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3

2010.06.28

이란 핵개발 저지 ‘유대인 막강 파워’

러·중 UN 안보리서 미국편 들어 이례적 … 양국 이익 보장 ‘빅딜설’ 소문 파다'

  •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정치학 박사 kimsphoto@hanmail.net

    입력2010-06-28 13: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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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핵개발 저지 ‘유대인 막강 파워’

    6월 9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제4차 대이란 제재 결의안이 통과된 직후 미국 오바마 대통령.

    이란에 갈 때마다 테헤란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핵무기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면 제법 많은 사람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안보위협으로부터 이란을 지키려면, 핵무기를 개발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거리의 보통사람들은 반미 이슬람의 자존심을 살리는 핵국가 이란을 꿈꾸는 모습이다. 그렇지만 이란 정부나 국책 연구소의 공식 입장은 ‘평화적 핵에너지 개발론’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제2의 석유자원 보유국인 이란이지만, ‘언젠가 다가올 석유 고갈에 대비한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이야기다.

    국제문제와 안보를 다루는 이란 싱크탱크인 테헤란 전략조사센터(CSR)에서 만난 라만 가흐레만포르 박사(CSR 군비축소 분야 전문연구원)의 주장을 들어보자.

    “이란은 핵무기비확산조약(NPT) 가입국이다. NPT 4조는 ‘가입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 아래서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를 포함, 평화적으로 핵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고 못 박고 있다. 이란은 바로 그 조항에 바탕해 평화적 핵이용권을 갖는다. 이것은 포기할 수 없는 권리다. 우리 이란은 오래전부터 ‘중동 핵 자유지대’를 주창해왔다. 중동의 비핵화를 지지한다는 이야기다. 중동 비핵화를 방해하는 존재는, 다름 아닌 미국과 이스라엘이다.”

    미국은 이러한 이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석유부국인 이란이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데 열을 올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핵무기 보유를 위한 것이라 여긴다. 국제정치 무대에서 이란을 압박하는 유효한 수단 가운데 하나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 결의안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거부권을 지닌 러시아와 중국은 그동안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이들 두 나라의 입장을 바꾸려고 미국은 외교력을 총동원해 전력투구해왔다. 6월 9일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 내용을 담은 안보리 결의안(1929호)이 중국과 러시아의 찬성 속에 통과된 것은 미국 외교의 승리로 기록된다.

    힐러리 “4차 결의안은 강력한 제재”



    이로써 이란 핵개발 의혹과 관련해 모두 네 번에 걸쳐 안보리 결의안이 통과됐다(1차는 2006년, 2차는 2007년, 3차는 2008년). 앞서 세 번의 결의안은 ‘이란에 우라늄 농축 활동 중단 등 기존 국제원자력기구 결의 내용을 이행토록 촉구하고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금융자산 동결과 경제제재 조치를 검토하겠다’는 1차 결의안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4차 결의안은 해외에 있는 이란 은행들에 대한 제재, 중앙은행을 포함한 모든 이란 은행의 거래 감시와 더불어 이란에 대한 유엔 무기금수 조치 등 좀 더 센 제재 내용을 담았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이란에 대해 내려진 가장 강력한(significant) 제재”라고 말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란은 모하마드 카자이 유엔주재 이란대사를 앞세워 안보리 결의안을 막아보려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카자이 대사가 그래도 믿었던 것은 지금껏 그나마 이란을 이해하는 태도를 보여온 러시아와 중국이었다. 이 두 나라 가운데 한 군데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결의안 통과는 원천 봉쇄된다. 그러나 이란에겐 실망스럽게도 두 나라의 유엔대사는 찬성 쪽에 손을 들었다.

    이란 핵개발 저지 ‘유대인 막강 파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 배경을 놓고 워싱턴 정가에서는 러시아-미국 사이의 빅딜설이 나돈다. 미국과의 전략핵무기감축 협정을 체결한 데다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문제가 걸렸기 때문이다. 특히 2009년 9월 미국이 동유럽 미사일방어망(MD) 구축을 포기한 것이 러시아로 하여금 이란 제재 쪽으로 돌아서게 만든 계기라는 것이다. 러시아로선 미국이 그토록 바라는 이란 제재에 동참함으로써 한발 양보하고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1) 후속협정 체결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에서 실익을 챙기려 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중국의 변화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중국은 이란 원유의 최대 수입국으로, 하루 40만 배럴을 이란에서 들여온다(2009년 기준). 중국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껄끄럽게 여기는 ‘국내문제’(대만, 티베트, 신장자치구)에 다른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마찬가지로 이란 핵문제는 이란의 내정문제이므로 국제사회의 ‘개입이 불가하다’를 외쳐왔다. 미 워싱턴에 자리 잡은 싱크탱크 가운데 하나인 전략국제문제센터(CSIS)의 중국전문가 찰스 프리먼은 CSIS 홈페이지에 실은 ‘이란 핵전략에서의 중국 요소(factor)’라는 글에서 “이란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해 핵보유국 반열에 든다 해도 그것이 중국의 안보에 반드시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 중국은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이 군사강국이 되면, 중동과 서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점에서 중국으로선 나쁘지 않은 구도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중국이 태도를 바꾼 데에는 미국의 외교적 노력이 작용했다. 미국은 지난 4월 워싱턴에서 열렸던 핵안보정상회의, 5월 힐러리 국무장관과 가이트너 재무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베이징에서 열렸던 미·중 전략경제대화 등을 통해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의 필요성을 꾸준히 설득해왔다. 힐러리 국무장관은 중국 지도자들에게 “중국이 이란과의 경제관계(특히 석유) 때문에 제재를 망설인다면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통해 이란에서의 석유공급 중단분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미국은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중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위안화 절상 이야기를 삼갈 만큼 중국의 이란 제재 동참에 공을 들였다. 한편으로 미국은 유엔 제재에 중국이 찬성만 한다면 제재에 동참하지 않아도(제재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중국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의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미국의 집요한 요청을 못 이기는 체 받아들인 데엔 이란이 섣불리 중국으로의 원유 수출을 동결하지 못하리라는 판단도 작용한 듯하다. 만약 이란이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끊을 경우 그것은 그나마 이란에 우호적인 강대국을 적으로 만드는 셈이다.

