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6

2011.02.28

네일아트 그 이상의 것 ‘뷰티레저 문화’ 팔아야죠

아름다운사람들 전성실 대표 “공중위생관리법 시대에 맞게 바꿔야”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1-02-28 1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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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일아트 그 이상의 것 ‘뷰티레저 문화’ 팔아야죠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하나같이 인생을 바꾼 결정적 계기가 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선물한 책 한 권에서 꿈을 키워 신화로만 여겼던 트로이 유적을 찾아낸 독일 출신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도 그랬고, 39세에 맞은 소아마비로 약자에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 결국 32대 대통령이 된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작은 마을의 우편배달부였던 페르디낭 슈발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을 계기로 ‘꿈의 궁전(Palais Ideal)’을 짓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이러한 결정적인 계기는 있지만 그것을 깨닫느냐 지나치느냐에 따라 인생은 180도 달라진다. ‘손톱 손질’만으로 한국과 중국에서 연간 수백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전성실(46) (주)아름다운사람들 대표는 그에게 찾아온 결정적 계기를 놓치지 않았다.

    전 대표는 지난 15년간 ‘쌔씨네일(sassinail)’이라는 브랜드로 국내외 300여 개 직영 네일숍을 열었다. 그가 설립한 업체는 한국산업인력공단 서비스 수출 인증 기업(네일아트 해외취업 연수기관)으로 선정돼 해외로 인력을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네일아트 선진국’ 미국에서 네일아트 직업 학교(아메리카 네일 칼리지)를 열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국내 8000여 개 네일숍 대부분이 소규모의 영세점을 면치 못하는 현실에서, 그것도 직영으로 수백 개의 네일숍을 운영하는 그에게 미용업계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전 대표와 손톱의 인연은 순전히 악어 때문에 맺어졌다. 고교 졸업 후 무작정 도미해, 일리노이주립대 경제학과에 다니던 스물세 살 때 그는 남미 무전(無錢)여행을 떠났다. 브라질과 페루, 콜롬비아 접경지대에 사는 원주민들과 석 달간 생활하던 어느 날, 그들의 악어사냥에 따라 나섰다. 악어를 주식으로 하는 원주민들은 일주일에 2, 3회 밤에 악어사냥을 했는데, 한 명이 손전등 불빛을 비춰 악어가 순간 보지 못하게 하고, 또 다른 한 명은 작은 카약을 타고 접근해 작살을 던지는 식으로 사냥을 했다.

    그러나 사고 당일 전 대표가 탄 카약이 중심을 잃고 뒤집혔고, 한 원주민이 넘어지면서 순간적으로 악어에게 작살을 던졌다. 공교롭게도 작살에 연결된 실은 전 대표의 오른손 중지를 휘감았고, 결국 손가락 한 마디가 사라졌다.



    “작살을 던지지 않았다면 중지가 아니라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

    이후 그는 사람 손가락을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다. 미국으로 돌아와 ‘무엇을 해서 먹고사나’를 고민하던 그는 우연히 프랑스인 친구와 햄버거를 먹다가 손톱을 쳐다봤다. 보통 사람 크기 절반만 한 손톱을 가진 그 친구는 ‘여자로서 손톱이 핸디캡’이라며 손톱을 감췄다.

    손가락 잘리는 사고 겪은 후 손톱사업 시작

    네일아트 그 이상의 것 ‘뷰티레저 문화’ 팔아야죠
    “당시 ‘유대인의 상술’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거기에 ‘여자와 관련된 장사는 망하지 않는다’고 쓰여 있더라고요. 프랑스 친구 손톱을 보며 무릎을 쳤죠.”

    당시는 미국에서도 네일 비즈니스가 막 태동할 무렵. 그는 네일 협회를 찾아 네일아트에 대해 공부했고, 이후 1996년 한국에서 쌔씨네일이란 브랜드로 매장을 열었다. 기대와 달리 첫 매장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손님이 없었다. ‘손톱 손질은 미용실에서 해주는 부대 서비스’라는 인식이 팽배한 당시에는 네일아트 개념조차 생소했다.

    “보통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으면 미용실 산업이, 1만5000달러 시대에는 화장품 산업이 자리 잡죠. 2만5000달러는 돼야 네일 산업에 관심을 갖는데 제가 너무 빨랐어요. 그래서 전략을 바꿨습니다. VVIP를 공략한 거죠.”

