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8

2010.10.18

“난, 문화 기획·행정가 정치 생각한다면 미친 거죠”

경기도 문화의전당 조재현 이사장 … “예술단에도 경쟁체제 도입 예술인 실력 높일 것”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10-10-18 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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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문화 기획·행정가 정치 생각한다면 미친 거죠”
    “오전에 경기도 부천에서 회의, 점심 때 수원에서 식사 겸 미팅을 했고, 오후엔 일산의 한 도장에서 영화 준비를 위해 태권도를 배웠어요. 그러고 대학로에 와서 미팅을 4건 했는데, 지금이 마지막 미팅입니다(웃음).”

    10월 5일 밤 10시 서울 대학로에 있는 한 호프집에서 ‘경기도 문화의전당’(이하 문화의전당) 이사장으로 취임한 영화배우 조재현(45) 씨를 두 번째로 만났다. 9월 30일 경기도 수원에 있는 문화의전당에서 만났으나, 조씨의 일정이 빠듯해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사장 외에도 경기공연영상위원회 위원장, 대학로 연극의 상징이 된 ‘연극열전’ 시리즈 프로그래머로 활동 중이며, 한국과 태국의 합작영화이자 ‘옹박’으로 유명한 태국 프라챠 핀카엡 감독의 신작 ‘더 킥’의 주연을 맡아 10월 말부터 촬영에 들어간다.

    KBS 공채 탤런트 13기 출신으로 방송, 연극, 영화 등에서 폭넓게 활동해온 조씨는 8월 17일 산하 5개의 도립예술단과 직원 300여 명이 근무하는 문화의전당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경기도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문화의전당은 통상 도지사가 이사장을 맡아왔으나 전문성 확보와 쇄신 차원에서 공연 예술 현장 경험이 풍부한 민간인에게 위임했고, 첫 주자로 조씨가 발탁됐다.

    그가 경기도와 인연을 맺은 건 2009년 1월 경기공연영상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다. 조씨는 위원장으로서 2009년과 2010년 경기도 파주에서 열린 1, 2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경기공연희망나누기사업 등을 추진해 경기도민이 다양한 공연을 접할 기회를 제공했으며, 경기도와 함께 영상 전문 펀드를 조성하기도 했다. 이번 문화의전당 이사장 발탁은 경기공연영상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그간 쌓은 경험과 실적이 높이 평가받은 결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현재 이명박 대통령-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콤비를 떠올리며,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조씨를 짝지어 바라보기도 한다. 특히 조씨에 대한 김 지사의 신뢰가 매우 높고, 그의 이사장 발탁에 김 지사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런 시선이 더욱 많아졌다.



    직접 만나보니 조 이사장은 속마음을 숨기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일축하면서도 “문화 기획·행정가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고 했다. 다음은 조 이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수혜자 맞춤형 공연을 기획하겠다!”

    “난, 문화 기획·행정가 정치 생각한다면 미친 거죠”
    ▼ 문화의전당 이사장으로 취임한 지 두 달 가까이 지났는데 소감은?

    “문화의전당 직원뿐 아니라 산하 예술단들도 노력하고 있지만, 참신함과 생동감이 없고 정체된 느낌입니다. 전당이 경기도민의 세금으로 운영되지만, 그 혜택이 도민 전체에게 제대로 돌아가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어떤 행사나 공연을 기획하더라도 생명력이 있게 할 것입니다. 또 경기도는 무척 크기 때문에 지역마다 사람들의 특색이 매우 달라요. 예를 들어 연천 지역엔 노인이 많은데, 이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적 혜택이죠. 반면 고양 지역은 젊은 주부가 많아서 ‘브런치’를 겸한 공연을 하면 좋은 반응을 얻을 거라고 봐요. 이렇듯 수혜자에 대한 분석을 하고, 거기에 맞는 공연과 행사를 기획할 것입니다.”

