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6

2010.07.19

평범한 인간에 숨어 있는 살인 본능

마이클 윈터버텀 감독의 ‘킬러 인사이드 미’

  •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입력2010-07-19 15: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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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인간에 숨어 있는 살인 본능

    살인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살인의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의 영혼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을까. 영화 ‘킬러 인사이드 미’는 관객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 텍사스를 배경으로 한 ‘킬러 인사이드 미’는 1952년에 출간된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만큼 조금은 복고적이며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시작한다. 작은 마을에 불과한 그곳은 고유명사인 이름보다도 누구네 집 아들, 뭐 하는 집의 누구로 통성명되는 곳이다. 1980년대 경기도 화성 정도의 느낌이랄까. 뻔히 알 만한 집의 아들, 아버지 이름만 들어도 집안의 내력을 훤히 아는 가족과도 같은 이웃 말이다.

    그런데 간혹 이런 친밀감이 범죄의 은닉처가 돼주기도 한다. 보안관 루 포드(케이시 애플렉 분)는 명망 있는 의사 집안의 아들이다. 루의 배경은 그가 범죄를 저지를 리 없다는 알리바이로 작용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폭력에 대한 욕망이 사회적 질서를 구성하는 이름에 의해 조율되는 것은 아니다. 프로이트의 말을 빌리면, 보안관이자 누군가의 아들인 루는 상징적 질서를 존중한다. 문제는 마음 깊은 곳, 리비도의 영역에 있는 또 다른 자신에게 이 질서가 오히려 억압이 된다는 점이다.

    영화는 매우 건조하고 차분한 시선으로 범죄의 궤적을 따라간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스릴러 영화들을 살펴본다면 ‘킬러 인사이드 미’의 화법은 차분하다 못해 지나치게 냉정해 보인다. 냉정함은 과장이나 왜곡 없이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살인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영화는 눈을 바라보며 목을 부러뜨리고, 얼굴을 부수는 루의 행동을 어떤 감정적 연루 없이 차분히 담아낸다. 관객들은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을 무참히 훼손하는 루의 행동에 경악하지만, 한편으론 그 장면을 끝까지 지켜보는 카메라의 시선에 대해서도 놀라게 된다.

    그렇다면 루는 왜 살인을 거듭하는 것일까. 영화는 꽤나 선명한 심리적 트라우마의 흔적을 제시해준다. 루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여자를 통해 도착적 성행위를 경험하게 된다. 당시에는 권투나 때리기 놀이 정도로 알았던 것이 성적 즐거움이었음을 알아차리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은 수치와 모멸감으로 바뀐다. 기억은 단숨에 시간을 거슬러 다섯 살 유아를 성폭행하던 자신에게로 간다. 루는 이를 목격했던 형을 살해한다. 형의 존재 자체가 자신의 범죄와 비뚤어진 욕망을 비춰주는 거울이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살인의 이유도 유사하다. 루는 욕망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정부를 죽이고, 이 사실을 모면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연쇄적으로 죽인다. 그의 정서적, 정신적 공간 안에서만큼은 모든 살인에 충분한 이유가 있다. 중요한 것은 원작 소설이나 영화 모두 바로 살인자의 시선에서 그려졌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살인의 이유로 제시하는 유년기의 충격적 경험 역시 화자의 거짓 알리바이일 수 있다. 어차피 우리는 살인자를 통해서만 정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킬러 인사이드 미’는 그런 점에서 살인자가 제시하는 살인의 인과관계를 추적하는 매우 지적이며 냉정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살인을 다룬 스릴러 영화들이 높은 비등점을 지닌 뜨거운 작품인 데 비해 ‘킬러 인사이드 미’는 조용하고 심지어 적적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킬러 인사이드 미’의 폭력적 세계 역시 지금은 고전적이지 않나 싶다. 적어도 루는 어린 시절 충격 때문에 연쇄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하지만, 지금 이곳의 현실에서는 아무런 이유도 감정도 없이 저질러지는 폭력이 많다. “세상엔 불가사의한 일이 많다지만, 살인에는 이유가 있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하지만 과연 살인에 변명 가능한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것일까. 살인자의, 살인자에 의한, 살인자 영화가 바로 ‘킬러 인사이드 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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