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6

2010.07.19

학교 모르게 활동하는 학생 단체

‘아수나로’ 적극 회원은 60여 명…학생인권 조례 제정 등 튀는 행동

  • 이설 기자 snow@donga.com 송인광 인턴기자 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입력2010-07-19 1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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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모르게 활동하는 학생 단체

    지난 7월 9일 서울 태평로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열린 일제고사 반대 집회.

    7월 1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취임식. ‘양복 군단’ 사이로 노랗고 파란 원색 피켓이 하나 둘 등장했다. ‘일제고사 X’ ‘교원평가 X’ ‘무상급식 O’.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 이명박 대통령을 대신해 축사를 읽을 때는 피켓 내용이 이렇게 바뀌었다. ‘지켜보고 있다.’ 학생 대표의 축사 시간이 되자 피켓을 든 청소년 무리 가운데 한 명이 연단에 올랐다. 그는 “일제고사라 불리는 시험 때문에 국가는 학교에, 학교는 교사에게, 교사는 학생에게 압력을 줍니다. 일제고사를 없애주세요”라고 말했다. 이들 청소년은 학생인권 운동단체를 표방한 ‘아수나로’ 회원이었다.

    곽노현 교육감 등 진보교육감이 대거 취임하면서 중·고교생 회원을 중심으로 한 아수나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수나로는 지난해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조례 기획단으로 참여했고, 두발 자유·체벌 폐지 등의 내용을 담은 청소년 500명의 집단 민원을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에 제출한 단체.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가 학생 인권을 침해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학생인권 조례를 위한 서울본부 발족식에 참여했고, 학업성취도·교원평가 반대 집회를 열었다.

    학교 중퇴했거나 대안학교 학생이 주도

    아수나로는 2004년 청소년 몇 명이 모여 만든 ‘청소년인권연구포럼’에서 출발했다. 2006년부터 ‘청소년과 비(非)청소년이 함께 하는 청소년 인권운동단체’를 모토로 본격 행동에 나섰다. 대부분 중·고교생인 온라인 회원은 6800여 명, 단체를 이끌면서 오프라인에서 적극 활동하는 회원은 60여 명이다.

    “‘따이루’, 안녕!” “‘레쓰’는 어딨어?”



    7월 7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이날 열린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발족식 · 토론회’에는 아수나로를 비롯해 인권운동사랑방, 전교조 서울지역본부, 학벌 없는 사회 등 33여 개 교육인권 단체가 참석했다. 아수나로에서는 고교생 때부터 활동한 공현(23) 씨 등 10여 명이 참석했다. 왼쪽 뒤편에 모여 앉은 회원들은 서로의 인터넷 카페에서 사용하는 닉네임을 부르며 인사를 나눴다. 이들은 행사 내내 생기가 넘쳤고, 공교육 및 두발 규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발언이 나오자 박수를 치며 맞장구쳤다.

    하지만 적극 참여하는 회원 대부분이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촛불집회에 참석했고, 보수 신문과의 인터뷰를 거절하는 등 ‘정치적 행동’은 이미 좌파 시민단체와 궤를 같이했다.

    “어제부터 보수 언론과는 인터뷰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어요. 촛불집회 때부터 발언을 확대해서 제목을 뽑는 등 마음에 들지 않은 전례가 있었거든요.”

    기자가 ‘주간동아’ 명함을 내밀자 회원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한 회원이 취재에 응하자 다른 회원이 다가와 귀엣말로 취재 거부 방침을 전했다. 하지만 서울문화고 강모(17) 양은 이에 아랑곳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중학교 3학년 때 나간 광우병 촛불시위를 시작으로 학교 밖 일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아수나로는 ‘두발 자유’ 관련 정보를 찾다가 알게 됐고요.”

    교복 차림에 책가방을 든 강양은 기말시험을 마친 뒤 곧장 이곳으로 달려왔을 만큼 아수나로에 대한 애정이 커 보였다.

    “위염에 걸리면서까지 시험에 매달려야 하는 학교 분위기가 싫어요. 얼마 전에는 교내 커플들이 죄다 교무실로 불려갔어요. 그렇다고 문제를 제기하면 반항아가 되고. 억압적인 학교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일제고사 때는 현장학습을 갈지 고민 중이에요.”

    그렇다면 아수나로를 이끄는 핵심은 누구일까. 주간동아 취재 결과 ‘적극 참여 회원’중에는 학교를 다니지 않거나 대안학교에 다니는 청소년, 20대 기존 회원이 다수였다. 20대 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7명은 고교생 때부터 활동을 해 지금은 대학생이 된 ‘선배 회원’이었다.

    대부분 학부모들 우려의 시선

    학교 모르게 활동하는 학생 단체

    7월 13일 광화문 열린시민광장에서 열린 일제고사 반대 집회에 참가한 ‘아수나로’ 회원들.

    아수나로를 찾는 동기는 다양하지만 맥은 같다. 대부분 학교가 불편하거나, 제도교육 또는 교권에 문제의식을 가진 경험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하지만 부모와 학교의 시선을 의식해 아수나로는 ‘학교가 모르게 활동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오프라인 활동 안내서에는 ‘활동을 하다가 걸리면 보호해드리고자 노력을 하겠지만, 사전에 조심하는 편이 좋다’고 당부하고 있다.

    고교 1학년인 한 회원은 “활동을 한다고 소문이 나면 선생님들에게 찍힌다. 학교 앞에서 활동하다 쫓겨나는 일은 다반사”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지난 7월 9일 아수나로가 개최한 ‘일제고사 교원평가 경쟁교육 폐지’ 집회와 13일 전교조 서울지부가 연 ‘일제교사 반대 교육 주최 결의대회’ 참석자들은 대부분 공교육과는 거리를 둔 경우가 많았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전교조 배후설’ 등에는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았지만, 활동을 통해 우군(友軍)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활동을 하다 보면 인권단체, 전교조 측과 친분이 생기는 건 맞다. 하지만 활동을 지시하지는 않는다.”(20대 여성 회원)

    “사무실이 없어 지부별로 인권단체 등 시민단체 사무실에서 모임을 연다. 그러다 보니 인권 공부를 하기도 한다. 일제고사에 대한 반대 의견은 같지만 교원평가는 전교조와 입장 차이가 있다.”(20대 남성 회원)

    그러나 학부모들은 이 모임의 활동에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청소년들이 자칫 분위기에 편승해 반사회적인 길로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20대 회원들은 부모님에게서 종종 면담 신청을 받는다고 털어놓았다. 한 회원은 “자녀가 비주류의 길로 빠지는 것을 걱정하는 부모들이 아수나로에 대해 문의하거나 하소연을 한다”고 말했다. 실제 7월 9일 행사에서도 한 40대 남성이 학생들을 향해 “4대강(반대 투쟁)은 안 하느냐”며 묻기도 했다.

    이날 행사를 지켜보는 시민 중에 “당당하게 의견을 밝히니 기특하다”는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우려스러운 표정이었다. 이들의 자유발언을 지켜보던 한 60대 남성은 “경쟁이 없는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고 했고, 40대 직장인은 “공부하기 싫어서 성취도평가를 거부하는 것 아니냐. 시험이 싫으면 혼자 안 보면 되지 비 오는 날 저렇게…”라고 말끝을 흐렸다.

    아수나로라는 단체명은 무라카미 류의 소설 ‘엑소더스’에서 따왔다. 소설에서 청소년 조직 아수나로는 그들만의 대안 자치국가를 세운다. 이들도 비슷한 꿈을 꾼다. 청소년들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권리 주장의 목소리는 컸지만 학생으로서의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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