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2

2011.01.24

만화, 현대미술로 태어나다

‘제1회 국제만화예술축제’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11-01-24 1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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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 현대미술로 태어나다

    이희재 ‘인사동’, 2009

    전 만화를 참 좋아합니다. 스토리도, 그림도 다 좋아해요. 제 컴퓨터 배경화면도 만화가 원수연 씨의 일러스트레이션입니다. 팝 아트도 무척 좋아합니다. 특히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은 화려하고 원색적인 한 컷 만화 같은데요.

    문득 ‘만화와 현대미술의 차이가 과연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상업성과 대중성으로 무장한 ‘팝 아트’가 기존의 전통적 예술관을 사정없이 깨뜨리며 현대미술을 대중이 향유하는 예술로 만들었고, 이를 ‘만화’라는 장르가 이어받은 것 같습니다. 사실 인생의 진리와 유머, 해학과 풍자를 담은 만화는 예로부터 대중에게 가장 친숙했던 예술이지요.

    3월 20일까지 고양아람누리 갤러리누리에서 진행되는 ‘제1회 국제만화예술축제’는 진화를 거듭하며 예술의 영역에 가까워진 만화, 그리고 만화의 유머와 시각적 표현을 차용한 현대미술을 함께 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국내관과 해외관, 블랙유머관으로 구성됐는데, 국내관에서는 한국 만화계 두 거장인 박재동과 이희재 화백을 비롯해 시사만화 작가들과 젊은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해외관에서는 ‘우주소년 아톰’의 아버지이자 ‘일본만화의 신’이라 부르는 데즈카 오사무의 원화와 유럽·중국 등지의 카툰 및 일러스트 작가들의 최신작이 전시됩니다. 19세 이상에게만 공개되는 블랙유머관의 작품들은 기괴하면서도 독창적인 표현이 관람객의 눈길을 확 사로잡고요.

    이처럼 대중에겐 만화와 현대미술의 경계가 무너지는 듯 보이지만, 국내 현대미술의 벽은 무척 높고 견고하다는 게 만화가들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사실상 전시장이나 센터가 아닌 미술관 또는 갤러리에서 만화 작품을 전시하는 건 무척 드문 일인데요. 2010년 한국만화 100주년을 맞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념 전시를 한 것을 제외하곤, 이처럼 대규모로 만화 작품을 한곳에 모아 선보이는 건 이번 축제가 처음입니다. 사실 갤러리 주인이나 컬렉터들이 기존 작품의 가치(즉 가격)가 떨어질까 봐 현대미술과 만화를 함께 전시하는 걸 꺼린다고 해요. 유럽이나 일본 등지에서는 이미 만화가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당당히 인정받고 거래 역시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데 말이죠.

    만화, 현대미술로 태어나다

    박재동 ‘선생님’

    또 만화를 순수예술로서가 아니라 산업적 측면으로만 바라보는 것도 문제입니다. 상명대 고경일 만화디지털콘텐츠학부 교수는 “10여 년 전부터 국가에서 만화를 돈벌이, 즉 애니메이션과 게임의 산업적 차원에서만 지원해왔다”며 “하지만 만화의 스토리와 그림이 좋아야만 산업적 차원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는데요. 일본이 패전 후 60년 동안 순수예술로서 만화를 지원해온 결과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거장 애니메이션 감독이 나왔듯, 우리 역시 당장의 성과에 급급하지 말고, 순수하게 만화 자체를 바라보고 지원해야 한다는 거죠.



    이번 전시를 보고 저는 박재동, 이희재 화백의 작품을 한 점씩 구매해 집에 걸어놓고 싶었어요. 그 따뜻한 선과 색감을 보고 있으면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돌거든요. 두 화백은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작품을 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저렴한 판화 작품을 많이 제공한다고 해요. 여러분도 집에 만화 작품 한 점 걸어놓는 게 어떨까요? 전시 문의 02-332-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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