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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味食生活

맛없는 ‘청매’만 기억하는 세상

매실

맛없는 ‘청매’만 기억하는 세상

맛없는 ‘청매’만 기억하는 세상

청매를 시장에 내느라, 익으면서 붉은색이 생기는 품종의 매실까지 덜 여문 상태에서 팔고 있다.

매년 5~6월이면 시장에 매실이 지천으로 깔린다. 그런데 오직 청매만 있다. 또 소비자들은 청매가 맛있고 영양가가 더 있는 것으로 안다. 의식 있는 매실 생산자들은 청매만 찾는 이 요상한 풍토에 의구심과 걱정의 눈빛을 보낸다. 청매보다는 황매, 즉 다 익은 매실이 향도 좋고 구연산 등의 함량도 높기 때문이다.

매실이 일상적인 과일이 된 것은 2000년 방송된 TV 드라마 ‘동의보감’의 영향이 컸다. 이 드라마에서 허준은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백성을 매실로 고친다. 내용은 허구였지만, 덕분에 우리 국민은 매실을 만병통치약 정도로 여기게 됐다.

사실 매실은 우리 일상과 크게 거리가 있는 과일이었다. 자생하는 매화나무가 많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우리 땅에 매화나무를 본격적으로 심은 것은 1970년대 이후부터. 당시 정부에서 농촌에 유실수를 심는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였는데, 그 안에 매화나무도 있었다. 이때 일본에서 매실이 많이 달리는 품종을 들여와 널리 보급했으며, 경남 하동과 전남 광양에 집중적으로 심었다. 이 남녘의 매화나무에서 결실을 볼 즈음 드라마 ‘동의보감’이 터졌고, 매실도 터졌다. 그런데 청매만 터졌다.

일본은 매화나무가 잘 자라는 환경인 데다 매실도 크고 많이 열리는 편이다. 그래선지 일본인에게 우메보시(매실 절임)는 그들의 민족 정서를 상징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메보시는 매실을 소금에 절였다가 붉은색이 나는 차조기(깻잎 비슷하게 생겼다)와 함께 넣고 삭힌 음식으로, 매우 시고 짜서 우메보시 한 알이면 밥 한 공기를 비울 정도다. 맛 뒤에 숨어 있는 다 익은 매실, 즉 황매의 냄새는 더없이 향기롭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매실 음식이 별로 없다. 매실이 많이 열리지 않았으니 전래되는 매실 음식이랄 게 없다. 드라마 덕에 매실의 인기가 급상승했지만 우리가 먹는 매실 음식은 소주를 넣고 담근 매실주, 설탕을 넣어 숙성시킨 매실 농축액, 몇몇 업체에서 개발한 매실 절임이 전부다. 그런데 한국 매실 음식은 죄다 덜 익은 매실, 청매를 사용한다.

한국과 일본의 매실 사용 차이점을 민족의 식성 차이로 인정하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청매는 덜 익은 과일이며, 따라서 향이 매우 적을 뿐 아니라 매실의 진짜 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청매 상태에서는 아주 덜 익은 매실이 섞여도 구별되지 않는다. 쉽게 말해 아직 먹을 수 없는 매실이 시장에 깔려도 구별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매실 생산자들은 ‘맛없는 청매’ 위주로 소비시장이 형성된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청매가 한국시장을 점령한 까닭은 한 주류업체가 매실주를 제조하면서 퍼뜨렸다는 말이 있다. 다 익은 매실은 쉽게 뭉개지는 탓에 운송과 보관이 어려워 청매를 수매했는데 그게 번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유통업체가 청매의 확산에 한몫을 하긴 했다. 황매는 보존 기간이 짧으니 판매대에 장시간 진열할 수 없어 비교적 보관이 수월한 청매만 내놓고 있다.

다행인 것은 일부 매실 농사꾼이 황매 유통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자는 취지도 취지지만, 시고 향도 없는 청매만 팔다 보면 언젠가는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잘 익은 매실 파는 농장 몇 곳을 찾을 수 있다.

입력 2010-06-28 14:37:00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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