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8

2010.10.18

탈북자 구심점 ‘포스트 황장엽’ 누구?

2만여 명 탈북자 이끌 카리스마 공백 … 당분간 ‘집단지도체제’ 이어질 듯

  • 신석호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kyle@donga.com

    입력2010-10-15 17: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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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자 구심점 ‘포스트 황장엽’ 누구?
    10월 10일 남한 탈북자 사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북한민주화위원장을 맡아온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사망하자 ‘포스트 황장엽’ 체제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 수가 이달 말이면 2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누가 황 전 비서의 역할을 하며 지도자로 부상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일단 황 전 비서의 ‘유일지도체제’가 저물고 당분간 다수의 ‘집단지도체제’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황 전 비서는 북한에서의 직책과 연령(87세) 면에서 다른 탈북자들을 압도했다. 따라서 그는 자연스럽게 탈북자 사회의 지도자이자 북한민주화운동의 지휘부 역할을 했다. 그러나 현재 그의 위치를 대신할 만큼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없다. 때문에 다수의 탈북자가 지도그룹을 형성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홍순경·김성민·안찬일 씨 등 거론

    지도그룹 인사의 면면은 분야별로 다양하다. 우선 직책상 가장 우위에 있는 인물은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상임부위원장 겸 탈북자동지회장이다. 그는 북한민주화위원장이던 황 전 비서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했다. 그는 이번 장례식 초반 황 전 비서의 유일한 가족인 수양딸 김숙향 씨를 도와 중요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구성된 ‘10인 위원회’ 멤버였다. 14일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황 전 비서의 하관식에 앞서 고인의 약력을 보고한 사람도 바로 그다. 다만 온화한 성품으로 참모형이기 때문에 황 전 비서가 가졌던 카리스마형 지도자로 나서지는 않으리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홍 부위원장의 후배 가운데는 나름대로 카리스마를 가진 쟁쟁한 실력자가 많다. 먼저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가 있다. 황 전 비서의 최측근으로 대북 단파 라디오 방송을 통해 북한 민주화운동을 벌이는 그는 각종 대북 정보 수집 네트워크도 갖추고 있다. 또한 인민군 대위 출신으로 올해 발족한 북한인민해방전선(북민전)의 대표도 맡고 있다. 이 모임은 북한 민주화를 위한 무장투쟁을 목적으로 북한의 정권수립 기념일인 9월 9일 출범했다. 그는 “모든 엘리트가 가진 것을 내놓고 김정일 세습 반대 투쟁에 헌신하자”고 당부했다.



    1979년에 북한을 나와 ‘탈북자 출신 박사 1호’라는 타이틀을 가진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도 2008년 국가정보원을 나와 본격적으로 탈북자 규합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일찍 남한 사회에 정착해 후발 탈북자를 챙겨주는 형 같은 역할을 해 탈북자 사회에 발이 넓은데, 최근 국내외 해외를 아우르는 탈북자들의 연합체를 구상하고 있다. 그는 “북한의 개혁 개방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전 세계에 퍼져 있는 2000명 탈북자도 규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탈북자 구심점 ‘포스트 황장엽’ 누구?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상임부위원장 겸 탈북자동지회장.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왼쪽부터)

    이 밖에도 쟁쟁한 행동가가 많다. 강철환 북한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은 조선일보 기자로서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나는 등 국제적으로도 유명하다. 장철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노동당 통일전선부 출신인 이력을 살려 북한 민주화를 위한 남한 내 ‘선전선동’에 앞장서고 있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정부의 만류에도 대북 전단 발송을 통한 심리전을 벌이고 있다.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도 지식인을 규합해 북한 내부 정보 수집과 연구 활동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탈북자 구심점 ‘포스트 황장엽’ 누구?

    10월 11일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에 차려진 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빈소에서 김성민 장례위원회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장례 절차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고영환 통일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안혁 북한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 허광일 통일을준비하는탈북자협회 회장 등도 지도자 그룹에 꼽힌다.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소장, 현성일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등은 학계에서 선후배 행동가를 뒷받침하고 있다.

    함께 탈북한 김덕홍 씨는 조문도 안 해

    한편 황 전 비서와 함께 탈북해 귀순한 김덕홍(72) 전 탈북자동지회장은 고령인 데다 2001년 미국 방문을 둘러싼 이견으로 황 전 비서와 사이가 나빠진 뒤 탈북자단체 활동에 크게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9년 5월 한 세미나에서 “황 전 비서가 아직도 주체사상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그는 황 전 비서의 상가에 조화를 보냈지만 직접 조문을 오지는 않았다.

    ‘건강한 죽음’ 황장엽의 건강유지 비법

    점심 한 끼만 제대로 식사 … 매일 아침 2시간씩 반신욕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북한민주화위원장)가 10월 10일 오전 반신욕을 하던 중 심장마비로 숨졌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가 얼마나 건강 유지를 위해 노력했는지를 보여준다. 올해 87세인 그는 사망하기 직전까지 약간 귀가 어두운 것을 제외하고는 생각과 움직임에 전혀 불편이 없을 만큼 건강을 유지했다.

    기자는 2009년 7월 21일 황 전 비서를 처음 독대한 이후 그가 사망하기 9일 전인 10월 1일까지 모두 10차례 대면했다. 마지막 만났을 때까지도 황 전 비서는 보청기를 낀 채로 한 시간가량 대화를 나누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 좀 일찍 잠들기까지 다양한 회의와 공부모임, 국내 출장 등 빡빡한 일정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비결은 식사량 조절과 운동이었던 것 같다.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식당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하루에 딱 한 끼만 제대로 된 식사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특히 덜 구운 두꺼운 스테이크를 즐긴다고 측근들이 전했는데, 실제로 그날도 피가 선한 쇠고기 스테이크를 한 점도 남기지 않았다.

    황 전 비서는 대신 아침과 저녁을 거의 먹지 않는다고 했다. 식혜나 수정과 같은 당분이 높은 유동식을 먹는 것으로 대신한다고. 한 측근은 “1997년 귀순 직후에는 오리고기 등을 하루에 두 번 들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황 전 비서는 나이가 들수록 식사 횟수를 줄이고, 매일 아침 2시간씩 거르지 않고 반신욕을 했다.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정신적인 요인도 있는 것 같다. 북한 민주화운동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목표의식이 바로 그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그의 대외활동을 제약했을 때인 2007년 북한대학원대학교(옛 경남대 북한대학원)에서 만났는데 매우 피곤하고 일에 의욕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활동의 자유가 주어지자 삶의 의욕이 더 강해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측근들의 한결같은 전언이다.

    특히 10월 1일 그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이전보다 더 화색이 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측근들은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북한 후계체제의 공식화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을 조심스럽게 내놓기도 한다. 방향은 두 갈래다. 하나는 북한이 3대 세습을 공식화한 것에 대한 분노와 북한 내부의 복잡한 상황이 정신적 부담을 줬을 것이라는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북한 내부의 불안으로 민주화의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심장에 무리를 줬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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