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8

2010.12.27

우린 왜 ‘여성 정치인’에 환호하는가

16개국 정상이 여성, 21세기 메가트렌드 … 정보화사회 여성 리더십 더 각광

  • 김민정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mjkim@uos.ac.kr

    입력2010-12-27 11: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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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20개국의 정상 가운데 4개국 정상이 여성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정상회의에서 여성을 보기는 쉽지 않았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일국의 정상이라고 하면 감색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 일색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그림을 바꿀 때가 됐다. 2010년 12월 현재 세계에서 선출직으로 정상 자리에 오른 여성은 깜짝 놀랄 만큼 많아졌다. 최근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를 포함해 16개국의 대통령 또는 총리가 여성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이었던 정치가 변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도대체 세계 정치무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최초의 여성 최고통치자는 1960년에 당선된 스리랑카의 반다라나이케 총리이며, 최초의 여성 대통령은 1974년에 당선된 아르헨티나의 이사벨 페론이다.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영국을 통치했던 대처 총리가 있고, 인도에서는 인디라 간디 총리가 1966년부터 1977년까지 12년간 통치했다. 1960~70년대 이스라엘에는 골다 메이어 총리가 있었고, 1980~90년대에 걸출했던 노르웨이의 그로 할렘 브룬틀란도 빼놓을 수 없다.

    수많은 고학력 여성 정치에 도전

    이 밖에 소수의 여성 정치지도자가 있었지만 최근처럼 여러 여성 정치인이 동시에 등장한 예는 없다. 현재 독일의 기민당 당수이자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 대통령직을 연임한 아일랜드 대통령 메리 매컬리스, 핀란드의 타르야 할로넨 대통령, 크로아티아의 야드란카 코소르 총리, 보스니아의 보르야나 크리스토 대통령 등 다수의 여성 정치인이 총리 또는 대통령직을 맡아 국정을 이끈다.

    이와 함께 미국도 여성 최고 정치지도자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오바마와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끝까지 접전을 벌였고, 텔레비전 드라마에서조차 여성 대통령을 다룬 ‘최고사령관’, 여성 CIA 요원 이야기를 그린 ‘엘리어스’가 인기를 끌면서 조만간 여성 대통령 출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과거 한두 명의 특출한 여성이 남성 전유물이었던 ‘정치의 사다리’를 올라가 성공했다면 이제는 훨씬 많은 여성이 도전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의 원동력은 무엇보다 교육 수준의 향상에 있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남성보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높다. 미국에서는 1985년까지 대학을 졸업한 남성 수가 여성보다 많았지만 이후로 역전됐다. 프랑스의 경우 1980년대에 이미 대학 진학 여성의 수가 남성보다 많아졌다. 이처럼 고학력 여성이 늘어나자 자연히 사회, 정치적 변화에 영향을 끼칠 만큼의 수적 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들이 정치의 남성 지배적인 현상을 바꾸는 주체가 됐다. 특히 전문성으로 무장한 고학력 여성이 정치 무대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변호사 출신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 스탠퍼드대 교무처장 출신의 정치학 박사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 프랑스 국립행정학교 출신 세골렌 루아얄 전 사회당 대선후보와 마르틴 오브리 전 프랑스 노동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뭔가 다른 정치 보여주겠지” 기대

    우린 왜 ‘여성 정치인’에 환호하는가
    두 번째 이유는 사회의 변화다. 과거 근력을 필요로 했던 많은 분야가 인간보다도 오래 견디고 일순간 더 많은 힘을 낼 수 있는 기계로 대치되면서 더는 근력 위주의 노동력이 필요치 않다. 그 대신 정보사회에는 3F(Feminity, Feeling, Fiction)를 강조하며 이제까지 여성적인 것으로 무시했던 가치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사회의 많은 영역에서 감성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산업이 중시되고, 강성이 아닌 유연성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다. 21세기의 리더십은 개발시대에 보여주었던 불도저 같은 추진력, 상명하달식의 카리스마 넘치는 명령체계보다는 조직을 만들고 권력을 나누고 대화하는 부드러운 권력을 요구한다. 이런 사회적 변화가 여성 지도자들의 등장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과거에는 여성이어서 정치에 서투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여성이기 때문에 뭔가 다른 정치를 보여주리라는 기대 속에서 기꺼이 여성 지도자를 선택한다.

    여성 지도자들의 정치 경험 유형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내부형, 대장부형, 전문가형이 그것이다. 첫째 내부형은 주로 서남아시아 지역처럼 정치의 제도화가 뒤떨어진 나라에서 많이 나타난다. 이 유형의 여성 정치지도자들은 정치 엘리트의 내부자였기 때문에 그 지위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인도 총리 네루의 딸이었던 인디라 간디가 대표적이다. 인도네시아의 대통령이었던 메가와티 역시 그의 아버지 수카르노 대통령의 대리인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일반적인 여성의 정치 참여는 낮은데 여성 최고지도자가 배출되는 지역에서 이런 유형이 많다.

    둘째 대장부형이다. 20세기 대부분의 여성 지도자는 남성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남성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남성적인 행위로 정치에서 리더십을 행사하는 대장부들이었다. 때에 따라서는 남성보다 더 남성적인 성향을 보이는 여성 정치인도 있다. 이들이 정치에 입문할 때만 해도 여성 정치인은 희귀한 존재여서 남성처럼 되지 않고는 정치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대장부형은 시대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처 총리가 이에 속한다.

