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8

2010.10.18

면접관 커밍아웃

본격적인 채용 시즌 각 기업 인사담당자가 사람 평가하는 법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입력2010-10-15 16: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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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접관 커밍아웃
    입이라도 맞춘 듯 비슷했다. 10, 11월 대규모 신입공채와 경력직 채용을 준비하는 기업 인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면접위원의 애환과 고민에 대한 ‘솔직 토크’를 요청한 뒤 돌아온 인터뷰 거부의 변(辯).

    “민감한 채용 시즌인 데다 자칫 (보도로 인해) 취업 준비생들의 오해를 사면 끝장이거든요. 인사는 기업의 비밀스러운 부분이기도 하고요.”

    기자는 10월 8~13일 국내 대기업, 중견기업, 금융업계 각 분야 인사담당자 26명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 면접 정보가 공개되고, 취업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거꾸로 면접 후기가 올라오는 상황에서 면접관들은 2010년 취업시즌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26명 중 인터뷰에 응한 12명의 인사담당자(혹은 면접관) 역시 “민감하다”며 익명을 재차 요구했다. 일부 인사담당자는 “회사에서 말하기 곤란하다”며 퇴근 후 집 근처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만큼 면접은 회사나 면접관들에게 민감한 주제였다.

    10월 8일 서울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대뜸 케이블TV 얘기부터 꺼냈다.



    “심사자를 심사하는 더러운 세상”

    “윤종신 씨가 한 케이블 방송에서 ‘심사는 심사일 뿐 심사하지 말자’라며 너스레를 떨었죠? 요즘은 정말 심사를 심사하는 세상이 됐어요. 평가자가 갑(甲)이던 시절은 옛이야기죠. 코미디를 인용하면 ‘심사자를 심사하는 더러운 세상’이죠.”

    가수 윤종신은 10월 1일 방송된 Mnet의 ‘슈퍼스타K 2’에서 “도전자들의 심사를 놓고 네티즌 사이에서 말이 많은데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다. 심사는 심사일 뿐 (심사를) 심사하지 말자”라고 말했다. ‘슈퍼스타K 2’는 시청자 문자투표와 심사위원 평가 등을 합산해 최저점을 받은 도전자를 떨어뜨리는 방식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신입, 경력 지원자도 면접이 끝나면 유명 취업 카페에 면접 후기를 올려요. 인사담당자는 신경이 곤두서죠. 유능한 예비인재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거든요. 회사에 대한 인식과 면접 트렌드를 살피다가 루머가 올라오면 즉각 대응해야 합니다. 면접관의 신상이나 인상착의를 콕 집어 비난하는 ‘뒷담화’도 심심찮게 올라와요.”

    그는 요즘은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면접 직후에 바로 관련 정보가 다음 면접자에게 전달돼 평가가 한층 어려워졌다고 하소연했다.

    “순발력과 임기응변 능력 등을 살펴봐야 하는데 이미 면접 정보가 새나가 이 점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적이 많아요. 당시 면접자들이 합격해 입사한 뒤 이 사실을 알게 됐죠.”

    실제 한 기업은 면접 질문 중에 갈등관리 능력을 테스트하려고 ‘늦게 일어나 지각하는 상황’을 설정했지만 정보가 새나가 결국 이 질문을 취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면접 방법을 개발하게 되고 면접자를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됐다며 순기능을 얘기하는 인사담당자도 꽤 있었다.

    “회사 들어선 순간부터 면접 시작돼죠”

    면접관 커밍아웃

    본격적인 취업시즌이다. 집단토론면접, 개별면접, 외국어 테스트, 인적성검사 등이 실시되는 1차 면접을 기다리고 있는 입사지원자들.

    누구에게나 ‘비호감’ 캐릭터는 있게 마련. 면접관도 마찬가지다. 면접관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비호감 1호는 면접 시간에 지각하는 지원자. 면접까지 간다고 해도 이유 불문하고 탈락이다. 면접 때 청바지를 입거나 짙은 매니큐어를 바르거나, 망사 스타킹을 신은 경우도 좋게 보지 않는다. 지나치게 연봉이나 복리후생에 관심을 보이는 면접자도 ‘자세 불량’ 평가를 내린다. 한 중견기업 간부의 말이다.

    “자세 불량이라고 좋게 말하지만 우리는 ‘되바라졌다’라고 얘기한다. 입사하겠다는 지원자가 벌써 합격한 것처럼 행동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생각해보라. 집에 사람을 들이는데, 예비 며느리나 사위가 ‘결혼하면 뭘 해줄 거냐’고부터 묻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면접장소나 대기실에서의 행동도 눈여겨본다. 대부분 면접장소와 대기실은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거나 대형 유리창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다리를 떨거나 긁는 지원자, 거만하게 의자에 몸을 기대거나 화장을 고치는 지원자는 ‘인성 의심’으로 간주해 좋은 평가를 하지 않는다. 한 금융업계 임원은 이렇게 설명한다.

    “회사에 들어서는 순간 면접이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면접을 진행하는 대리, 과장급 직원이 대기실에서의 지원자들 행동을 알려준다. 면접 대기실이 덥다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고 손부채질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차분히 땀을 식히고 회사에 들어오거나 대기실이 더워도 평가장인 만큼 참는 게 좋다.”

    이 밖에 성의가 없거나 지나치게 잘 보이려고 하는 태도도 비호감이긴 마찬가지. 한 건설업체 전직 인사담당 임원의 경험담이다.

    “학교 졸업 후 공백기간에 한 일을 물어보면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병간호했다’고 말하거나, 경력자에게 이직 사유를 물어보면 ‘스카우트 당했다’고 말하는 지원자가 많다. 우리(면접관)는 ‘거짓말’이라고 본다. 신뢰가 떨어진다.”

