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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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민주화? 미국은 제발 빠져!

중동 민주화 열풍 속 온건개혁파의 걱정 “미국 나설수록 反美 강경파 입지만 강화”

  •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기자(정치학박사) kimsphoto@hanmail.net

    입력2011-02-28 1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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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해방) 광장’은 민주화의 불길을 댕겨 30년 무바라크 1인 독재를 무너뜨린 곳으로 유명해졌다. 이란 테헤란에는 이미 오래전에 정치적 명소로 이름을 얻은 광장이 있다. 바로 ‘아자디(자유) 광장’이다. 1979년 이란 시아파 성직자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이슬람혁명(이른바 호메이니혁명) 때 아자디 광장은 100만 명에 가까운 데모 군중으로 뒤덮였었다. 지난 2009년 2월 호메이니혁명 30주년을 기념하며 벌어졌던 대규모 정치행사와 그해 6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부정선거 의혹에서 비롯된 대규모 항의 시위도 이곳에서 벌어졌다.

    이란인 오바마 격려 오히려 부담

    그런데 이제 다시 아자디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튀니지-이집트 시민혁명의 성공은 이란 사람들에게 커다란 자극을 주었다. 밸런타인데이였던 지난 2월 14일을 ‘분노의 날’로 정한 야당 지도자들과 수만 명의 시위대가 아자디 광장에서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쳤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대의 함성은 테헤란 거리로 퍼져 나갔다. 이번 시위에선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물론 헌법상 국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시아파 종교지도자)를 규탄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이란 보안군은 최루가스를 쏘며 시위대를 막았다. 그 과정에서 2명이 죽었다. 이란 정부는 대중집회를 금지하고 야당 지도자들을 가택 연금시키는 강수를 두고 있지만, 대규모 시위가 또 터질 것 같은 긴장된 분위기다.

    밸런타인데이 사흘 전에도 아자디 광장에선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이슬람혁명 32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정치집회가 열렸었다. 그 자리에서 아마디네자드는 이집트 친미 독재정권의 붕괴를 기뻐하면서 “중동이 이제 미국과 시오니스트들(이스라엘)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사흘 뒤 같은 곳에서 이란 군중이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위협하는 시위를 벌이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란의 최근 사태는 올해 들어 튀니지-이집트로 번져간 민주화 시위가 비아랍권(아랍어를 말하지 않는 지역)의 이슬람 국가로까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미 보수 강경노선을 걸어온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는 상황을 즐기듯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다름 아닌 미국 워싱턴의 정치인들이다. 이집트 시위 때만 해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질서 있는 전환’이라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란에 대해서는 그때와는 달리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오바마는 “이란 국민이 더 많은 자유와 대표성을 지닌 민주적 정부에 대한 열망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용기를 발휘하기 기대한다”고 말했다. 힐러리 국무장관도 맞장구쳤다. “이란 지도자들이 이집트 시위대를 격려하더니, 정작 이란에서 시위가 벌어지자 진압에 나선 것은 위선(hypocrisy)”이라고 아마디네자드를 쏘아붙였다.



    오바마와 힐러리가 입을 모아 이란 시위 군중을 격려하자, 이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이란 사람들이 있다. 아마디네자드를 비롯한 집권층 사람들이 아니라, 온건개혁파들이다. 그들은 워싱턴 지도자들의 이란 사태 비판이 민주화 시위의 동력을 떨어뜨리고, 이란 민초들의 민주화 열망에 재를 뿌릴 수 있다고 걱정한다. 이집트 경우와 달리 이란은 정부와 민중 모두 반미다. 이란 사람들은 너나 가릴 것 없이 반미 정서가 강하기 때문에 워싱턴의 말 한마디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미국의 개입을 극도로 혐오하는 이란의 특이한 분위기는 이란 현대사를 돌아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란은 석유 매장량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인 석유 부국이다. 그러나 지난날 이란 석유는 외국 기업들(영국과 미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1951년 민족주의 성향의 무함마드 모사데크 총리가 “이란 석유를 이란인의 손에!”라며 국유화를 주장하자 이를 이란 대중이 지지했다. 그러자 미 중앙정보부(CIA)는 영국 정보기관 MI6와 더불어 ‘아작스 작전’이란 이름 아래 이란 군부를 움직여 1953년 친위쿠데타를 일으켰다. 그 뒤 1979년 샤 왕조가 호메이니혁명으로 무너질 때까지 이란의 석유 이권은 미국 40%, 영국 40%, 이란 왕조 20%의 비율로 나뉘었다.

    친위쿠데타에 개입했던 미국은 이란 왕정의 독재를 뒷받침해주는 정보기구 사바크(SAVAK) 창설에도 도움을 주었다. 7000명이 넘는 사바크의 핵심 요원이 이란 독재자를 위해 활동했다. 일부는 워싱턴의 CIA 본부에서 교육받았다. 사바크 때문에 이란은 국제인권 단체들로부터 ‘최악의 인권탄압 국가’라는 오명을 얻었다. 사바크는 1979년 이슬람혁명의 불씨를 키운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혁명으로 석유 이권을 잃은 미국은 이란과의 외교관계를 끊은 채 지난 32년 동안 줄곧 이란에 대한 봉쇄정책을 펴며 오늘에 이르렀다.

    미국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과 마찬가지로 이란 테헤란에 친미정권을 세우고 싶다는 열망이 있다. 친미까지는 아니더라도 중립화된 온건한 정권이 들어서길 바란다. 문제는 지난 30여 년 동안 이어졌던 미국의 대이란 강공책 때문에 이란 유권자들이 대미 강경론을 부르짖는 보수 강경파에게 표를 던진다는 점이다. 이란 현지취재 때 만난 테헤란대 정치학과 호세인 사이프자데 교수는 “미국이 이란의 보수, 중도, 개혁, 신보수 등 여러 정치집단의 세력 균형을 올바로 헤아리고 대이란 정책을 보다 사려 깊게 펼쳤다면 이란에서 개혁파가 정권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알라메흐 대학 정치학과 다부드 헤르미다스 교수도 미국의 이란 정책에 비판적이다.

    뿌리 깊은 반미-반이스라엘 정서

    “1979년 이후 지금껏 미국은 이란을 봉쇄했고, 때로는 군사적 위협마저 서슴지 않았지만 이란은 살아남았다. 문제는 미국의 강공책이 이란의 민주화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미국이 이란의 평화적 핵 이용권을 무조건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도 문제다. 이란의 보수 강경파들이 핵을 포기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까닭은, 만에 하나 미국의 강압적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미국에 양보한 패배자라는 인상을 이란 국민에게 심어주게 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란 온건 개혁파들의 마음을 요약하자면 “이란 민주화의 봄을 앞당기려면 미국은 침묵하라”는 것이다. 이란 지식인들은 미국이 이란에 대한 봉쇄정책을 30년 넘게 이어옴으로써 개혁파의 정치적 입지를 좁혔으며 오히려 보수 강경파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고 지적한다. 최근 민주화 요구 시위 뒤에도 그런 조짐이 보인다. 이란 정부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보낸 간첩이 시위대를 조종하고 있다. 시위대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음모에 놀아나고 있다”고 정치선전을 편다. 뿌리 깊은 반미-반이스라엘 정서를 이용하겠다는 계산에서다. 그런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미 국무부는 이란의 파르시어로 시위를 지지한다는 트위터 메시지를 보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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