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6

2010.07.19

피랍 악몽 드림호, 방치가 해결책?

소말리아 해적에 끌려간 지 벌써 100일… 정부는 비밀주의 고수, 선박회사는 침묵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김미향 인턴기자 서울대 종교학과 4학년

    입력2010-07-19 1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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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랍 악몽 드림호, 방치가 해결책?

    1 32만 t급 원유 운반선 삼호해운 드림호가 피랍되자 4월 5일 외교통상부 재외국민보호과 직원들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2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 드림호. 사진은 삼호그룹이 2008년에 배포한 회사 소개자료(영문판)에 실린 것이다.

    긴장감이 엄습했다. 선원 모두 바쁘게 움직였다. 배의 속도를 대폭 올리고 창문마다 검정 비닐을 씌웠다. 불빛이 새나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작은 배로 움직이는 해적은 불빛만 보면 쫓아온다. 갑판으로 통하는 문도 다 폐쇄했다. 행여 해적이 접근해도 배에 올라타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다. 하루 전부터 당직을 서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회사로부터 소말리아 부근에서 소형선 2척이 출발했으니 철저히 대비하라는 메일이 왔다. 불안하지만 그 불안감조차 감내해야 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마침 레이더에 소형 선박 2척이 잡혔다. 움직임이 없다. 우리 배가 비켜가자, 가만히 서 있던 선박 2척이 우리 배 선미 쪽으로 달라붙었다. 전원 비상이 걸렸다. 자세히 보니 조그만 고무보트에 사람이 바글바글 타고 있다. 다행히 우리 배의 항해 속도가 빠른 편이라 뒤따라온 선박 2척을 따돌릴 수 있었다.

    지난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자동차 운반선을 타며 인도양 아덴만을 항해했던 최원석(25) 씨는 아덴만을 통과하던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간담이 서늘하다. 이 지역에 해적이 자주 출몰한다는 사실을 평소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 현장에서 느끼는 불안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삼호해운의 드림호가 올해 4월 4일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됐다. 그 후 100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드림호는 차츰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갔다. 2006년 4월 4일 동원호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뒤 100일이 지나는 동안 월드컵, 지방선거 등 굵직굵직한 일을 겪으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것과 놀랄 만큼 흡사하다.

    선원들 안부 알리며 돈 요구 계속



    과연 피랍된 드림호와 선원들은 어떻게 됐을까. 주부 박순주(54) 씨는 “4월에 우리나라 배가 피랍됐다는 뉴스를 보고 그 후 소식이 궁금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관련 뉴스가 나오지 않았다. 협상에 불리하다고는 하지만, 소식을 알 수 없으니 이대로 선원들이 잊히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삼호 드림호를 탔던 기관사 실습생 A씨는 5개월 동안 드림호에서 동고동락한 동료들 생각에 요즘 통 잠이 오질 않는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죠. 이게 진짜인가 싶기도 하고요.”

    몇 달만 더 타면 이제 내린다고 좋아했던 필리핀 선원들, 가족처럼 대해주던 기관장님, 식사를 맛있게 차려주던 조리장님까지 다정했던 얼굴이 차례로 눈앞에 스쳐지나갔다. A씨는 드림호 식구들이 하루라도 빨리 돌아오길 기다리는 마음뿐이다.

    “근무할 때 매번 해적 당직도 서며 철저히 대비를 했고, 또 해적의 작은 배에 비하면 드림호는 엄청나게 덩치가 큰 유조선이기 때문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죠.”

    피랍 당시만 해도 쉽게 구조될 것으로 보였다. 청해부대 3진 충무공 이순신함이 드림호의 선원을 구출하겠다며 재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순신함은 드림호가 소말리아 영해로 들어간 후, 전혀 손을 쓰지 못한 채 5월 20일 귀국했다. 7월 9일 해적 소탕을 위해 청해부대 5진 왕건함이 출항했지만 해군은 “왕건함은 상선 호송 보호가 목적이며 피랍선박과 관련 없다”며 선을 그었다.

    피랍 악몽 드림호, 방치가 해결책?

    2006년 당시 소말리아에서 납치됐던 동원호 최성식 선장이 석방된 후, 김해공항으로 귀국해 공항을 빠져나가고 있다.

    현재 드림호 선원들의 석방 문제는 장기화될 조짐이다. 100일이 지났지만 구체적인 협상 소식이나 선원들의 행방 관련 소식은 전해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해적은 인질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서 금액을 맞춰 협상한다. 인질을 손상시키면 돈을 못 받기 때문에 무리해서 손해 볼 행동은 하지 않는다. 며칠에 한 번씩 선원의 안부를 알리며 돈을 요구한다. 한국해양대 항해학부 공길영 교수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면서도 “시간을 끌다 양쪽 모두 탈진 상태가 되고 협상금액도 낮아지면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 해적도 인질 유지비용이 들기 때문에 장기간 잡아두는 게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호해운 측도 협상내용엔 함구

    드림호 피랍이 장기화될 위험에 처했지만 정부와 해당 선박회사의 석방 활동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삼호해운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협상진행여부에 대해선) 모른다. 대답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다만 전국선박관리선원노조를 통해 선원들의 안부를 일부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전국선박관리선원노조 박영삼 부장은 “(선원들의) 건강은 괜찮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회사 측을 믿고 기다리던 가족들도 시간이 상당히 흐르면서 (감정이) 요동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실제 피랍사고가 장기화 될수록 가족과 인질만 괴로울 따름이다. 이는 선박회사 대부분이 납치 사태에 대비해 보험을 들어놓는 탓에 피랍사고가 벌어져도 가족의 압력은 받겠지만 큰 영업 손실은 없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국익을 위해 조용한 해결을 도모한다며 이 사건이 다시 이슈화되는 데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외교통상부 이지윤 공보관은 “협상의 주체는 정부가 아니다. 정부도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협상에 불리함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는다”며 말을 아꼈다. 전국원양산업노조 최규종 사무본부장은 “소말리아 해적이 국제적으로 자료를 수집하는 영국 회사를 통해 한국의 여론 추이를 주시하는 걸로 안다. 자칫하면 해적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 이 문제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가 ‘협상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비밀주의를 고수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공길영 교수는 “최대한 협상비용을 낮추기 위해 잠잠했으면 하겠지만, 선원들의 인권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시민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동원호의 경우도 외교통상부와 회사가 “기다려달라”고 하며 침묵하는 사이 국민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당시도 소말리아 해적에게 붙잡혀 괴로움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선원들의 모습이 국내에 전해진 건 피랍 3개월 후인 7월이 돼서였다. 분쟁지역 프리랜서 PD가 2박3일 동안 소말리아에서 생활하며 이들의 모습을 찍어왔고, 그것이 방송되고 나서야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 결국 선원들은 8월 9일에 귀국할 수 있었다.

    소말리아에 억류된 드림호의 선원들은 언제쯤 고국에 돌아올 수 있을까. 피랍사건이란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지속적인 관심이 요구된다. 최규종 사무본부장은 “동원호 때도 상당히 힘들었다. 같은 선상노동자로서 한시라도 빨리 이들이 석방되는 게 우리의 바람”이라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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