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3

..

쉿, 바람이 잠시 머물면 신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경주 동남산 산책길

  • 윤승원 탤런트·사단법인 세계걷기운동본부 홍보대사

    입력2011-01-28 16:2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쉿,  바람이 잠시  머물면 신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남산 통일기원전각, 서출지를 지나 봉화골 쪽에 이르면 푸른 하늘을 품은 신선암 마애보살좌상과 만날 수 있다.

    1월 15일. 점심식사를 하고 간편한 운동화 차림으로 길을 나선다. 오늘따라 경주 동남산 사적지를 둘러보는 일정이 산책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듯 가볍게 느껴진다. 하지만 신라의 보물 길을 걷는다는 역사적 무게감은 절대 가볍지 않다. 몸은 현재, 정신은 과거로 돌리는 제법 환상적인 순간의 끌림이다. 수년 전 SBS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김유신 역을 맡았던 나는 그때를 떠올리며 신라의 기풍이 스며든 이곳을 마음으로 걷고자 한다.

    곳곳에 유물 유적 거대한 ‘노천박물관’

    남산은 금오산과 고위산 두 봉우리를 비롯해 도당산과 양산이 합쳐져 있다. 동서 4km, 남북 8km에 불과하지만 산에 깃든 문화적 가치만큼은 어느 산에 비교할 수 없다. 남산에는 왕릉 13기, 산성지(山城址) 4개소를 포함해 사지(寺址) 147개소, 불상 118구, 탑 96기, 석등 22기, 연화대 19점 등 무려 672점의 문화 유적이 곳곳에 자리한다. 이 중 44점이 보물, 사적, 중요민속자료 등으로 지정돼 있다. 2000년 12월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산을 ‘경주의 심장’이라 부른다. “남산을 오르지 않고 경주를 봤다고 하지 마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역사에 문외한이라도 남산을 오르다 보면 ‘노천박물관’이 따로 없음을 금세 느낄 수 있다. 발에 차이는 게 유물, 유적이다 보니 전설 같은 ‘스토리’도 많다.

    전체 남산 중 동남산은 보문단지나 토함산 등에 인접한 서남산 일대보다 덜 알려졌지만 숨겨진 보물이 많다. 조용하게 신라의 역사를 음미하며 걷기에는 서남산보다 이곳이 더 좋다. 동남산은 경주 시내를 기준으로 했을 때 시가지를 마주하고 선 남산의 북쪽 끝 통일기원전각 방향이라 생각하면 된다. 동남산 코스 길의 시작은 국립경주박물관이다. 박물관 입구에서부터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이 제법 보인다. ‘설마 나를 알아볼까.’ 최근 주말드라마 ‘근초고왕’에서 비류왕 역을 맡은 나를 보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많다. 백제왕이라서 모른 체하는 걸까. 모두들 신라의 과거와 현재에 빠져드느라 신경을 빼앗긴 탓이겠지만 그래도 서운한 건 어쩔 수 없다.

    박물관을 뒤로하고, 지난해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신라의 ‘명물’ 선덕여왕릉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박물관 옆 배반사거리에서 울산 방향으로 500m 정도 가면 이리를 닮았다 해서 이리메라 이름 붙여진 산(낭산(狼山), 104m)이 보이는데 왕릉은 이곳의 중허리에 있다. 산이라고 해봐야 언덕 수준이고, 조금 올라가면 왕릉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능 옆으로 뻗은 길을 따라 내려오면 50m, 100m마다 사천왕사, 망덕사 터와 벌지지(伐知旨) 등이 이어진다. 일제강점기에 개설된 동해남부선 열차가 교차하고 국도가 지나갔던 사천왕사지(四天王寺址)는 원형이 파괴되고 말았다. 낭산 남동쪽 기슭에 자리해 절묘하게 자연과 어우러진 이곳 절터의 옛 모습을 볼 수 없게 만든 건 다분히 고의적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월명대사 피리소리 충신 박제상의 외침

    쉿,  바람이 잠시  머물면 신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동남삼에서 서남산으로 이어지는 절경. 벼랑 끝에서 산 전체를 바라보고 서 있는 용장사지 3층 석탑.

