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6

2010.07.19

‘줄세우기’ vs ‘자극제’ 우왕좌왕 학업성취도 평가

진보-보수 첨예한 이념대결…평가 거부 진보교육감 어떻게 징계?

  • 이설 기자 snow@donga.com 김미향 인턴기자 서울대 종교학과 4학년

    입력2010-07-19 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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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세우기’ vs ‘자극제’ 우왕좌왕 학업성취도 평가

    학업성취도 관련 찬·반 집회들. 학업성취도평가제는 이념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교육 이슈다.

    7월 13, 14일 2010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가 치러졌다. 세 번째 시험이다. 이번 시험을 앞두고 보수·진보 간 신경전은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시·도교육청에 철저한 시험관리를 당부했지만, 일부 진보교육감이 이를 거부했기 때문. 시험 당일 학교 현장에서도 크고 작은 해프닝이 끊이지 않았다.

    #시험 전-공문 세례에 학교 현장 어수선

    강원지역 학교들은 학업성취도평가 일주일 전부터 긴장하기 시작했다. 전교조 지부장 출신인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이 지난 7월 6일 ‘평가 미응시 학생을 위한 대체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라’는 공문을 각 학교에 보냈기 때문. 이에 당혹한 교과부는 강원도교육청에 관계자를 급파했지만, 결국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시험일을 맞이했다.

    학업성취도평가 전날 진보교육감 당선지역 학교들은 때아닌 공문세례에 혼이 빠졌다. 전북지역 학교들은 시험 전날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에게서 “학생에게 평가 선택권을 줘야 한다”는 e메일을 받았다. 같은 날 교과부로부터 온 공문에는 ‘대체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면 초중등교육법 위반’이라는 취지의 글이 적혀 있었다. 이날 전주시내 학교에는 모두 7개의 공문이 내려왔다. 서울지역 학교의 사정도 비슷했다. 대체교육 프로그램과 결석 처리에 대한 교과부, 교육청의 상반된 지침으로 교사들은 지도에 어려움을 겪었다.

    #시험 당일-한 학교 60명 결시 해프닝



    평가 기간 분위기는 잠잠한 편이었다. 이틀간 시험에 응시하지 않은 학생은 전국 초·중·고교생 응시대상 190여만 명 가운데 모두 769명이었다. 첫날에는 436명이, 둘째 날에는 333명이 시험을 거부했다. 학교마다 일부 학생을 제외하곤 묵묵히 시험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아수나로’ 게시판에는 “전교에서 혼자 시험을 거부했는데, 선생님한테 혼나고 부모님한테 따로 연락을 취했다” “답안지에 ‘평가 거부’를 적었다”는 등의 후기가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13일 서울 영등포고등학교에서는 2개 반 학생이 무더기로 평가를 거부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이 사실은 다음 날 뒤늦게 알려졌다. 서울시교육청과 전교조에 따르면, 영등포고 2학년 2반 학생 전원은 1교시 시험을 보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옆 반인 3반까지 가세해 시험 거부학생 수가 늘어났다. 1교시에 모두 36명, 2교시에 59명, 2교시에 50명이 시험을 보지 않았다.

    이와 관련, 교사와 학생들은 교육청 감사에서 다른 해명을 내놓아 그 배경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학생들은 “교사가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고 지도했다”고 하지만, 교사들은 “학생들이 대체수업을 요구해 결정했다”고 말했다. 교과부와 전교조의 주장도 엇갈린다. 전교조는 사건의 원인을 시교육청에 돌렸다. 시험 전날 일선 학교에 미응시생을 위한 대체수업을 마련하라고 지시해놓고, 당일 교과부 지침대로 시험을 진행하라는 공문을 전달해 혼란을 일으켰다는 것. 전교조 엄민용 대변인은 “교과부 공문이 시험 시작 한 시간 전에 도착해 해당 교사는 지침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교과부 측은 “학생들 이야기에 따르면 사실상 교사들이 미응시를 조장한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겠다”고 맞받았다. 무더기로 평가에 결시한 두 반의 담임교사는 모두 전교조 소속이다.

