할 상황임에도 그냥 넘어가기 일쑤다. 부하직원이 열심히 일했다는 사실을 알면 더더욱. 방 과장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건 틀렸다. 리더는 부하직원의 잘못된 행동이나 부족한 결과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그래야 부하직원이 자신의 잘못을 인식할 수 있고, 다음에 그걸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은 힘들다. 첫째, 부하직원의 감정이 상할 수 있다는 걸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생해서 만든 결과에 대해 ‘이건 이래서 틀렸고, 저건 저래서 잘못됐어’라고 말하면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상사가 ‘잘했어’라고 말해놓고, 자신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결과물을 내놓는다면? 아마 앞의 강 대리처럼 크나큰 배신감을 느낄지 모른다. 부하직원을 위한 배려가 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둘째,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면 할 일을 부하직원을 가르치며 하려면 이틀, 사흘 혹은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 이는 분명 비효율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리더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리더와 부하직원이 같은 생각을 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좋은 컨설턴트는 컨설팅이 끝난 후 자신이 하던 것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아바타’를 심어두고 나오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좋은 리더로 인정받고 싶은가? 그렇다면 솔직해라. 그리고 기다려라. 그것이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빠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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