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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심영섭의 ‘시네마 천국’

뉴욕 문명 등지고 불편하게 사는 법

저스틴 셰인, 로라 가버트 감독의 ‘노 임팩트 맨’

뉴욕 문명 등지고 불편하게 사는 법

뉴욕 문명 등지고 불편하게 사는 법

‘노 임팩트 패밀리’의 용감한 도전은 쉽지 않다.

뉴욕에서 역사 저술가로 살아가는 남자가 있다. 아내는 잡지 ‘비즈니스 위크’에 글을 기고하고, 둘은 세 살짜리 딸을 키운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남자가 엉뚱한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지구 환경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고 1년을 보내는 프로젝트를 해보겠다는 것. 그것도 시골이 아닌 뉴욕 한복판에서 일명 ‘노 임팩트 맨’, 아니 ‘노 임팩트 패밀리’로 생존하는 것을 말이다.

결국 이 집에서는 화장지도, 일회용 기저귀도 쓸 수 없게 됐다. 반경 400km 지역 안에서 생산된 채소와 과일만 먹어야 하며, 어떤 거리든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 한다. 상황이 이 정도니 쇼핑광이자 리얼리티 TV쇼 애호가인 아내는 중고품 가게에 옷을 내다 팔고, 아끼던 TV도 없애야 할 처지에 놓인다. 그런데도 남편은 음식물 쓰레기를 줄인다며 지렁이가 가득 든 상자를 사고, 마침내 전기 스위치마저 내려버린다.

언뜻 보면 ‘노 임팩트 맨’은 환경운동 계몽서 같은 구실을 한다. 그런데 깊이 들여다보면 이들 가족이 친환경적으로 산다는 것보다 자본주의 도시 뉴욕 한복판에서 소비자로 사는 삶을 포기했다는 데 감흥이 더 느껴진다. 주인공 콜린 베번에게 정원 가꾸는 법을 가르쳐주는 노인은 ‘당신이 종이 한 장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대신 당신 부인은 나무 수천 그루를 잘라 만든 잡지에 말도 안 되는 주장의 글을 싣는 이 모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되묻는다. 노인은 친환경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 친환경이 아니라 자연과의 연결을 다시 접속하는 것, 그것이 친환경이라는 사실을 콜린에게 깨우쳐준 것이다.

이렇게 처음에는 각종 언론매체에 입소문을 타는 그린 패밀리 혹은 자기 홍보에 열중하는 유기농 귀족처럼 보였던 콜린이지만,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의 프로젝트 안에 지역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할 공통분모가 널려 있음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다큐 영화는 콜린 가족의 우왕좌왕 설왕설래를 통해, 기존 환경영화들이 전달하는 지구 재앙에 대한 무시무시한 위협을 강조하기보다는 소소한 일상에서 ‘개인적 선택’이 자본주의 시스템과 어떻게 연관 있는지 그 배경을 생각하게 만든다(콜린의 말을 빌리면 자신의 프로젝트는 ‘운동’이기에 앞서 하나의 ‘철학’이란다).

영화 속에 숨겨진 모순을 하나 더 짚어보자. 영화를 찍으려면 엄청난 전기가 필요한데, 이를 1년씩이나 찍은 제작진과 콜린 패밀리는 정말 환경보호를 하자는 것일까? 감독 로라 가버트도 이 점을 깊이 고민했는지, 화면을 보면 100% 디지털에 인공조명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흔적이 역력하다. 심지어 제작진은 촬영할 때나 이동할 때 콜린 패밀리처럼 전철과 자전거를 이용했다고 한다. 영화의 때깔은 화려하지 않지만, 홈무비 스타일이 환경영화의 정신과 잘 부합한다.

콜린 가족이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시도한 모든 일에 성공만 한 것은 아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해치울 거라던 지렁이들은 온 집안에 파리 떼를 양산하고, 냉장고 대용 두 겹 항아리는 여지없이 우유를 썩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끊임없는 대화와 타협으로 서로의 꿈을 지지해주는 부부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이나 법정 스님의 ‘무소유’까지 바랄 수는 없더라도 이제부턴 쓰레기를 버릴 때 아무 비닐봉투에나 넣어서 휙 내던지는 게 찜찜하다고 느끼고 비닐봉투를 에코백으로 바꾼다면, 그것이 환경보호의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다큐 ‘슈퍼 사이즈 미’를 이은 ‘노 임팩트 맨’은 소비주의 시대를 사는 인간이 문명을 등지고 검박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진솔한 고백서이자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한 가족의 용감한 자기 증명서다.

입력 2010-06-28 14:34:00

  •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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