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3

2010.06.28

도박과 야쿠자 파문에 ‘스모’ 휘청

선수 -사범 65명 도박 연루 충격 … 끊이지 않는 내부 잡음에 존망 위기

  • 일본 도쿄=이종각 jonggak@hotmail.com

    입력2010-06-28 1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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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박과 야쿠자 파문에 ‘스모’ 휘청

    2007년 6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하와이 그랜드 스모 토너먼트 대회’의 개막식.

    남아공에서 월드컵 출전 사상 첫 원정승리를 거둬 일본 열도가 뜨겁게 달아오른 가운데 스모(相撲)계 도박사건이 터져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도박에 관련된 사람이 60여 명에 이르는 등 대규모이고 선수뿐 아니라 선수를 지도·감독해야 할 사범까지 관련돼 있어 일본 사회가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이에 ”일본의 국기(國技) 격인 스모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다”(스모협회 지도·감독관청인 문부과학성 부대신의 기자회견 발언)는 탄식마저 나온다.

    발단은 5월 19일 주간지 ‘신초(新潮)’의 보도로 현역 스모 선수인 ‘오제키(大關)’ 고토미쓰키(琴光喜·34)가 야구도박에 관계했고, 도박의 배후에 있는 야쿠자(폭력단)로부터 발설하지 않을 테니 1억 엔을 내라는 협박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스모에는 10개의 ‘리키시(力士)’ 등급이 있는데, 한국 씨름의 천하장사 격인 ‘요코즈나(橫網)’ 다음 등급이 오제키다.

    야쿠자가 폭로 협박 열도 ‘시끌’

    처음에는 고토미쓰키가 경찰과 스모협회 조사에서 도박 관여설을 부인하자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6월 4일 다른 주간지가 고토미쓰키의 도박뿐 아니라 스모협회 산하 도장인 ‘베야(部屋)’의 현역 사범 오야가타(親方)가 폭력단과 관계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스모협회는 전 선수와 사범을 대상으로 도박 관련 내부조사를 실시했다. 과거 5년간 도박 사실을 신고할 경우, 정상을 참작해 관대히 처분하겠다고 하자 무려 65명이 자진신고를 했다. 29명이 야구도박에 관여했고 나머지는 마작, 화투 등에 손을 댄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도박 관여설을 부인했던 고토미쓰키도 야구도박을 했다고 시인했다. 그는 도박에서 이긴 배당금 300만 엔을 현역 스모 선수에게 요구했으나, 폭력단과 연결된 그 선수의 형(전 스모 선수)이 오히려 도박행위를 폭로하겠다며 돈을 요구해 300만 엔을 건넸다고 한다. 고토미쓰키는 그동안 가족에 대한 폭력단의 위해 협박 때문에 도박 사실을 부인했고, 그가 5년여간 야구도박에서 잃은 돈이 무려 3000만 엔에 이른다고 일본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경찰은 고토미쓰키를 비롯해 야구도박을 자진신고한 사람들에 대해 수사를 시작했다. 이번 기회에 과연 야쿠자의 자금조달원이 되고 있는 야구도박을 뿌리 뽑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프로야구 경기 결과에 돈을 거는 야구도박은 전국적인 규모로 판돈이 수억 엔대에 이르고, 도박을 주관하는 폭력단은 게임당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모계의 불미스러운 일은 이번 도박사건만이 아니다. 몇 년 전엔 사범과 선수들이 같은 도장의 어린 선수를 폭행치사한 사건이 일어나 구속됐고, 여러 명의 선수가 대마초를 피운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최근엔 교도소에 수감 중인 일본 최대 폭력조직인 야마구치구미(山口組)의 두목에게 산하 폭력조직 간부가 건재를 알리기 위해 2명의 사범에게 스모대회 중 텔레비전 중계방송에 잘 비치는 우선석을 부탁, 편의를 봐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사범들은 협회에서 제명되고 그 도장은 폐쇄됐다.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야구다. 그러나 국기로 불리는 것은 야구가 아니라 스모다. 물론 스모가 국기라고 법령에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일본인들 스스로 국기라 부를 만큼 사랑받는 전통 스포츠이고,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일본 문화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도박과 야쿠자 파문에 ‘스모’ 휘청