    전단지를 들고 무조건 백화점을 찾았다. VVIP 고객 유치를 위해 백화점들도 유인책을 찾고 있던 시절, 그는 ‘네일아트야말로 앞선 트렌드를 쫓는 VVIP 최고 유인책’이라고 백화점을 설득했다. 1997년 롯데백화점에 첫 매장을 열었다.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수많은 고객이 몰렸다. 반응이 좋자 전국 백화점에 직영점을 늘려갔다.

    당시 한 대형 백화점에서 업체 입점을 담당했던 정석진(48) 씨의 말이다.

    “생소한 네일아트 전단지를 들고 무작정 찾아왔더라고요. 입점시켜 달라고요.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지만, 전 대표의 열정에 결국 입점시켰죠.”

    그는 현재 아름다운사람들 부사장으로 스카우트돼 전 대표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매장이 늘수록 전 대표는 직원 수준과 위생 관리에 신경 썼다. 자체 네일아트 학원을 만들어 5개월가량 엄격한 교육을 시켰고, 일정 테스트를 통과한 직원만 매장으로 내보냈다. 국내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2001년, 그는 중국 시장을 공략했다. 당시 중국의 상당수 여성은 손톱은커녕 머리도 손질 안 하던 때였다. 우한 뉴월드플라자백화점에 첫 매장을 열고 한 달 동안 ‘공짜 전략’을 썼다. ‘얼굴 나이와 손 나이를 맞춰주는 손병원’이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이후 베이징과 우한, 다롄 등에서 매장만 120여 개를 열었으니 대성공이었다.

    “맥도널드 매장에 가지 않아도 어떤 메뉴를 얼마에 판다는 걸 다 압니다. 하지만 미용업계에서는 서비스를 받으면 얼마를 지불해야 할지 정해져 있지 않죠. 그래서 고객들은 불안해합니다.”

    일종의 ‘맥도널드 전법’이었다. 네일아트 모양과 색상에 따라 표준가격을 정하고 어떤 제품을 사용하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한 것. 매니큐어 제품과 화장품도 기호화해 손님이 선택하도록 했다. 손톱 손질을 받으면서 족욕(足浴)을 즐기고, 두피 케어와 머리 손질을 한자리에서 받을 수 있도록 매장을 꾸몄다.

    네일아트 그 이상의 것 ‘뷰티레저 문화’ 팔아야죠
    “뷰티레저 개념을 추가했죠. 반복되는 일상에서 레저 생활이 활력소가 되듯, 아름다워지면서 동시에 레저 생활을 하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만든 겁니다. 스타벅스가 언제부터 문화를 팔았나요?”

    그래서일까. 2월 18일 서울 대치동 쌔씨네일숍은 손톱 손질과 머리 손질, 족욕까지 풀세트 서비스를 받으려는 여성들로 북적거렸다. 요즘 그의 관심 분야는 네일아티스트 인력 수출.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말 ‘서비스 산업 일자리 창출’을 강조한 것과도 맥을 같이한다. 한국인 특유의 뛰어난 손놀림으로 해외 취업을 활성화하려는 것이다. 미국 시카고에 아메리카 네일 칼리지를 설립한 것도 이 때문. 이곳에서 교육을 이수해 자격증을 따면 현지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시스템도 갖췄다. 학원생 대부분은 미국인이지만, 한국인 10여 명도 미국으로 가 교육을 받고 있다.

    잘나가는 그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현재 공중위생관리법 시행령에는 미용업의 범위를 파마·머리카락 자르기, 머리카락 모양내기, 손톱과 발톱 손질 등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손발톱 손질은 미용사 자격증이 있어야 할 수 있다. 만약 자격증 없이 손발톱 손질을 하면 위법이다.

    “100가지가 넘는 다양한 네일아트를 미용사 자격으로 묶어두는 건 현재 상황과 맞지 않아요. 30년 전 법률이 발목을 잡는 거죠.”

    법률이야 어떻든, 그는 2020년에는 세계 4000개의 매장과 400개의 네일 아카데미, 40개 계열사, 매출 40조 원의 회사를 만드는 ‘2020 프로젝트’를 묵묵히 실행하고 있다.

    “‘손톱 10개 가지고도 어려운데 9개 가진 사람이 장사할 수 있느냐’고 비아냥대는 사람이 있어요. 그럼 저는 반대로 이렇게 말합니다. ‘손톱 없어진 경험이 있느냐? 손톱 없어진 사람이 손톱의 중요성을 더 잘 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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