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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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하얀 도화지 같은 음식, 피자

만드는 사람 수만큼 다양하게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17-04-25 13:4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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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의 작은 호텔 주방에서 실습생으로 일할 때였다. 연회를 치르고 난 뒤라 나를 포함해 겨우 5명이던 주방 식구는 모두 녹초가 돼 있었다. 주방장은 오늘 저녁은 ‘피자’라고 모두에게 통보했다.

    내겐 곧 피자 마르게리타(Pizza Margherita) 한 판이 주어졌다. 도우에 토마토소스를 얇게 펴 바르고 그 위에 모차렐라 치즈, 바질 몇 잎을 올린 뒤 올리브오일을 둘러 구운 심플한 피자지만 각자 한 판씩 먹는다는 게 놀라웠다. 그전까지 나에게 피자는 ‘둘러앉아 조각조각 나눠 먹는 음식’이었는데….

    내 인생의 첫 피자는 크고 두껍고 토핑이 풍성한 미국식 피자였다. 불고기나 돼지갈비처럼 온 가족이 즐기는 특별한 외식 메뉴였다. 1985년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미국식 피자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롭게 변신하고 있다.

    육류와 해산물, 채소와 치즈, 다양한 소스를 조합해 언제나 새로운 맛을 선보인다. 피자 도우 안에 치즈나 퓌레를 넣는 기술도 날로 발전하고 있다.

    게다가 어느 곳에서도 주문이 가능하며 스파게티, 샐러드, 튀김 요리 등이 포함된 세트 메뉴까지 다양하다. 피자의 고향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우리에게 피자를 전파한 미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음식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토록 다양한 원형 음식의 시작은 이탈리아 나폴리 지역에서 납작하게 빚어 구워 먹던 빵이라고 전해진다. 푹신푹신한 맛이 좋은 포카치아나 여러 재료를 타코처럼 올려 먹는 피아디나가 피자로 가지를 죽 뻗어나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피자의 모습은 피자 마르게리타가 시작이다. 토마토, 모차렐라 치즈, 바질,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을 도우에 올려 구운 것이다.

    피자 마르게리타로 인해 피자는 도우와 토핑의 조합이라는 형식이 정해지면서 이탈리아 각 지역의 색을 띤 다양한 피자가 등장했다.

    북부에서는 여러 종류의 치즈와 발효 햄, 바닷가 지역에서는 당연히 해산물, 내륙에서는 아티초크나 버섯처럼 풍미가 좋은 채소와 소시지 종류를 올려 셀 수 없이 다양한 피자를 만들어냈다.

    피자 모양도 반으로 접은 것, 길쭉한 것, 칼집을 내 별 모양으로 만든 것, 돌돌 말아 구운 것 등으로 변화가 생겼다. 피자를 크게 구워 조각조각 잘라 파는 것은 로마에서 시작됐다. 피자의 발상지로 알려진 나폴리에서는 피자의 원형을 지키고자 협회까지 만들었다.

    베라피차나폴리타나(Vera Pizza Napoletana)협회가 규정한 피자의 요건은 다음과 같다. 밀가루, 천연 효모, 소금, 물만 넣은 도우는 반드시 손으로 반죽하고 성형해야 한다. 도우 두께는 3mm가 넘어선 안 되며 나무 장작을 때는 화덕에 넣어 약 480도 온도에서 1분~1분 30초간 재빠르게 구워 낸다.

    이렇게 만든 피자는 부드럽고, 탄력 있고, 연하고, 향긋하다. 이 밖에도 오리지널 나폴리식 피자에는 캄파니아 지역의 물소 젖으로 만든 모차렐라 치즈와 베수비오 산자락에서 자란 산 마르차노 토마토가 들어가야 제맛이라고도 한다. 원조가 무엇이든 밀가루로 빚은 원형 반죽 위에는 누구나 원하는 맛을 올릴 수 있다. 흰 도화지처럼 비어 있는 반죽 한 장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의 창조를 끌어안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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