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3

2010.06.28

옌볜조선족자치주 해체 임박

중국, 인구 감소 이유로 市로 강등 움직임 … 한국은 내정간섭 이유로 “나 몰라라”

  • 이정훈 동아일보 논설위원 hoon@donga.com

    입력2010-06-28 11: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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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옌볜조선족자치주 해체 임박

    2003년 10월 서울 구로동 조선족교회에서 열린 재중동포 국적회복 운동 발대식. 재중동포의 한국적 회복은 중국 정부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지금 재중(在中)동포 사회에서는 올 7~9월 중국 지린(吉林)성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가 해체될 것이라는 소문이 강하게 돌고 있다. 동북3성의 중국 동포와 현지를 출입하는 한국 사업가들은 “현지에서는 모든 사람이 아는 필지의 사실인데 왜 한국은 가만히 있느냐”고 반문한다. 한국 언론의 침묵은 중국의 발표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 언론이 이 문제에 관한 보도를 전혀 하지 않으니 덩달아 가만히 있다. 중국에는 공산당 중앙선전부의 지원과 통제를 받아 운영되는 ‘당영(黨營) 언론’밖에 없어, 당이 금하는 일은 일절 보도되지 않는다. 조선족 언론도 마찬가지다.

    옌볜자치주의 명목상 해체 이유는 자치주 구성요건의 상실. 중국은 소수민족 비율이 30%를 넘겨야 자치(自治)를 인정하는데, 현재 옌볜의 재중동포(조선족) 비율은 27%대 이하로 떨어진 것. 그런데 실재 비율은 그 이하라고 한다. 호구(호적)만 옌볜조선족자치주에 두고 나가 사는 사람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이 자치주를 해체하려는 근본적인 이유는 대한민국에 기댄 조선족들이 경제력과 민족의식이 높아져 동북공정에 반대하는 등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58년간 유지돼온 조선족 공간

    옌볜자치주는 흔히 간도(間島)라 부르는 곳이다. 중국 지린성 동남부에 자리해 북한의 함경북도와 맞닿아 있으며, 지린성을 구성한 9개 광역단체 중에서 가장 면적이 넓다. 일찍부터 조선족이 이주해 개척한 곳이기에 항일독립운동이 거셌다. 1952년 9월 옌볜조선족자치구로 지정됐다가 1955년 12월 옌볜조선족자치주로 승격돼 강한 민족공동체를 유지해왔다. 자치구 시절부터 따지면 58년간 유지돼온 조선족의 정치 행정 공간이다.

    자치주 면적은 한국(남한)의 절반에 육박하는 4만3474km2, 주도인 옌지(延吉)시를 비롯한 5시(市) 3현(縣)으로 구성돼 있다. 전체 인구는 약 216만으로 이 중 30%인 62만 명 정도가 조선족이다. 150여만 명으로 추정되는 나머지 조선족은 옌볜이 아닌 다른 지역에 살고 있다. 옌볜조선족자치주가 사라지면 중국에서는 지린성 바이산(白山)시 산하에 있는 창바이(長白) 조선족자치현만 남는데, 이곳도 계속 자치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옌볜조선족자치주 해체 임박
    자치주의 명목상 1인자는 ‘주장(州長)’이나 실질적 1인자는 주 공산당위원회(이하 당위) ‘서기’다. 중국은 자치주 주장엔 친중국 성향의 소수민족 인사를, 당위 서기엔 한족(漢族)을 임명해 자치주를 운영한다. 주장과 주 당위 서기는 주보다 큰 성(省)의 명목상 1인자인 성장(省長)과 성 당위 서기를 대신해 자치주를 운영한다. 옌볜자치주가 없어지면 자치주는 일반 (광역)시가 되고 주장과 주 당위 서기직이 사라진다.

    옌볜자치주가 옌볜시 또는 다른 이름을 쓰는 (광역)시가 되는 것이다. 중국은 (광역)시 밑에 현과 동급인 시가 또 있는 지방제도를 갖고 있다. 자치주가 없어지면 자치주 밑의 5시3현은 약간의 통합과정을 거쳐 새로 탄생하는 (광역)시의 통제를 받는다. 조선족만의 정치 행정 공간이 사라지게 되는 것.

