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7

2010.12.20

“명중률 쑥쑥 오르는데 맞춤형 소총 왜 안 씁니까”

신체에 맞춘 개인화기 개량 오인규 前 준위 “장병들 전투력 향상, 생존이 달린 문제”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0-12-20 1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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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중률 쑥쑥 오르는데 맞춤형 소총 왜 안 씁니까”
    2006년 5월 전역한 박모(26) 씨는 국방부 근무지원단 의장대대에서 복무했다. 박씨의 키는 188cm지만 군생활에는 큰 불편이 없었다. 큰 발에 맞는 군화, 긴 다리와 팔에 맞는 군복을 지급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화기인 총은 달랐다. 미국에서 들여와 길다는 M16 소총을 지급받았지만 제식을 할 때면 엄지와 검지로 맞잡는 가늠쇠에 손이 닿지 않아 불편했다. 더 큰 문제는 사격 때 발생했다. 박씨의 대대는 늘 사격 평가에서 하위권을 맴돌았다. 총을 돌리느라 총열이 휘어서 그렇다는 선임의 이야기에 그러려거니 했다. 하지만 원인은 따로 있었다. 소총이 키와 맞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국산 개인화기 K-1, K-2 소총은 170~175cm 키에 맞게 설계돼 문제가 심각했다.

    평균 키보다 크거나 작은 장병들의 사격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이가 있다. 특전사에서 28년을 복무한 오인규(58) 전 준위다. 오씨가 장병의 사격술 향상에 관심을 가진 것은 군인인 아들과 딸 때문이었다. 오씨의 아들은 190cm, 딸은 160cm로 둘 다 사격을 할 때마다 불편을 호소했다. 특히 아들은 영점을 잡을 때부터 실제 사격까지 남보다 많은 노력을 했지만 총의 크기가 맞지 않아 성적이 좋아지지 않았다. 아들과 딸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 오씨는 직접 해결해보기로 결심했다.

    평균 키에 맞춘 국산 개인화기

    “국방력의 기초는 장병들의 손에 들린 개인화기, 즉 소총입니다. 군대에서는 적에게 쏜 총알 10발 중 5발이 명중하면 우리 병사 10명이 죽고, 10발 중 9발이 명중하면 2명이 죽는다고 봅니다. 우리 군의 생존율이 달린 중대한 문제지요.”

    오씨는 2006년 1월부터 2007년 3월까지 15개월간 일선 부대의 총기 사격 결과를 집계, 분석하기 시작했다. 컴퓨터가 익숙지 않아 일일이 노트에 적어가며 신장과 명중률의 상관관계를 분석해갔다. 군부대별로 신장별 인원의 분포를 파악하고, 사격 결과를 신장별로 구분해 기록했다. 충분한 표본을 수집한 결과 170~174cm 키의 군인이 80% 수준의 명중률을 보인 반면, 그보다 크거나 작은 군인의 명중률은 60%로 저조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문제점을 발견한 오씨는 해결책을 찾기 위해 각국의 총기류를 공부하고 총과 관련된 특허기술도 파악했다. 명사수가 모인 태릉선수촌도 찾아갔다.



    “사격 선수들을 만나보니 키와 팔, 목의 길이까지 따져 총의 길이를 1mm 단위로 조정했더군요. 조준경도 시력을 일일이 잰 뒤 맞췄습니다. 총의 가늠구멍과 견착점의 거리가 명중률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오씨는 2002년 미국 육군이 개발한 레일식 개머리판에 관심을 가졌다. 미 해병대는 버튼을 조작해 레일을 이동하는 레일식 개머리판을 1년간 시범 사용해 명중률을 15% 이상 상승시켰다. 하지만 레일식은 내구성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복잡한 부속품이 들어가다 보니 물, 먼지 등에 노출되면 잔고장을 일으켰고 제작에 비용도 많이 들었다. 자칫 전쟁터에서 고장이 나면 군인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개인화기의 기본 조건은 견고하고 기능 고장이 없어야 합니다. 레일식은 사용하기 복잡한 데다 무거우니 실전에서 사용하기 어려워 미 육군도 전투병력 보급 불가 판정을 내렸어요.”

