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3

2011.01.31

남인도의 설 ‘퐁갈’을 아십니까?

1월 14~17일까지 추수감사 축제…올핸 압사사고로 유난히 소란스러워

  • 벵갈루루=박민 통신원 minie.park@gmail.com

    입력2011-01-28 17: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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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인도의 설 ‘퐁갈’을 아십니까?

    4일간의 축제 기간 중 셋째 날인 마투 퐁갈은 소를 위한 날이다. 한 해 동안 농사에 도움을 준 소에게 감사를 표하고 로데오 경기도 벌인다.

    1월 14일부터 4일간 인도 남부지방의 거리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거리에는 긴 바나나 잎줄기나 코코넛, 꽃 등을 파는 가판대가 줄지어 들어찼고, 한밤중 난데없이 코끼리와 그 뒤를 따라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는가 하면 아파트 단지로 낙타가 들어오는 소동도 벌어졌다. 1월 14일은 남인도의 추수감사절인 ‘퐁갈(Pongal)’ 축제 첫날. 퐁갈은 힌두의 모든 축제 중 유일하게 태양력의 날짜를 따라 매년 14일이 축제의 시작일이다.

    풍작과 번영 기원하며 축제 시작

    퐁갈은 타밀어로 ‘끓어넘치다’라는 뜻의 ‘퐁가(ponga)’에서 유래했다. 퐁가는 퐁갈 때 먹는 달콤한 명절음식 이름이기도 하다. 이른 아침 새 냄비에 쌀을 담아 밥이 끓어넘치게 지으면서 축제를 시작한다. 이는 풍작과 번영을 상징한다. 이날은 정확히 추수를 하는 시점은 아니지만 남인도의 몬순(계절풍)이 끝나가는 시기다. 한 해 힘들게 농사를 마친 농부는 휴식시간을 갖고 새해 풍년을 기원하며 집 안 살림살이를 깨끗이 정돈하면서 태양의 신에게 기도를 드린다. 타밀 달력에 따르면 퐁갈이 새해 첫날이다. 추석과 설날을 함께 보내는 셈이다.

    퐁갈은 천문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날을 기점으로 태양이 6개월 동안 북쪽으로 이동한다. 힌두 사원은 종과 북을 울려 이날을 축하한다. 사람들은 집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현관 입구에 ‘랑골리(Rangoli)’ 그림을 그려 넣는다. 랑골리란 색색의 쌀가루를 이용해 손으로 그리는 그림으로 여자들만이 할 수 있다. 집집마다 그림을 그려 태양의 신을 맞이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탕수수나 쌀을 달게 요리한 음식, 채소 등을 신에게 바치며 기도를 하고 가족과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다. 퐁갈은 타밀어에서 유래했고 타밀 달력을 따르지만 타밀나두 주뿐 아니라 안드라프라데시 주, 카르나타카 주 등 남인도 대부분의 지역에서도 가장 중요한 명절로 대접받는다.

    같은 시기 북인도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퐁갈 기간을 축하한다. 아쌈 지역에서는 비후(Bihu)라 부르는데 가족과 친구들이 밤새 붉을 밝혀 불의 신에게 기도 드린다. 웨스트벵갈 지역에서는 쌀로 만든 디저트를 먹으며 이날을 보낸다. 안드라 프라데시에서는 이날을 보기(Bhogi)라 부르며 온 가족이 인형으로 집 안을 꾸민다. 4일간의 축제는 날마다 부르는 명칭이 달라 첫째 날은 보기, 둘째 날은 퐁갈, 셋째 날은 마투(Mattu) 퐁갈, 마지막 날은 카눔(Kaanum) 퐁갈이라 한다.



    첫날인 보기에 사람들은 비와 구름의 신인 ‘인드라’에게 기도를 올린 뒤 오래된 옷은 장작불에 태우고 그 주위를 돌며 춤추고 노래 부른다. 여자들은 이른 아침 랑골리를 현관 입구에 걸고, 새로 수확한 쌀이 끓어넘치도록 요리한다. 쌀이 끓어넘치면 온 가족이 ‘퐁갈, 오 퐁갈’이라고 외친다. 그 뒤 태양의 신에게 정제하지 않은 설탕과 끓인 우유를 바치며 기도를 드린다. 마투 퐁갈은 소를 위한 날이다. 한 해 동안 농사에 큰 도움을 주고 우유를 만들어준 소에게 휴식을 주며 감사를 표한다. 사람들은 이날 소를 깨끗이 씻기고 뿔에 색을 칠한다. 마지막 날은 가족을 위한 날이다. 멀리 있는 친척을 찾아가서 음식을 나눠 먹는 것으로 축제를 마무리한다. 새를 위해 바나나 잎에 남은 음식을 두기도 한다.