    조선족자치주가 붕괴하게 된 이유로는 ‘3각파도’론이 꼽힌다.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중국의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이 첫 번째 이유다. 중국은 한 해 평균 1700여만 명의 농민이 도시로 몰려드는데 조선족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엔 칭타오(靑島), 엔타이(煙台), 선전(深), 선양(瀋陽) 등 한국 기업이 진출한 도시가 많기에 조선족은 한족보다 많이 도시로 나가고 있다.

    두 번째 이유로는 돈벌이를 위한 한국 방문이 꼽힌다. 현재 조선족은 5년간의 취업비자를 받아 쉽게 한국으로 나온다. ‘한국 맛’을 본 조선족은 중국에 돌아온 후 대부분 도시로 옮겨간다. 농촌을 떠날 조건이 좋다 보니 조선족 공동체는 한족은 물론 만족(滿族)이나 몽골족 등 다른 소수민족 공동체보다 빨리 무너지고 있다.

    우리 정부 개입 어려운 현실

    옌볜조선족자치주 해체 임박

    한글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는 옌볜자치주 주도인 옌지시 전경. 조선족 자치주가 해체되면 한글 간판을 의무적으로 달 이유도 사라진다.

    중국이 옌볜자치주를 없애려는 명목상 논리가 바로 이것이다. 농촌의 인구 유출이 심각해 우리의 광역시처럼 지방 행정조직을 통폐합하겠다는 것. 중국에서는 토지 소유권은 인정되지 않고 거래가 되는 사용권만 인정된다. 조선족들은 앞다퉈 농촌을 떠나려고 하기에 이들이 내놓은 집터와 경작 농지의 사용권은 조선족이 아니라 대개 한족이 인수한다. 옌볜의 한족화(漢族化)가 가속화되는 것. 그렇다고 도시로 나간 조선족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품팔이도 못하게 된 일부는 귀향을 꿈꾸지만 집터마저 팔아버렸기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고 현지에서 한족과 동화되는 과정을 밟는다.

    옌볜자치주 해체에 대한 우리 정부의 태도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핏줄은 우리와 같지만 법적으로는 엄연히 중국인이기 때문에 중국의 지방조직 개편에 간여하는 것은 내정간섭 시비를 일으킬 수 있다는 논리다. 그래서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은 한국이 조선족 문제에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를 매우 싫어한다.

    현재 한국 국적법은 ‘선천적 2중 국적자’에 한해 2중 국적 유지를 허용하고 있다. 선천적 2중 국적자란 미국 등 속지주의에 따라 국적을 부여하는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을 가리킨다. 이러한 한국인이 22세 이후 법무부에 ‘외국 국적 포기 서약서’를 제출하면 한국에서는 외국 국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한국인으로 살아야 하고, 한국을 나가서는 그 나라 국적자로 활동할 수 있다. 이 법을 만들 당시 조선족들은 “원래 한국인이었으니 이 법의 적용대상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중국 측은 “조선족은 원래부터 중국인이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때문에 한국은 조선족을 ‘원래부터의 한국인’으로 여기지 못하고 중국 국적자로 보게 됐다. 이러한 경험 때문일까. 한국 정부는 중국의 지방제도 개편에 이렇다 저렇다 개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자치지역에서는 간판과 각종 문서에 중국어와 소수민족 언어가 함께 쓰인다. 자치가 해지되면 이런 의무가 사라지므로 소수민족 언어를 배우려는 사람이 사라질 수 있다. 민족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재중동포들은 걱정만 할 뿐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위구르자치구 사태와 티베트자치구 사태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강경 입장을 알기에 그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민족정체성 사라질까 걱정

    중국은 한족만이 아니라 55개 소수민족 모두를 중국인으로 본다. 따라서 중국에 있는 고조선과 고구려 유적은 중국을 구성하는 조선족 선조의 유산이기에 중국 유적이고, 두 나라도 중국의 역사에 포함된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중국이 옌볜자치주를 없애려는 것은 ‘역사 동북공정’에 이어 ‘지방행정의 동북공정’을 진행하고 있다는 증거나 다름없다.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우리 민족공동체 하나가 사라지려 하고 있다.

    조선족 공동체 지키는 비법 없나?