    셋째는 전문가형이다. 전문 분야에서 특성을 살려 정치지도자가 된 경우다. 특히 보건이나 보육, 여성운동 등의 영역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다 정치에 입문한 여성이 많다. 또 대부분 전문성 때문에 남성 정치인들에 의해 발탁된 케이스다. 그래서 이들은 정치가라기보다 관료에 가까우며, 전통적으로 여성적 영역으로 간주되던 분야에서 활동한다. 브룬틀란 노르웨이 전 총리가 여기에 속하는데, 보건 분야 전문가로서 정치에 입문했고 이런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활동했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으로도 활동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나타난 여성 정치인들은 이런 3가지 유형에 딱 맞지 않는다. 2000년대 여성 정치지도자들은 남성과 같이 정당에서 활동하고 오랜 기간 정치를 하다 선거를 통해 총리나 대통령이 됐다. 즉 충원 통로가 남성 정치인들과 다르지 않다.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은 젊은 시절 사회당에 투신해 오랫동안 정치활동을 한 끝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동독 출신으로 통일 이후 콜 수상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고 장관을 거쳐서 총리가 됐다.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당선자 역시 군부독재에 저항한 게릴라 단체 지도자로 활동하다 정계에 입문했고, 지방정부에서 장관직을 지내며 정치를 하다가 룰라 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중앙정치 무대에 섰다.

    그렇다면 여성 지도자들의 리더십은 남성 지도자들과 다른가? 남녀가 태생적으로 다른지에 관한 많은 논의가 있었고, 아직까지 정확하게 검증된 이론은 없다. 다만 현시점에서 여성과 남성이 다른 만큼(그것이 태생적으로 다른 것인지, 그렇게 키워져서인지는 모른다 해도) 리더십도 다르다는 것이 일반적인 주장이다. 여성적 리더십의 중요 특성을 꼽자면 상호보완적 측면에서 모성, 보살핌, 관계지향성, 도덕성, 참여적이며 민주적인 리더십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제부터가 진짜 여성 정치인 시대

    우린 왜 ‘여성 정치인’에 환호하는가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위) 핀란드 대통령 타르야 카리나 할로넨(아래)

    먼저 모성존중론이다.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며 양육하는 모성은 여성의 전유물이다. 이런 성향으로부터 여성은 파괴하기보다 창조하고 보살피는 능력을 가진다. 여성 지도자는 ‘어머니 같은, 누이 같은’ 리더십으로 추종자들을 이끌 수 있다. 1970년대 개발시대에는 공격적 리더십을 요구했고 이런 유형의 남성 정치인이 각광을 받았다. 특히 냉전시대에는 이데올로기적인 갈등 속에서 군사적 안보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이슈였기 때문에 이를 수행하기에 적절한 남성 지도자를 원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평화와 화해를 이끌어내고 공동체의 갈등을 해결하는 모성적 리더십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

    두 번째는 보살핌이다. 남성들은 타인과의 관계를 경쟁으로 인식하며 권력에 입각해 지배-피지배의 관계를 형성하고, 위계질서의 규칙을 제정하며, 강자와 약자의 권리를 구분하려 한다. 그러나 여성은 타인과의 관계를 협력으로 인식하고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타인에 관심을 가지고 책임을 지며 보살핀다. 남성의 자기중심성과 여성의 타자지향성이 비교되기도 한다. 친근함, 타인에 대한 관심, 표현성, 민감성 등의 사회적 재질이 일반적으로 남성보다는 여성에게서 높게 나타난다. 즉 여성은 관계 안에서 존재한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남성은 독단적 결정을 잘 내리는 데 비해 여성은 타인과 의논해 자기 의견에 확신을 얻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점에서 확실히 여성은 관계에 강하다. 오랜 내전으로 분열이 심했던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엘런 존슨설리프라는 여성 대통령이 등장한 것도 이런 보살피는 리더십 덕분이었다.

    여성 지도자들은 어쩌면 당연하게 여성 문제를 잘 이해하고 여성의 이익을 대변한다. 스웨덴을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는 모성보호, 임신중절 관련 입법, 남녀평등기회법 등에서 여성 정치인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대외 정책에서는 국방비 삭감, 원조, 국제평화 분야에서 여성 정치인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칠레의 전 대통령이었던 바첼레트는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많은 일을 해냈다. 여성 정치지도자는 남성과는 다른 우선순위를 정해 사회를 보고, 여성의 눈으로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 최고 정치지도자도 정치지도자다. 어쩌면 그들이 당선될 때까지는 여성이라는 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고, 선거전에서 유리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대통령이나 총리 자리에 앉으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최고 정치지도자로서 할 일을 해야 한다. 국가에 산재한 문제를 잘 해결해야만 자신의 책무를 다하는 것이다. 이들은 여성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최고지도자로서 해낸 성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출발점은 여성과 남성이 다를지 모르지만 결국 어느 쪽이든 국가가, 국민이 요구하는 역할을 잘 수행해내느냐가 정치지도자로서 성공의 관건이다. 브룬틀란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여성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노르웨이 사회의 발전에 많은 일을 했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입빠르게 21세기는 여성 정치인의 시대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아직은 아니다. 그러나 곧 우리는 여성 정치인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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