    “난, 문화 기획·행정가 정치 생각한다면 미친 거죠”
    ▼ 스타가 출연하면 쉽게 관객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데요. 스타 출신 이사장으로서 직접 섭외할 계획도 있는지요.

    “스타를 출연시키는 건 대중의 호응을 이끄는 좋은 방법 중 하나죠. 마침 중장년층에게 인기가 많은 가수 최진희 씨가 경기도에 살아 산하 국악단과 함께 공연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더니 좋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스타에게만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문화의전당 산하 예술단이 더 좋은 실력과 콘텐츠를 갖추도록 하는 게 이사장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죠. 단원들의 계약 기간이 보통 2년인데, 솔직히 한번 단체에 들어오면 평생 연임된다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 생각부터 버려야 해요. 앞으로 예술단에 철저한 경쟁 체제를 도입할 예정입니다.”

    조 이사장은 2007년부터 연극제작사 ‘연극열전’의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면서 한채영, 박철민, 고수 등 젊은 스타 배우를 대학로 연극판으로 끌어들였다. 스타를 활용해 연극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여왔던 것. 2007년 12월부터 2009년 2월까지 이어진 ‘연극열전2-조재현 프로그래머 되다!’는 무려 27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정부도 국민도 다양성 인정 필요

    ▼ 언제부터 문화 기획·행정 쪽에 눈을 돌리신 건가요.

    “무척 자연스러웠어요. 연기만 생각하는 배우도 있지만, 감독이나 기획자 마인드를 가진 배우도 있죠. 전 기획자 마인드를 가진 배우예요. 연극과 영화에 출연하면서 ‘내가 기획한다면 지원은 이렇게 하고, 마케팅은 이렇게 할 텐데’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연극열전 프로그래머로 참여하면서부터죠. 2007년 연극열전이 흥행하자, 이를 유심히 지켜본 경기도에서 경기공연영상위원회 위원장직을 제안했어요. 2009년 위원장으로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을 성공적으로 이끌자, 2010년 문화의전당 이사장 제안이 들어온 거예요. 처음엔 경기도에서 문화의전당 사장을 제안했지만, 상근이기 때문에 못한다고 했죠. 그래서 비상근인 이사장이 된 겁니다.”

    2009년 열린 제1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이하 영화제)는 DMZ 내 대성동 마을에서 처음 진행한 축제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당초 영화제는 다른 곳에서 열고 대성동 마을에서는 북, 장구 치는 소규모 행사를 하려 했지만, 이는 ‘정전협정’ 위반이어서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회관을 영화관으로 개조한 뒤 아예 그곳에서 영화제를 진행해버린 것(이는 위반 사항이 아니었다). 2010년 9월 9일부터 13일까지 열린 제2회 영화제도 조 이사장이 김제동 씨와 김미화 씨를 개막식 행사 사회자로 추천하면서 큰 이슈가 됐다.

    ▼ 두 사람을 사회자로 추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연예인이 사회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희생당하는 모습을 선배로서 지켜볼 수 없었어요. 연예인도 사회 구성원 중 한 명일 뿐이잖아요. 한나라당 지사가 있는 경기도에서 하는 행사의 사회를 두 사람이 보면 의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무산됐지만요.”

    영화제에서는 용산 참사를 다룬 ‘용산 남일당 이야기’, 쌍용자동차 옥쇄파업투쟁을 기록한 ‘저 달이 차기 전에’ 등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다룬 작품이 많이 상영됐다. 특히 쌍용자동차 파업투쟁은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그간 강하게 비판해왔던 사안이다.

    ▼ 영화제 작품을 선정할 때 부담스럽지 않았나요.