    도시에 인구가 늘어난 오늘날, 축제를 즐기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 4일 내내 축제를 즐기는 모습은 이제 농촌에서나 볼 수 있고, 도시에서는 대부분 둘째 날인 ‘퐁갈’만 즐긴다. 전통을 따른다면 토기 그릇에 음식을 해먹어야 하지만, 도시에서는 평소 쓰던 조리도구를 이용해 간단히 명절음식을 만든다. 오래된 옷을 불태우는 것 대신 나뭇조각이나 비닐봉지, 타이어 등을 가져다 태우기도 한다. 이는 새로운 환경문제로 떠올랐다.

    즐거운 일로 가득했던 퐁갈이 올해는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남인도의 케랄라와 타밀나두에서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1월 14일 참배를 위해 케랄라 사바리말라 사원으로 향하던 많은 수의 힌두 신도가 사원을 향해 돌진하는 삼륜차를 피하려다 대열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압사사고를 당한 것. 사고 첫날 60여 명이던 사망자는 점점 늘어 109명이 됐다. 12명의 어린아이도 목숨을 잃었다. 후속 조치가 더디게 이뤄져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망자도 있다. 사람들이 달려오던 차를 한꺼번에 피하려다 생긴 사고라 피해 상황과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축제 선물 두고도 말썽 일어

    힌두교는 여러 종파가 있다. 사바리말라 사원은 아야파(Ayyappa)를 믿는 힌두 신도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다. 이들은 매년 이 기간쯤 검은색 옷을 입고 맨발로 사원까지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몇 달을 걸어 성지순례를 온다. 특히 1월 14일에는 사바리말라 사원에서 아야파 신에게 바칠 보석을 전달하는 행사가 열려 평소보다 많은 순례자가 몰린다. 사원을 오르는 협소한 길도 사고를 크게 키웠다. 목격자들이 “성지순례를 온 사람들이 모두 검은 옷을 입어 사고 현장이 검은 강물 같았다”고 말할 만큼 현장은 처참했다.

    신도들이 퐁갈 기간이라 사원에 몰린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퐁갈과 사바리말라 사원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 힌두 신화에 따르면, 퐁갈을 기점으로 밤이 낮보다 긴 기간이 끝나 신들의 날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힌두 신도들은 이날을 기념해 사원에서 신에게 보석을 바친다. 1월 17일에도 퐁갈과 관련한 사고가 있었다. 타밀나두 지역 마두라이에서 퐁갈 전통 놀이인 ‘인도식 로데오’를 하던 중 1명이 죽고 30명이 다친 것. 타밀나두 주는 이 로데오를 1년에 절반 이상은 금지하지만 퐁갈 축제기간인 1월 15일부터 다섯 달 동안은 허락한다. 동물보호협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위험한 경기를 강행한 끝에 결국 인명사고만 났다.

    축제 선물을 두고도 말썽이 있었다. 인도에서는 퐁갈 기간에 나이 많은 어른이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안발리푸(Anbalippu)’라는 전통이 있다. 올해는 타밀나두 주 총리가 축제 선물로 5명의 관료에게 10루피(약 250원) 정도의 작은 선물을 나눠주었는데 그게 문제가 됐다. 언뜻 들어서는 훈훈한 소식일 수도 있지만 부정부패방지위원회장은 즉각 이를 비판하고 나섰다. 정부의 공직자 윤리강령에 따르면, 관직자는 어떤 선물도 받으면 안 되는데 주 총리가 이를 어겼다는 논리. 위원회장은 “최근 굵직한 뇌물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이런 작은 선물을 주는 행위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소한 선물이었던 까닭에 더는 파장이 커지지 않았다.

    퐁갈 축제는 인도뿐 아니라 타밀 커뮤니티가 있는 싱가포르나 스리랑카 지역에서도 열리는데, 올해 스리랑카는 인도처럼 그리 행복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2010년 12월 말부터 시작된 홍수로 스리랑카 동부와 중부 지역에서 100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 이재민이 전체 인구의 5%에 이를 만큼 많았다. 이재민은 집을 떠나 수재민 구호 캠프에서 축제를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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