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3

2010.06.28

“1만 1000원 무한의료” vs “말도 안 돼”

건강보험 확충 주장 ‘뜨거운 감자’… 사실상 30% 인상 국민 설득이 관건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10-06-28 12: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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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만 1000원 무한의료” vs “말도 안 돼”

    국민건강보험료를 30% 정도 인상해 대부분의 ‘입원진료비’를 국민건강보험으로 해결하자는 풀뿌리운동이 시작됐다.

    “1인당 국민건강보험료가 지금보다 월평균 1만1000원(가구당 2만8000원) 많아지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를 비롯해 노인 틀니 보장구와 각종 의약품 비용 그리고 자기공명영상장치(MRI), 초음파 같은 검사비 등 환자의 부담을 늘리는 비보험 진료비 및 환자 간병비를 모두 국민건강보험으로 지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면 중병 환자의 연간 ‘입원진료비’가 100만 원이 안 될 겁니다.”

    “보험금 30% 늘려 보장률 30% 높이자”

    국민건강보험료를 올려 대부분의 ‘입원진료비’를 국민건강보험으로 해결하자는 범시민운동이 시작됐다.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준비위원회는 6월 9일 발족식을 열고 ‘풀뿌리 운동’을 추진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준비위원회 위원장인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는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이 62%(2008년 기준)로 낮기 때문에 국민은 1인당 월평균 민간보험료로 12만 원을 따로 지출하며 보장률을 보완하고 있다”면서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 국민건강보험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험료 구조상 국민건강보험은 1000원을 내면 970원의 혜택을 돌려받지만 민간보험은 250~450원밖에 받지 못하므로 국민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위원회 측은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을 현재의 60% 수준에서 OECD 국가 평균치인 90%로 끌어올리려면 국민건강보험료 총액인 36조 원의 30% 증가분, 즉 12조 원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보험료의 30%를 늘려 보장률을 30% 높이자”는 얘기다.

    준비위원회가 ‘개인당 월평균 1만1000원 인상’이란 구호를 외친 배경은 이렇다. 12조 원은 현재의 배분율에 따라 직장가입자 보험료 3조6000억 원, 사용자 부담 보험료 3조6000억 원, 지역가입자 보험료 2조6000억 원, 국고 추가지원금 2조7000억 원이 더해지고 관리운영비 5000억 원이 빠진 것으로, 개인이 부담하는 금액은 직장가입자 보험료와 지역가입자 보험료를 합친 6조2000억 원이다. 이를 12개월로 나누고 우리나라 인구를 5000만 명으로 산정하면 월평균 개인의 추가 부담액은 약 1만1000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6조2000억 원≒12개월×5000만 명×1만1000원

    그러나 개인 중에는 부양자와 함께 건강보험금을 내지 않는 피부양자가 혼재하므로 ‘개인당 1만1000원 증가’보다는 ‘보험료 30% 수준 인상’이 더 적확한 표현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건강보험료를 올려 보장성을 높인다’는 기본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이들의 주장에 우려를 표한다. 무엇보다 “개인당 월 1만1000원으로 ‘무한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구호가 선정적이라는 것이다. 이선희 이화여대 의대 교수는 “무한진료라는 표현 자체가 정치 슬로건”이라고 지적하면서 “신기술이 나오면 개인의 의료 수요는 무한정으로 커지는데, 어떻게 사람들의 요구를 무제한적으로 들어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게다가 무상의료가 진행되면 환자의 진료 수요가 늘어날 텐데 이 재원으로 가능하겠느냐고 물었다. 이동훈 의사(전 전공의협의회장)는 인구 고령화와 의료기술 발달로 매년 의료비용이 10% 상승하는 점에 주목했다. 이러한 ‘자연 상승분’이 존재하는 한 확충된 재원은 부족분을 채우는 데 이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12조 원을 늘려도 ‘도로아미타불’이 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이런 지적에 대해 이 위원장은 ‘무한한’ 진료를 원하는 환자들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운동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는 단서를 달며 그 대책을 설명했다.

    “개발되는 신기술을 모두 적용하는 것은 예산상 무리이기 때문에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비용효과평가위원회’ 등을 통해 비용 대비 효과를 인정받은 신기술만 환자에게 제공하면 재정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또한 기본 이상의 서비스를 원하는 환자들의 욕구를 고려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병상을 현재의 50%에서 70, 80%로 확대하고 나머지 20%는 자율에 맡길 예정이다.”

    한편 무상진료를 하면 환자들의 진료 수요가 증가하리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생각을 달리했다.

    “우리의 취지는 통원 진료를 받는 환자가 아니라 입원 진료를 받는 환자에 한해서만 진료비를 보전해주자는 것이다. 진료비를 내지 않겠다고 굳이 입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물론 그런 환자가 생겨날 수는 있지만 의사의 강제퇴원명령제나 관리기구감독제를 강화하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

    행위별수가제, 의료수가 등 조정해야

    매년 10% 증가하는 진료비의 ‘자연 상승분’에 대한 생각도 달랐다. 확충된 재원이 자연 상승분을 보전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우려하는 전문가가 있지만, 준비위원인 이진석 서울대 의대 교수는 “공공의료가 확충되면 도리어 자연 상승분이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OECD 국가들의 건강보험 보장성 수준이 높은데도 환자 수가 적은 점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이 교수는 “공공의료 서비스가 제대로 갖춰지면 환자들의 건강관리가 잘돼 병원을 찾는 횟수가 준다”면서 “이를 위해 환자가 내원할 때마다 병원에 수가가 매겨지는 ‘행위별수가제’는 불필요한 진료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다른 차원의 보수지불제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제도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윤석중 고려대 의대 교수는 “건강보험료 인상으로 보장성을 강화하려면 의료전달 체계를 개선해 주치의제도를 활성화하고 행위별수가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준비위원회의 입장은 확고하다. 국민건강보험료 인상으로 보장성을 강화하자는 취지에 동감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잠재적인 지원세력도 많은 편이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의료수가가 낮은 현 상태에서는 의사들이 행위별수가제를 포기하지 못하므로 ‘의료수가 조정’을 우선적으로 진행하고, 행위별수가제 같은 보수지불제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더 큰 숙제는 국민을 설득하는 일이다. 국민건강보험금 30% 인상에 대한 반발은 예상보다 훨씬 클 수 있다.

    준비위원회 측은 “국민이 건강보험료 외에 1인당 월평균 민간보험료로 12만 원을 더 내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민간보험료보다 적은 액수를 건강보험료로 내고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설득하겠다고 말한다. 입법 활동 대신 풀뿌리 운동을 전개하는 것도 국민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다.

    물론 한편에서는 “정부의 의지가 없는 현 상황에서 이 운동을 추진하면 자원조달만 이뤄지고 보장성 강화는 뒷전으로 밀리기 때문에 보장성 강화부터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준비위원회 측은 국민의 요구가 모아져야 정부의 의지가 생겨난다면서, 국민의 요구로 ‘바위(정부)’를 움직여보겠다는 심산이다. 이 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는 7월 14일 공식 출범한다.

    “1만 1000원 무한의료” vs “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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