    농업 소득 증대가 최선의 방법


    옌볜조선족자치주 해체 임박

    조선족 농촌공동체에 행정안전부 등이 수집해준 한국산 중고 농기계를 전달하는 국제농업개발원. 자치주가 해체돼도 조선족 농촌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국은 민간 차원에서라도 도와줘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무너져가는 조선족 공동체를 지켜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조선족이 도시에서 품을 파는 것보다 농촌에서 농업으로 더 많은 소득을 올리게 해주는 것이 정답이다. 농업으로 돈을 벌려면 경작 면적이 넓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6ha를 경작하면 기업농으로 꼽히나, 중국은 땅이 넓어 도시로 떠나는 이들의 농토를 인수하면 금세 20~30ha를 확보할 수 있다. 기업농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조선족이 많이 사는 동북3성은 비가 적어 밭농사를 주로 해왔다. 그러나 18세기 이곳으로 진출한 조선족들은 습지를 정리하고 하천 물을 끌어들여 쌀농사를 지음으로써 한족에게까지 수전(水田)기술을 보급했다. 그로 인해 동북3성에서의 쌀 수요는 상당해졌다. 반면 한국은 매년 6% 정도의 쌀이 남아 골치다. 시장이 줄어드니 신품종을 개발해도 판매가 늘지 않는다.

    이러한 양쪽 사정을 결합해 윈-윈 구도를 만들자고 노력하는 곳이 있다. 해외식량기지 개발을 주로 해온 한국의 국제농업개발원이 그곳이다. 국제농업개발원은 몇몇 조선족 농촌공동체와 손잡고 중국 내수시장을 노린 기능성 쌀 재배에 도전하고 있다. 중국 상류층이 쌀을 맛으로 먹지 허기를 채우려고 먹지 않는다는 점과, 중국 남쪽에는 좋은 쌀을 생산하는 곳이 많다는 사실에 착안한 것. 동북3성에서 수전을 하는 조선족이 중국의 특별한 소비층이 찾는 기능성 쌀을 생산해 소득을 높이면 공동체를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

    국제농업개발원이 내놓은 기능성 쌀은 ‘배훈진 쌀’이다. 모든 생물은 갓 태어났을 때 가장 치열하게 양분을 흡수한다. 벼도 싹을 틔우려 할 때 주변 영양소를 가장 열심히 흡수하는데, 이때 항암 성분을 풀어주면 벼 전체가 항암 성질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벼에서 열리는 나락도 항암 성질을 갖는다. 차가버섯은 대표적인 항암 식물인데 차가버섯을 러시아어로 ‘베푼긴’이라고 한다. 이 쌀은 발아기 때 베푼긴의 항암 성분을 침투시킨 것으로 베푼긴을 우리말화해 ‘배훈진’이라 했기에 ‘배훈진 쌀’이 됐다.

    배훈진 쌀은 가격이 높아 국내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다. 가격을 낮추려면 대규모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한국에는 그렇게 할 곳이 없다. 하지만 중국의 동북3성은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다. 쌀농사를 잘하는 조선족 농촌공동체에 맡기면 해볼 만한 사업이라는 게 국제농업개발원의 생각이다. 조선족 공동체에서 나온 배훈진 쌀을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등 대도시의 중국 부유층이 찾기 시작한다면 조선족이 대도시나 한국으로 나가 날품을 팔 이유가 없어진다. 그러면 옌볜자치주는 사라져도 조선족 공동체는 유지할 수 있는 것.

    필요한 것은 한국의 관심이다. 국제농업개발원은 행정안전부의 협조로 수거한 국산 중고 농기계를 배훈진 쌀을 경작할 조선족 공동체에 무상으로 공급하며 유대를 강화해나가고 있다.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 같은 것을 조선족 농촌사회에 보급해나가고 있는 것. 이 사업에 참여한 한 조선족 농민은 “지금까지 200만 조선족 사회가 유지돼온 것은 농촌이라는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급격한 산업화로 이것이 깨지면서 조선족 사회도 해체 과정에 접어들었다. 시대의 조류인 이상 조선족자치주 해체는 시기가 문제일 뿐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항일투쟁의 역사가 서린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우리 공동체를 지키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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