    석유 빠진 제재 결의안, 효과엔 의문

    문제는 이번 안보리의 추가 제재 결의안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이 바라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 제동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석유, 가스 금수 조치 등 보다 강력한 제재안은 이번 제재 결의안에서 제외됐다. 1979년 이슬람 호메이니 혁명으로 미국-이란과의 외교관계가 끊어진 뒤 미국은 지난 31년 동안 이란에 경제제재를 가해왔다. 이란은 이미 경제제재에 내성이 생겨 이번 제재도 테헤란 사람들에겐 견딜 만한 정도일 것이다.

    이란 핵개발 저지 ‘유대인 막강 파워’

    타지키스탄 순방 중 유엔에서 이란 제재 결의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을 듣고 화난 표정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이란에 대한 안보리의 추가 제재 결의안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의지를 꺾을 수 있을지에 대해 중동 전문가들은 대체로 회의적이다. 미 브루킹스 연구소의 선임연구원 레이 테이키는 안보리 결의안이 나온 뒤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란에 대한 안보리의 제재도 이란의 핵 야망을 누그러뜨리지 못할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테이키는 그 이유로 지금까지의 유엔 제재 결의안이 이란의 핵정책을 바꾸지 못했고, 이번 4차 추가 제재 결의안이 약간의 고통을 더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이란의 생명줄인 석유수출 규제를 빼놓았으므로, 힐러리 국무장관이 말했듯이 이란을 절뚝발이(crippling)로 만들기 어렵다는 점을 들었다. 아울러 이번 제재가 이란의 핵의지를 꺾기는커녕, 이란 시아파 종교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한 이란 지도자에게 반미저항론을 합리화시키는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 풀이했다.

    미국 움직이는 이스라엘 로비

    미국 카네기재단의 중동전문가 카림 사자드포르도 미 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CFR)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제재 결의안이 이란의 핵개발 속도를 늦출 수는 있어도 멈추게 하지는 못할 것”이라 내다봤다.

    그렇다면 미국도 답답해진다. 군사력으로 이란의 핵개발을 막기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나의 대안은 이란의 핵개발이 핵무기 제조에 가까운 단계라 판단되는 시점에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에 대한 전면공습에 나서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미 1982년 이라크 오시라크 원자로를 공습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란의 핵개발 시설은 이라크의 1개와는 달리 모두 9개이며 지역적으로 퍼져 있다. 거리도 이라크보다 멀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공습에 성공하든 못하든 이란 공습의 뒷감당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안보리 제재 결의안이 통과되던 날 함박웃음을 지었던 힐러리 국무장관의 얼굴 주름도 더욱 파일 듯하다. 이란의 핵개발 의혹은 북한의 핵폐기와 더불어 2010년 국제정치가 풀어야 할 2개의 어려운 이슈로 남아 있다.

    여기서 생각해볼 점 하나. 지정학적으로 이란은 미국과 너무 먼 거리에 있다. 사정거리 3000km의 샤하브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이란이지만, 미국의 본토를 위협할 만한 처지도 못 되고 능력도 안 된다. 그런데도 미국은 왜 이란 핵개발 저지에 그토록 집착하는가. 해답은 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미 시카고대 교수)와 스티븐 월트(미 하버드대 교수)가 지난 2006년 격주간 서평전문지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발표한 ‘이스라엘 로비’라는 글에 담겨 있다. 이들은 “미국이 이란 핵개발 문제에 그렇게 신경 써야 할 절실한 이유가 없는데도 그 문제에 매달리는 것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 로비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런 분석이 맞다면, 미국은 이스라엘 안보를 위해 이란 재제 결의안을 통과시키려 전력투구한 셈이다. 결국 이번 이란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은 미국 내 유대인 파워를 새삼 확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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