    외국 국적 선수로는 처음으로 ‘요코즈나’에 올랐던 하와이 출신 아케보노가 몽골 출신인 아사소류에게 스모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스모협회는 ‘오즈모(大相撲)’라 불리는 대회를 1년에 6번 도쿄,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등 4개 주요 도시에서 개최한다. 각 대회는 15일간 열린다.

    1990년 초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하와이 출신의 아케보노(曙)와 무사시마루(武藏丸), 고니시키(小錦) 등 200kg이 넘는 서양의 거한들이 대거 등장, 스모는 이국적인 모드가 가미되면서 더욱 인기를 구가했다. 이들 중 아케보노와 무사시마루는 사상 처음 외국인 요코즈나에 등극해 스모의 국제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들에 이어 친형제인 와카노하나(若乃花), 다카노하나(貴乃花)가 거의 같은 시기 요코즈나가 돼, 사상 첫 형제 요코즈나로 공전의 ‘와카다카(若貴) 붐’이 일었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은퇴(2003년)한 후 일본인 요코즈나가 배출되지 않고 있다. 스모에 입문하려는 젊은이가 급격히 줄어든 데다, 기존 선수들의 기량이 떨어지는 게 이유다. 이에 따라 스모의 인기도 하강곡선을 그린다. 스모 경기장에는 ‘만원사례(滿員謝禮)’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리는 게 보통인데, 요즘은 관중석 여기저기가 비어 있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 스스로 무덤 파

    이 같은 상황에서 일본 스모계는 요코즈나 아사소류(朝靑龍)와 하쿠호(白鵬) 등 몽골 출신 선수들이 주도해왔다. 동유럽 출신 선수도 몇 명 있으나 몽골세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지난 1월 은퇴를 선언한 아사소류는 끊임없이 말썽을 일으키는 스모계의 이단아였다. 보름간 계속되는 경기 기간 중에도 밤에는 술집을 드나들었고, 경기장 안팎에서 난폭한 언동을 일삼아 언론으로부터 요코즈나로서의 품격이 없다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그는 2010년 1월 경기 기간 중에 만취 상태에서 일반인을 구타한 사건으로 어쩔 수 없이 은퇴를 선언했다.

    이번 도박사건은 현재 일본인 스모 선수 중 최고위인 오제키 고토미쓰키를 비롯한 현역 선수가 다수 관련돼 있고, 경찰 수사가 야구도박 관련자 전원에게 확대되고 있어 파문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도박사건의 여파로 당장 7월 11일부터 열릴 예정인 나고야(名古屋)대회가 취소될지도 모른다. 이번에 대회가 열리지 못하면 1932년 선수들의 처우개선 요구 등을 둘러싸고 대회가 중지된 이래 78년 만에 열리지 않는 것이다.

    일본이 경제부흥에 성공한 1960년대 이후 스모협회는 스모를 전 세계에 알리고자 구미를 비롯해 남미, 호주 등에서 스모대회를 개최해왔다. 반일 감정을 고려해 미뤄온 서울에서도 2004년 스모대회를 ‘무사히’ 열었다. 이와 함께 NHK 위성방송을 통해 스모대회를 전 세계에 중계방송해 스모를 꾸준히 알렸다. 그 덕에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상당한 스모 팬이 생겼다.

    그러나 일본 스모계는 폭행, 마약, 야쿠자 관련설, 도박 등 과거의 관행을 시대 변화에 맞게 개혁·개선하지 못한 채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형국이다. 그동안 일본의 경제력을 배경으로 국제화에 성공한 것처럼 보였던 스모는 구조적인 내부 결함을 극복하지 못한 채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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