    사천왕사지 앞 큰길을 따라 수백m를 걷다 보니 월명대사가 피리를 불며 걸었다는 월명로와 만난다. 여기서 문천(蚊川)을 건너지 않고 왼쪽으로 보이는 길로 가다 보면 반대쪽에 다복솔(가지가 탐스럽고 소복하게 많이 퍼진 어린 소나무)이 무성한 곳이 보이는데, 바로 망덕사지(望德寺址)다. ‘삼국유사’에는 애장왕 5년(804) 망덕사의 목탑 2기가 크게 싸웠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그해 우두주(강원 영서지방의 행정구역)에서는 쓰러져 있던 돌이 일어서고, 웅천주의 부포(釜浦)에서는 물이 핏빛으로 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괴변(怪變), 국가적인 불상사로 여겨 염려했는데, 실제 그 후 애장왕이 왕위쟁탈전을 벌이다 죽었다고 전해진다. 신라가 극도의 혼란에 빠져 망국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됐던 곳이 이 자리라고 생각하니 비장함이 엄습한다.

    다시 문천을 건너 오른쪽으로 향하면 보리사지, 탑곡마애조상군이 나오고 왼쪽으로 큰길을 따라 걸으면 서출지(書出池)가 나온다. 사적 제138호인 이 저수지는 신라 21대 왕인 소지왕(炤知王)이 서출지라는 말 그대로 못에서 얻은 글을 읽고 궁중의 간계를 막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내 마음은 잠깐 신라 눌지왕 때로 돌아가 상념에 잠긴다.

    변장을 하고 고구려로 간 충신 박제상(朴堤上)은 볼모로 잡힌 왕의 아우 복호(卜好)를 만나 천신만고 끝에 서라벌로 데려오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박제상은 집에 들를 겨를도 없이 왜국(倭國)에 잡혀 있는 미사흔(未斯欣)을 구하기 위해 동해 율포(栗浦)로 말을 몰았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박제상의 부인이 동해로 그를 마중 나갔지만 아무런 자취도 발견하지 못한다. 돌아오는 길, 부인은 서라벌이 바라보이는 모래벌판에 이르자 두 다리를 뻗은 채 넋 놓아 운다. 그 때문일까. 훗날 사람들은 이곳을 장사(長沙)라 부른다. 박제상의 인척이 부인을 일으키려 했지만 뻗은 다리가 돌이 돼 일어나지 못했다고 해서 ‘벌지지’(양지버들, 벋디다리벌)라 부르기도 한다. 돌아나오는 길, 망덕사지 입구 냇가에서 새삼 충신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망덕사지 입구에서 왼쪽 논둑길을 100여m 지나 화랑교를 건너면 화랑교육원이 나온다. 여기서 잠시 김유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다 통일기원전각으로 가는 길옆 산기슭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49대 헌강왕릉, 50대 정강왕릉과 만난다. 왕릉을 보고 다시 서출지로 돌아오니 10여 년 전 어느 여름의 추억이 떠오른다. 천년의 세월 지나면 저렇게 될까? 묵은 배롱나무 둥치에는 각혈을 하듯 붉은 배롱꽃이 뭉텅뭉텅 무더기로 피었다. 그날은 먼 산안개가 겹겹으로 산허리를 타고 왔고, 는개(늘어진 안개라고 할까)가 수만 뿌리 연꽃을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힐 듯이 조여드는 고요한 연못 속에 온갖 기기묘묘한 갖춤이 있었다. 배롱꽃과 수련이 연못을 싸고 있는 모습을 가슴에 안고 서울로 올라온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지금은 한겨울. 몇 년 전 배롱꽃은 생명을 다해 시들고, 수련도 뿌리를 땅속에 박고 깊이 잠들었다. 칼바람 소리 잠재우고 거친 황초를 다스린 후 수련은 제철이 되면 다시 돌아올까.

    탑골마애조상군(부처바위)을 가기 위해서는 처음 왔던 문천 쪽으로 되돌아나와야 한다. 둑길을 따라가면 마을이 나오는데, 거기서 왼쪽으로 접어들어 계곡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옥룡암(불무사)이 나온다. 이 절은 일제강점기에 민족시인이었던 이육사가 지병을 치료하면서 ‘청포도’ 시를 지은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경내의 툇마루가 있는 방을 지나 몇 걸음 떼면 불쑥 눈앞에 높이 10m의 바위가 나를 가로막는다. 이 바위가 바로 부처바위다. 부처바위엔 사방 전면에 불교 세계의 갖가지 형상이 새겨져 있다. 탑, 불상, 승려 외에 비천상, 사자상도 있는데 그 수가 30개가 넘는다.