    오씨는 직접 한국 현실에 맞게 개발하기로 했다. 레일형 대신 총기의 개머리판 길이를 변경하거나 어깨받침쇠의 길이를 조절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K-1 소총은 홈이 있는 어깨받침쇠를 만들어 길이를 조절하고, K-2는 개머리판 끝 부분의 거리를 달리해 만들어 신장 차이를 줄이기로 대안을 만든 것. 원래 총은 그대로 두고, 길이 조절이 가능한 개머리판과 어깨받침쇠만 탈부착식으로 교환해 사용하면 된다.

    “성능 검증 없이 주관부서 떠넘겨”

    “명중률 쑥쑥 오르는데 맞춤형 소총 왜 안 씁니까”

    오인규 씨가 맞춤형 총기의 장점 을 설명하고 있다.

    처음 오씨의 작업공간은 집이었다. 특별한 공구가 없어 쇠톱으로 쇠를 잘라냈고, 손에 화상을 입어가며 용접을 했다. 한번은 용접하다 불이 나 왼팔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이때도 왼팔에 붕대를 감고 전국 군부대를 돌아다니며 실전사격 검증에 나섰다. 치료는 군부대 의무실을 이용하는 게 전부였다.

    2008년 12월까지 설계를 하고 만든 뒤 마음에 안 들면 부수고 다시 설계하는 지루한 과정이 반복됐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거칠수록 사격술을 높여줄 맞춤형 개머리판과 어깨받침쇠(이하 맞춤형 총기)가 완성돼갔다. 신장에 따라 개머리판과 어깨받침쇠 길이 조절을 어떻게 할지, 재질을 무엇으로 할지 준비가 끝났다. 마침내 개인별 적합 규격과 군 보급 상황 등을 고려해 7단계로 조절되는 맞춤형 총기 50조를 제작했다.

    “50조만 만들면 내 일은 끝났다 생각했어요. 직접 군부대에서 사격을 해보니 아주 크거나 작은 병사도 보통 키의 병사만큼 명중률을 내기 시작했어요. 모든 기술을 국가에 넘기고 국방부가 알아서 잘해주기를 기대했어요.”

    상용화에 충분할 만큼 가격도 저렴했다. 어깨받침쇠와 개머리판은 각각 2만 원, 1만8000원 정도로 생산이 가능하다. 과거 어깨받침쇠와 개머리판의 가격보다 2000~4000원이 싸다. 30여 년 전 소재를 사용한 기존 소총보다 비용은 줄이고 견고성, 내한성은 키웠다. 각 군에 이미 보급된 총기 보관함도 수리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맞춤형 총기와 관련해 육군 교육사령부(이하 교육사)에 전투발전 요구서를 제출했다. 교육사는 실사격을 통해 맞춤형 총기의 실효성이 있는지 검증하도록 요구했다. 맞춤형 총기는 교육사가 지정한 8개 부대의 사격시험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군단, 사단, 훈련소 등 다양한 부대에서 군인 2000여 명의 명중률이 15~30% 상승했고 83%의 군인이 맞춤형 총기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교육사는 결과에 만족해 전투발전 요구서를 제출한 오씨의 아들과 딸에게 교육사령관 표창을 수여했다. 맞춤형 총기는 2009년 9월 1일 ‘국방일보’에 게재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오씨는 “교육사가 육군에 소요 제기를 했지만 검증기관의 실사 검증을 하지 않고 행정적 절차를 거쳐 내부 종결했다. 다시 국방부 군수관리과에 업체 개발제안서를 제출했지만 육군본부 군참부로 이관했다”고 말했다. 군참부는 교육사가 선정했던 8개 부대원의 의견은 반영하지 않고 다른 19개 부대에 맞춤형 총기의 필요성을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 19개 부대 중 14개 부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들 부대 중 맞춤형 총기로 실사격을 한 부대는 한 곳도 없었다.