    “다큐멘터리는 태생 자체가 사회 비판적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작품이 도지사의 정치색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보여주지 않는다? 이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여과 없이 보여주고 판단은 관객에게 맡겨야죠. 저는 ‘저 달이 차기 전에’를 보고 펑펑 울었어요. 하지만 감정은 슬펐지만, 이성은 작품이 노조 측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담았다고 판단했죠. 그런데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고등학생 관객이 ‘지나치게 노조 입장만 쫓아갔다, 사측의 이야기도 담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더군요. 이렇듯 우리 국민은 똑똑한데, 현 정부는 고등학생만도 못한 것 같아요. 무조건 막으려 하고, 감추려 하니 말이죠. 아니, 실상은 아니라 해도 국민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만으로도 정부가 잘못한 거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데, 내 편이 아니면 다 적으로 돌리고요. 비단 정부뿐 아니라 국민도 그런 것 같습니다.”

    “난, 문화 기획·행정가 정치 생각한다면 미친 거죠”
    ▼ 배우 출신인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많은 비판을 받았지요. 같은 문화행정가의 시각에서 유 장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솔직히 저는 이창동 전 장관이나 김명곤 전 장관이 어떻게 문화행정가로 활동했는지에 대해선 잘 몰라요. 그땐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유인촌 장관은 유심히 지켜봤죠. 전 유 장관이 잘한 점도 많다고 봅니다. 특히 국립극단 법인화는 참 잘했다고 봐요. 이번에 오디션을 통해 국립극단에 들어간 후배 연극인들이 ‘다음에도 재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결과는 몰라도, 과정에 대해선 박수 치고 싶지 않아요. 대화를 나누고 설득하는 과정 없이 무작정 밀어붙였기 때문이죠. 세련되지 못했어요. 여전히 국민은 유인촌 하면 ‘전원일기’ 둘째 아들로 생각하거든요. 배우 출신 정치가나 행정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런 걸 감안했다면, 좀 더 조심했어야 했어요. 그랬다면 ‘완장 찼다’는 등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겠죠.”

    ▼ 유 장관과 이 대통령 콤비를 떠올리며, 김 지사와 조 이사장을 짝지어 바라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김 지사와의 인연은 언제부터인가요.

    “워낙 정치에 관심이 없어 김 지사에 대해 무식하리만큼 몰랐어요. 2009년 경기공연영상위원회 일을 하면서 처음 알았고, 이후 단 둘이 만난 적은 딱 두 번입니다. 모두 보고를 위해 공관에서 만났는데, 두 번 다 밤 12시 넘어 겨우 만날 수 있었죠. 매우 피곤한 상태일 텐데도 형식적으로 보고를 받지 않고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체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도 워커홀릭이지만(웃음), 저보다 한 수 위였죠. 그런 점에서 저랑 상당히 많이 닮은 것 같다 생각했지요. 하지만 김 지사와 개인적으로 식사 한번 한 적이 없습니다.”

    김문수 지사? 좋은 점 많이 발견

    ▼ 김 지사는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만약 김 지사가 대권에 도전할 때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럴 생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특정 정당 지지자도 아니고, 별다른 정치색도 없습니다. 정책에 따라 한나라당을 지지할 수도, 민노당을 지지할 수도 있습니다. 성향으로만 본다면 진보에 가깝죠. 그동안 김문수 지사 선거 때 얼굴 한번 비춘 적이 없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김 지사에게서 좋은 점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2년 가까이 함께 일하면서 김 지사가 편중되지 않고 대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글쎄요, 이런 생각이 지속된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 ‘정치에 입문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습니다.

    “제가 문화의전당 이사장에 취임하니 언론에서는 유인촌, 최종원 선배와 비교합니다. 대놓고 ‘김문수 지사가 대통령이 돼 문화부 장관을 해달라고 요청하면 어쩔 것이냐’고 묻기도 하죠. 제가 지금 그런 생각을 한다면 정말 미친 사람 아니겠습니까. 연예인이 무슨 단체의 장만 맡으면 다 정치적으로 해석합니다. 하지만 저는 정치를 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 영원한 배우일 뿐이죠. 지금 하는 모든 게 제가 배우로서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문화 기획·행정가로서 ‘참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싶은 욕심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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