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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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조작에 경악 … ‘스모’ 존폐 위기

사상 첫 3월 정기대회 취소 … 세제혜택 등 공익법인 인가 취소 위기

  • 도쿄=이종각 한일관계 전문 칼럼니스트

    입력2011-02-21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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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국기(國技)’ 격인 스모(相撲)가 ‘야오초(八百長)’로 불리는 승부 조작으로 사상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일본 경찰이 지난해 스모 선수 등 60여 명이 연루된 야구 도박사건을 수사하던 중 압수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에서 승부조작 관련 내용(총 46통, 거명자 14명)을 찾아내, 스모협회 감독관청인 문부과학성에 통보하고 언론에도 공개(2월 2일)했기 때문이다. 스모협회가 외부인사로 구성된 특별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에서 이들 가운데 3명이 승부 조작한 사실을 인정하자, 스모협회는 3월에 열리는 정기대회인 ‘하루바쇼(春場所)’를 중지키로 결정했다.

    1833년 현재와 같은 대회가 시작된 후 1946년 대회장 보수공사 지연으로 개최되지 못한 적이 한 번 있지만, 이 같은 불상사로 대회를 열지 못하는 것은 178년의 대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간토(關東) 대지진(1923년) 때도, 전쟁 중에도 개최됐던 스모대회가 선수들의 승부 조작으로 열리지 못하게 되면서 스모계는 지난해 도박파동 이후 다시 발칵 뒤집혔고,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매스컴은 일제히 “일본의 국기가 존망의 위기에 빠졌다” “스모 역사에 최대 오점”이라고 개탄하면서 철저한 진상조사와 스모계의 개혁을 주문했다.

    경찰이 복원한 스모 선수들의 문자메시지에는 지난해 3월과 5월 대회에서 현역 선수인 치요하쿠호(千代白鵬) 등 3명이 져주기로 한 상대 선수에게 어떤 기술을 주고받을지 상의하는 내용과 금전거래 내역, 통장번호 등이 들어 있다. 예를 들면 “처음 부딪칠 때 세게 부딪치고, 그대로 밀고 나가는 걸로 부탁합니다” “그럼 밀려갈 때 조금은 버티는 척할게” “오늘은 넘어지는 날이다. 어제 부탁받았으니까 일단 넘어질게” “어제는 좋았어요. 오늘은 어떻게 돼요?” “다음 바쇼의 일이지만 곤란하다면 20만 엔을 돌려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등의 내용이다.

    수십 년 전부터 승부조작설 제기

    스모계의 승부조작 의혹은 옛날부터 전해 내려왔고, 주간지 등은 수십 년 전부터 승부조작설을 끊임없이 제기해 왔다. 이에 스모협회나 선수가 주간지 측을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제소해,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주간지 측이 패소하는 일도 있었다. 이번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는 승부 조작을 증명하는 중요한 자료가 돼 관련자 14명 중 3명이 시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머지는 승부 조작을 부인하면서 협회 측의 휴대전화 제출 요구에 “폐기했다” “기종을 바꿨다”며 버티고 있어 제대로 진상규명이 이뤄질지 의문시되고 있다.



    승부 조작이 행해져온 배경으론 스모계의 독특한 선수 지위와 경기 운영방식이 지적된다. 스모 선수를 뜻하는 ‘리키시(力士)’의 세계는 스모 실력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 철저한 계급사회다. 리키시의 계급은 스모에 갓 입문한 최하급 조노구치(序の口)부터 최정상 요코즈나(橫綱)까지 10개로 나눠졌다(표 참조). 조노구치에서 어느 정도 성적을 올리면 조니단(序二段)으로, 이어 산단메(三段目), 마쿠시타(幕下), 주료(十兩), 마에가시라(前頭) 순으로 승진한다. 마에가시라는 마쿠우치(幕內), 히라마쿠(平幕)라고도 부른다. 그다음이 고무스비(小結), 세키와케(關脇), 오제키(大關) 순으로 이들은 우두머리가 되는 세 가지 역할이란 의미에서 산야쿠(三役) 리키시라 부른다. 그 위에 최고 실력의 리키시를 요코즈나라고 한다.