    왜 신라인들은 사방불(四方佛·동방 약사우리광불, 서방 아미타여래불, 남방 석가모니불, 북방 비로자나불) 외에 이러한 형상을 새겼을까. 이는 단순히 서쪽에 이상향이 있다는 아미타불의 정토, 서방정토를 표현한 게 아니라 정토를 향한 속인들의 마음을 상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처바위는 암자를 마주보고 있는 북쪽 암벽을 중심으로 조성된 듯 이면에 석가여래좌상이 있고, 그 좌우에 크고 화려한 탑을 배치했으며, 각각 한 마리의 사자가 지키고 있다. 부처님 위에는 천개(天蓋)가 있고 그 위에는 비천상(飛天像)이 있으니, 석가여래를 중심 삼은 부처님 세계를 나타낸 게 아닌가 싶다. 2개의 탑은 목탑으로 보이며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를 완전히 갖췄다. 특히 상륜부는 노반, 용차, 보주에 이르는 전 부분이 나타나 있어 신라 목탑을 연구하는 데 귀한 자료가 된다. 동탑은 9층이고 서탑은 7층이다.

    어머니처럼 덕성 있고 온화한 불상

    쉿,  바람이 잠시  머물면 신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신라의 망국을 예언했던 망덕사지의 당간지주.

    부처바위의 서면은 면적이 작아 불상 1구와 불상 주위의 장식물, 그 위를 나는 비천(飛天)상이 그려져 있다. 3개로 갈라진 바위가 3면을 이루는 부처바위의 동면은 산으로 오르는 길가에 있다. 산으로 오르는 가파른 언덕에 자리하다 보니 가장 낮은 지면에서 솟은 암벽의 높이가 10m가 넘는다. 여기에는 삼존불이 연화대에 앉은 모습이 새겨져 있다. 앞에는 향로를 받든 수도인이 있고, 부처님 머리 위에는 비천들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부처바위에서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성불 과정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 3세 부처님 세계를 담은 독특한 조각이 눈에 들어온다. 남면 바로 앞에는 여래보살 1구가 있고, 기도하는 스님이 조각된 바위가 있다. 주위에는 3층 석탑의 탑재와 석등 자리 등이 있다. 금강역사가 조각된 문주형(門柱形)의 석주도 있다.

    옥룡암에서 서쪽으로 능선을 넘으면 불곡(佛谷)이 있다. 여기엔 감실(불교·유교·천주교 등 종교에서 신위(神位) 및 작은 불상·초상 또는 성체(聖體)를 모셔둔 곳)처럼 석굴 안에 불상을 모셔놓았다. 불상은 약간 숙인 얼굴에 수줍은 듯 미소를 띤 표정이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머리에는 혹 같은 불정(佛頂)이 솟아 있다. 두 손은 소매 속에 들어가 있으며, 법의는 넓게 주름이 져서 두 무릎 밑까지 흐른다. 남산의 불상 중에서도 가장 오래됐다는 이 불상을 두고 선덕여왕을 모델로 했다느니,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 도교의 흔적을 말한다느니 호사가들의 전언이 적잖다. 분명한 건 어머니처럼 덕성스럽고 온화한 불상의 분위기에서 신라 조상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한때 사업에 손을 댄 적이 있다. 세월이 흘러 참담한 패배를 맛보고야 장사와 경영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이곳 남산을 찾았고, 목 없는 불상을 보며 저렇게 천년을 인고하며 기다리는 자세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연꽃 자욱한 서출지에서 한없는 여유를, 부처바위에서 준비된 자의 갖춤을, 그리고 불곡 감실 불상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가슴 깊이 느꼈다.

    쉿,  바람이 잠시  머물면 신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남산을 찾으면서 새로운 발견을 한다. 경주 남산. 그것은 아름다운 마음의 출발이다. 찢기고 상처 난 마음을 풀어놓으면 남산은 부드럽게 다가와 속삭여준다. 두세 시간 걸었다는 성취감은 가장 작은 만족일 뿐이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서남산, 북남산 가리지 않고 KTX를 타고 와서 오후 한때 즐기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 일상에 몰두할 것이다. 마음 같아선 매일 반복하고 싶다. 남산이여, 영원하라.

    Basic info.

    ☞ 교통편


    대중교통 | 서울-신경주 KTX(5시 30분부터 30분~1시간 간격 운행, 2시간 소요) → 시내버스 50, 51, 60, 700번(10분 간격) → 고속터미널 → 시내버스 11, 600, 601, 603, 604, 605, 607, 608, 609번 → 국립경주박물관

    서울-경주고속버스터미널(6시 5분부터 25분~1시간 간격 운행, 4시간 30분 소요) → 시내버스 11, 600, 601, 603, 604, 605, 608, 609 → 국립경주박물관

    자동차 | 서울 → 경부고속도로 → 경주IC → 국립경주박물관

    코스

    국립경주박물관 → 낭산 → 선덕여왕릉 → 사천왕사지 → 망덕사지 → 서출지 → 벌지지 → 화랑교육원 → 헌강왕릉 → 서출지 → 부처바위 → 불곡(5km, 3시간 소요)

    쉿,  바람이 잠시  머물면 신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