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6

2010.12.13

‘시크릿 가든’과 순정만화 코드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10-12-13 09: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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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순정만화 마니아였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무서운’ 오빠들이 가득한 동네 만화방에서 하루 종일 순정만화 20여 권을 후딱 ‘뗐을’ 정도죠. 만화가 원수연 작가는 제가 특히 좋아했는데요. 그런데 그의 집에서 만난 원 작가는 친한 동네 언니 같았어요. 열 살 된 아들은 장난감 총을 들고 온 집안을 뛰어다녔고, 일곱 살 된 딸은 엄마에게 안겨 볼과 입술에 뽀뽀세례를 했죠. 그의 말처럼 작가와 팬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호흡한다는 게 무엇인지 마음으로 느껴졌어요.

    원 작가의 작업실 책장에 가득한 예전 만화들을 바라보니, 문뜩 제가 10대였던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가 만화의 르네상스 아니었나 싶어요. 만화방은 항상 아이들로 가득했죠. 1988년 소년, 소녀 만화의 대표주자인 잡지 ‘아이큐점프’와 ‘르네상스’가 창간했는데요. 이후 다양한 만화잡지가 생겨났고, 이런 인기에 힘입어 당시 초등학생들은 장래 희망 직업으로 만화가를 적어내곤 했죠. 하지만 2000년 이후 인터넷에 무료 만화가 넘쳐나면서 경영난을 이유로 잡지들이 하나 둘 폐간했고, 만화 산업도 어려움을 겪게 됐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당시 순정만화를 보고 자랐던 소녀들이 어느덧 어른이 돼, 그때의 감성을 바탕으로 읽는 이, 보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작품을 쏟아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페이스 쇼퍼’의 정수현 작가도 어릴 적부터 순정만화를 엄청나게 읽었고, 그렇게 익힌 감수성이 자신의 작품 활동에 큰 도움을 줬다고 했어요.

    또 최근 큰 인기를 끄는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김은숙 작가 역시 순정만화 마니아였을 것 같은데요.

    ‘시크릿 가든’과 순정만화 코드
    드라마 곳곳에 순정만화 코드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김주원(현빈 분)이 윗몸일으키기를 하며 길라임(하지원 분)과 얼굴을 마주하는 모습은 그대로 순정만화의 한 장면 같은데요. 원 작가도 “최근 가장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가 ‘시크릿 가든’이라며, 작가는 분명 순정만화를 많이 봤을 것”이라고 했죠.



    이처럼 어릴 적 익힌 감성은 평생 가는 것 같아요. 온갖 순정만화와 ‘할리퀸’ 로맨스 소설을 섭렵했던 어린 시절이 제겐 축복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이번 주말엔 ‘정겨운 설렘’을 주던 순정만화를 다시 펼쳐봐야 할 것 같습니다. 원 작가와의 만남은 다음 호에 공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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