    현재 일본 스모협회가 기획, 운영해 개최하는 대회를 ‘오즈모(大相撲)’라 하고, 1년에 6번 ‘혼바쇼(本場所)’라 불리는 정규대회가 열린다. 혼바쇼는 도쿄(東京), 오사카(大阪), 나고야(名古屋), 후쿠오카(福岡) 등 전국 주요 4개 도시에서 1월부터 두 달 간격으로 개최된다. 각 대회는 15일간 열리고, 리키시는 매일 다른 상대와 대전한다. 혼바쇼는 ‘하쓰바쇼’(初場所, 1월 도쿄), ‘하루바쇼’(3월 오사카), ‘나쓰바쇼’(夏場所, 5월 도쿄), ‘나고야바쇼’(名古屋場所, 7월 나고야), ‘아키바쇼’(秋場所, 9월 도쿄), ‘규슈바쇼’(九州場所, 11월 후쿠오카)라는 각각의 명칭이 붙어 있다.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야구다. 그러나 ‘국기’로 불리는 것은 야구가 아니라 스모다. 물론 스모가 국기라고 법령 등에 정해진 것은 아니다. 고대 이래 이어져 내려온 스모는 현재도 일본인이 스스로 국기라 부를 정도로 가장 사랑받는 전통 스포츠이고,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일본 문화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일본의 전통 스포츠인 스모를 보호, 육성한다는 취지에서 스모협회는 선수인 리키시와 사범인 오야가타(親方) 등에게 스모협회의 급여 규정에 따라 월급을 지급한다. 리키시 등의 생활 안정을 위해 1957년부터 월급제가 도입된 것이다. 심판 등 경기 진행요원에게도 월급이 지급되지만 마쿠시타 이하 리키시엔 지급되지 않는다.

    승부 조작에 경악 … ‘스모’ 존폐 위기
    “國技 아니다” 비난 여론 쇄도

    요코즈나 월 282만 엔, 오제키 234만7000엔. 세키와케 및 고무스비 169만3000엔, 마쿠노우치 130만9000엔, 주료 103만6000엔 등이다. 이 밖에 각종 수당이 지급되고 각 바쇼의 우승자 등에겐 상금이 지급된다. 주료는 월급 100만 엔 이상을 받고 심부름하는 사람이 붙는 등 당당한 리키시로 대접받지만, 바로 밑인 마쿠시타에겐 봉급이 한 푼도 지급되지 않는 등 하늘과 땅 차이의 신분, 수입 차가 있다. 이 점이 주료들이 승부 조작을 하는 중요한 원인이라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요코즈나를 제외한 리키시는 1월부터 11월까지 6회 열리는 정기대회에서 15회 대전해 성적이 7승8패 이하가 연속 2회 있을 경우 지위가 한 계단 밑으로 떨어진다. 그동안 7승7패의 선수 중 마지막 날 경기에서 이기는 비율이 80% 이상이 돼 이를 승부 조작의 결과로 보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많았다. 특히 주료가 마쿠시타로 떨어질 경우 월급을 한 푼도 못 받는 등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이 때문에 주료들 가운데 주료로 살아남기 위해 승부 조작을 하는 경우가 생기고, 이번에 관련된 리키시 중에도 주료가 가장 많았다.

    도박사건과 달리 승부 조작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승부 조작은 스포츠의 본질을 훼손하는 사안이어서 도박사태보다 더 심각하다. 스모계엔 “스모는 이제 스포츠가 아니다. 쇼에 불과하다” “팬들을 배신한 스모는 더는 국기로 보호받을 필요가 없다”는 등 여론의 비난이 쇄도한다. 정부의 핵심 관료인 관방장관은 이번 승부조작 전모가 밝혀지고 난 다음 그 정도에 따라 스모협회는 세제 혜택 등이 주어지는 공익법인 인가가 취소될 가능성도 있다고 공언한 상태다.

    폭력, 도박, 승부 조작 등 과거의 병소(病巢)를 발본색원하지 못한 채 관행에 빠져 있던 스모계는 잇따라 터진 불상사로 그야말로 존망의 기로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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