    “결국 군의 검증기관에서 검증도 하지 않은 채 맞춤형 총기 대신 미군이 한때 사용했던 레일식으로 조건부 동의안 결정을 했음을 통보해왔습니다. 미국도 포기한 걸 고집하니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오씨는 맞춤형 총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맞춤형 총기는 군참부에서 방위사업청, 합동참모본부, 끝내는 기참부로 넘어갔다.

    “맞춤형 총기가 형상 변경이다, 성능 개량이다, 개량 정도가 중대하다, 경미하다 갖가지 이유를 대더니 몇 개월 만에 결정난 게 고작 기참부가 주관부서란 사실이었어요. 민간에서 개발한 기술도 괜찮다면 적용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명중률 쑥쑥 오르는데 맞춤형 소총 왜 안 씁니까”
    최근 국방부에서 재검토 움직임

    맞춤형 총기안이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니는 사이 맞춤형 개머리판과 어깨받침쇠는 특허청으로부터 특허를 획득했다. 오씨는 “돈을 벌려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국가에 특허를 넘길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몇억 원의 투자비용에도 미련이 없다.

    국방부는 10월 25일 오씨에게 답변을 주었다. 오씨의 기대와 달리 ‘불필요 판정’이었다. ‘2012년 조준경이, 2016년 차기 소총이 보급될 계획이며 맞춤형 총기는 보급과 정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국방부가 밝힌 이유다. 오씨는 국방부의 판단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차기 소총은 1정에 1500만 원 이상이 될 겁니다. 60만 장병에게 다 보급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전 장병에게 소형차를 주면 목적지까지 다 갈 수 있는데, 국방부의 결정은 몇 명에게만 외제차를 주고 나머지는 뛰어오라는 식입니다. 100만 원이 안 되는 소총이 전군에 보급되는 데도 30년 가까이 걸렸으니 차기 소총이 전군에 도입될 때까지 현재 소총과 동시에 사용해야 해요. 또 차기 소총은 무리하게 전군에 보급하기보다 1분대에 1~2정 수준으로 주는 것이 적당합니다. 겉만 화려한 계획보다 당장 실현 가능한 근본적인 개선책을 찾아야 해요.”

    오씨는 “조준경의 경우도 표적을 정확히 식별하고 명중률을 향상한다는 점에서는 도움이 되지만, 시야를 축소하고 백병전이나 침투 시 전투 활동에 제약을 준다”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게 답답하게 됐지만, 이미 군 현장에서는 오씨의 맞춤형 총기를 쓰는 부대가 있다. 어느 부대에서는 사격대회에 출전한 한 팀이 오씨의 맞춤형 총기를 사용해 1등을 하기도 했다. 이에 경쟁 팀에서 오씨에게 “맞춤형 총기를 달라”고 요구하거나 “다 같이 쓰지 말자”고 합의를 했다는 것이 오씨의 전언이다. 오씨는 “부정적인 답변이 온 건 사실이지만, 최근 국방부에 재검토 요구안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제는 국민의 심판을 받고 싶습니다. 군대에 아들을 보낸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들이 어떤 총을 들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군인은 자신의 몸에 맞는 총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사격 성적과 관련해 사고도 끊이지 않는데, 키가 크거나 작다는 이유로 차별받아야 되겠어요? 군 검증기관에서 맞춤형 총기를 철저히 검증한 뒤 맞춤형이 별 필요 없다고 하면 깔끔히 포기하겠습니다.”

    “명중률 쑥쑥 오르는데 맞춤형 소총 왜 안 씁니까”

    7단계 구분된 K-2 맞춤형 개머리판, K-1 맞춤형 어깨받침쇠, 장병들이 오씨가 만든 맞춤형 총기로 사격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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