    하지만 입사 후 ‘면접 선수’임을 알고 인상을 찡그리는 면접관도 꽤 있다는 게 인사담당자들의 귀띔이다. 가끔은 자기가 탈락한 이유를 알려달라며 노동부에 민원을 제기해 인사담당자가 이에 대한 해명서류를 작성하는 일도 있다.

    또 공무원이나 회사 특수관계인이 입사 청탁을 하는 경우도 있다. 능력 순으로 뽑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만 없는 게 현실이다.

    “은행권에서는 금융감독원 직원의 인사 청탁이 종종 있다. ‘완전 을(乙)’인 은행 업계로서는 난감하다. 청탁이 들어오면 사장과 부사장 정도에게만 알려주고, 1차 실무면접에서 합격선에 들지 않더라도 2차 면접까지는 올려 보낸다. 면접 때는 청탁받은 지원자에게 질문 하나라도 더 한다. 집에 가서 괜한 소리를 할까봐.”

    그는 저축은행이 금융감독원 직원의 청탁을 받으면 ‘지원자가 바보 아니면 다 뽑는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건설업체는 수주심의위원의 청탁을 무시할 수 없다. 각종 재개발, 도시개발, 관급공사 수주를 심의하는 이들은 건설사의 주요 로비 대상이기도 하다.

    “공사 수주를 하려면 심의위원에게 잘 보여야 한다. 지난해 경기 파주 교하신도시 복합건물 입찰 심의에 참가했던 교수도 건설회사가 로비를 했다고 폭로하지 않았나. 심의위원에게 찍히면 입찰이 어려워져 로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 심의위원이 청탁하면 어쩔 수 있나. 청탁으로 입사한 직원이 능력이 없어 스스로 회사를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가끔은 국회에서도 청탁 전화가 오지만 유관 상임위 국회의원이 아니면 흘려듣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낙하산 청탁·신입사원 이직은 죽을 맛

    학교나 성적 대신 잠재능력으로 사원을 뽑는다고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1000명 이상 지원자가 몰리는 상황에서 서류를 다 챙겨볼 겨를도 없다는 게 상당수 인사담당자의 고백이다.

    “경쟁률이 100대 1이면 서류전형에서 10배수, 면접에서 5배수를 본다고 치고, 서류를 보는 데 3분이 든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서류전형에서만 3000분, 즉 50시간이 걸린다. 면적과 직무 PT 등을 다 합쳐 1인당 최소 면접시간이 30분이다. 500명을 본다고 치면 인사팀 직원은 죽어난다. 인터넷 정보를 참고해 짜깁기한 서류는 아예 보지도 않는다. 결국 서류전형에서 출신 대학 등을 점수화해 일정 수준 이하는 탈락시킨다.”

    예를 들어 서울대와 연·고대 출신은 A등급, 서울 소재 중위권 대학과 일부 지방국립대는 B등급, 서울 소재 하위권 대학과 다수의 지방국립대는 C등급, 기타는 D등급으로 점수를 매기는 식이다. 한 물류 대기업 인사담당자도 비슷한 말을 한다.

    “요즘 지원자는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며 준비가 철저하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면접 정보도 공유하고, 그에 따른 모범답안도 준비한다. 변별력을 두기 위해 고민하지만 면접 방식과 질문에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감(感)에 의존한다.”

    그렇다고 스펙이 전부는 아니다. SK텔레콤 인력팀 김성탄 매니저의 말이다.

    “뽑고자 하는 사람은 일 잘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구직자들은 스펙이 좋다는 점을 어필하려고 한다. 우리 회사의 경우 채용 과정에서 지식이 아닌 역량을 보기 위해 다양한 과제를 준다. 필기시험도 문제해결 능력을 테스트한다. 서류전형에서도 학교나 나이 등은 안 보고 자기소개서를 본다.”

    가끔은 면접관들도 착각에 빠져 채용부서 직원과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 부장은 이렇게 고백한다.

    “아직까지 기업 면접관은 50, 60대 남자가 대부분이다. 여자 지원자가 싹싹하게 대답하면 평가보다는 단순한 호기심이 발동한다. 3, 4명이 집단 면접을 할 때도 유독 여자 지원자에게 질문을 많이 한다. 여자 지원자가 많으면 면접 시간도 길어진다. 그때는 인사담당자들이 면접관에게 주의를 주기도 한다.”

    문제는 남녀 지원자를 섞어 집단 면접을 보면 대부분 여자 지원자가 뽑힌다는 데 있다. 4명 모두가 잘하는 조에선 2, 3명을 뽑아도 되지만, 면접관들은 각 토론집단에서 1명씩 뽑으려는 일종의 강박관념 때문에 굳이 1명에게 높은 점수를 준다. 그 1명은 대부분 여자. 그래서 한 기업은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집단 면접을 보도록 했다.

    실컷 뽑아놓았지만 입사 이후 곧바로 회사를 떠나는 것도 걱정이다.

    “연봉 3000만 원인 신입사원이 6개월 만에 퇴직하면 급여 1500만 원, 복리후생 등 기타 비용 약 1500만 원이 든다. 채용비용 등을 따져보면 약 4000만 원이 날아가는 셈이다. 신입사원이 1년 이내 퇴직하면 회사 기여도는 제로에 가깝다. 보통 입사 후 3년 이내 이직률이 20% 이하면 선방했다고 보지만 그 이상이 되면 인사담당자가 사장실로 불려간다.”

    그래도 채용 과정에는 여러 사람이 참여하기 때문에 인사담당자만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대다수 기업이 신입사원을 따로 관리하고 후견인 제도를 실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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