    ‘줄세우기’ vs ‘자극제’ 우왕좌왕 학업성취도 평가
    #시험 후-결석·결과처리·교육감 징계 어떻게?

    시험이 끝난 뒤, 시험을 거부한 학생의 처리방식에 대한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교과부 훈령에 따르면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결석, 학교에 나온 뒤 수업에 빠지면 결과 처리된다. 결석과 결과에는 질병, 무단, 기타의 3가지 종류가 있다. 학업성취도평가제와 관련, 시험을 거부하거나 등교 후 대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 처리에 대한 교과부와 진보교육감들의 해석이 엇갈린다.

    진보교육감 당선 지역인 강원, 전북, 서울에서 시험을 치르지 않은 학생들은 ‘출석’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각 해당 교육청이 “출결 관리는 학교장 고유 권한이다. 이번 평가에서 대체 프로그램에 참석한 학생은 출석으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타 지역에서 등교 뒤 미응시한 학생들은 무단 결과로 처리된다.

    #학생·학부모는 태연, 교사는 부담, 교과부-교육감은 난리

    학업성취도평가는 이념 대결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치는 교육 이슈다. 그래서 매년 평가 때마다 논란이 되풀이된다. 정부와 교총은 교육정보 공개와 정부 지원 차원에서 성취도 전수평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전교조 등은 학교 서열화와 학교 간 경쟁에 따른 수업 파행을 이유로 반대한다. 2008년 평가를 거부한 전교조 소속 교사 7명이 파면·해임당하면서 이슈에 대한 논란은 더욱 격해졌다. 하지만 학교 현장의 교사, 학생, 학부모들은 정작 평가에 무덤덤했다.

    취재하면서 만난 학생 대부분은 평가제에 대해 부담이 없다는 반응이었다. 중·고등학생은 “대충 시험을 보고 잔다”는 이가 많았고, 초등학생은 “그래도 시험이니 진지하게 임한다”는 답변이 상당수였다. 다만 기말고사 이후 바로 평가를 보는 것이 귀찮고 답답한 듯했다.

    학교와 교사는 학생들에게 평가 준비를 독려하는 쪽이다. 서울 서문여고는 시험 며칠 전 “다른 학교와 성적이 비교되니 신경 써서 시험에 임해달라”는 방송을 했고, 서울 삼성초등학교의 한 학생은 “시험 전 학교에서 문제풀이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교사들도 어쩔 수 없는 부담을 인정했다. 광주시 금구초등학교 김형규(33) 교사는 “교장선생님이 학업 분위기 조성을 권한다. 시험을 의식해 요점 정리를 하는 등 수업이 딱딱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시험을 찬성하는 편이다. 고3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학교와 아이들은 귀찮을 수 있지만 시험은 필요하다고 본다. 시험이 있어야 긴장을 하고 공부하게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당산중학교 2학년에 다니는 아들을 둔 한 학부모는 “학교에서 평가를 대비해 관련 공부를 시키더라. 어쨌든 공부를 하게 되니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초중등교육법 제9조4항에 따르면 평가대상 기관의 장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평가에 응해야 한다. 교육감은 교과부 주도의 평가제를 거부할 권한이 없는 것이다. 이와 관련, 대체 프로그램을 마련한 교육감에 대한 징계 처리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간 교과부는 “모든 대체 프로그램 운영은 위법”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교과부는 평가 거부를 유도한 교사에 대한 징계를 하지 않는 시·도교육감에 대해 직무이행 명령을 내리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형사고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시국선언 교사를 징계하지 않아 교과부로부터 고발당한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지난해 말 학업성취도평가를 거부한 교사에게 경징계 결정을 내린 바 있다.

    Tips

    학업성취도평가제

    초·중·고교생이 국가가 제공한 교육과정을 얼마나 잘 따라오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시험. 초6, 중3, 고2가 응시 대상이다. 원래 평가 대상 학년의 3~5%만 보는 표집 평가였으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부터 전수 평가로 바뀌었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측정하기 위한 평가를 실시할 수 있다’는 초·중등교육법 제9조1항을 근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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