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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남아공 월드컵 ②

차세대 수비수 실종 사건

한국축구 스토퍼 자원 갈수록 고갈 … 세대교체커녕 쓸 만한 선수 찾기 어려워

차세대 수비수 실종 사건

2010년 남아공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한국 축구에 낙관론적 시각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탄탄한 조직력과 역대 대회에 비해 많은 해외파로 어느 때보다 기대감은 컸지만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바로 상대적으로 허술한 수비진 때문이다. 공격진과 미드필드진은 21~22세인 이청용(볼튼), 기성용(셀틱), 이승렬(서울), 김보경(오이타) 등 G세대의 등장과 맞물려 세대교체가 잘 이뤄졌으나 왼쪽 풀백 이영표(알 힐랄)로 대표되는 수비진은 조금 불안했던 게 사실이었다.

3경기 6실점 불안한 플레이 계속

아니나 다를까. 월드컵 조별리그 3경기를 통해 드러난 수비진의 실책은 일말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이란 값진 위업을 달성했음에도 다음을 위해 수비진을 보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허정무호는 월드컵에 앞서 진행된 오스트리아 노이슈티프트 전지훈련에서 수비진을 일찌감치 확정했다. 좌우 측면은 이미 골격을 갖췄고, 중앙수비수에 ‘서브 멤버’로 누굴 넣을지 정도가 유일한 관심사였다. 23명 월드컵 출전 최종 엔트리에 오른 수비수는 모두 8명. 포백을 기준으로 할 때 주전과 비주전을 모두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왼쪽 풀백으로는 이영표와 김동진(울산)이 올랐고, 오른쪽 측면에는 차두리(프라이부르크)와 오범석(울산)이 이름을 올렸다. 센터백은 조용형(제주), 이정수(가시마)가 김형일(포항), 곽태휘(교토)와 함께 허정무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그러나 5월 30일 오스트리아 쿠프슈타인에서 열린 벨라루스 평가전이 이들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곽태휘가 상대 공격수와 공중 볼 경합 중 불의의 부상을 입고 낙마한 것. 허 감독은 전반이 끝난 뒤 곽태휘를 교체해줄 계획이었으나 부상 악령을 피해가지 못했다. 곽태휘의 대체 요원으로 불러들인 강민수(수원)는 예전의 기량을 되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고, 김형일은 활달한 성격과 특유의 파이팅에 비해 경험이 적다. 결국 허정무호는 좋든 싫든 월드컵 내내 조용형-이정수 라인으로 버텨야 했다.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등과 치른 조별리그 3경기에서 한국은 총 6실점을 했다. 한데 실점 장면 대부분이 중앙 수비의 불안한 움직임에서 비롯됐다. 김학범 전 성남 일화 감독은 “(이)정수가 적극적인 공격 가담으로 2골을 뽑은 장면은 분명 칭찬할 만하지만 센터백의 첫째 임무와 둘째 임무 모두 ‘안정’이다. 못하진 않았으나 자주 뒷공간을 내주는 등 불안한 플레이를 했다”고 지적했다.

물론 모든 책임을 중앙 수비에만 물을 수는 없다. 아르헨티나에 4골을 내줬을 때 볼 배급 핵심 루트는 ‘마라도나의 재림’이라는 리오넬 메시. 그에 대한 1차 저지선은 김정우와 기성용 2명의 홀딩맨(중앙 미드필더)이 구축해야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표팀은 메시를 막지 못했고 전체 공간을 쉽게 내주고 말았다. 팀 전체를 조율하고 안정감을 줘야 할 김남일도 나이지리아전에서 위험한 플레이로 페널티킥을 내주며 실망감을 안겼다. 번갈아가며 측면 요원으로 출격한 차두리, 오범석도 공격 본능에 비해 완벽한 안정감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는 평가다.

수비진에 조금은 손을 댈 필요가 있다. 수비진의 세대교체는 필요하고, 허 감독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월드컵이라는 중대사를 앞둔 터라 잠시 미뤘을 뿐이다. 현재 대표팀 수비진은 다른 포지션에 비해 연령대도 높다. 이영표(77년생)가 가장 연장자고, 차두리·이정수(80), 김동진(82), 조용형(83), 김형일·오범석(84) 순이다. 막내는 강민수(86)다. “이제 이영표가 은퇴하면 어떡하느냐”는 우려도 괜한 말이 아니다. K리그에서 몇몇 가능성 있는 이가 눈에 띄기는 해도 당장 대표로 선발할 수비수는 드물다.

공격수는 주연, 수비수는 조연 여전

차세대 수비수 실종 사건

대표팀은 제2의 이영표를 빨리 발굴해야 한다.

국내 모 구단 감독은 “믿을 만한 중앙수비수가 없다. 얼마 전까진 공격수 수급이 어려웠는데 이젠 쓸 만한 센터백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일 정도”라고 토로했다. K리그에서 용병 수비수가 서서히 늘어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방 구단의 또 다른 감독은 “우리 팀에도 2명의 센터백이 있는데, 둘 다 대학 때까지 미드필더와 공격수로 뛰어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가 많다”고 걱정했다.

믿음직한 안정감으로 ‘통곡의 벽’이란 닉네임으로 불리며 팬들의 사랑을 받은 수비수 대부분이 용병이다. 그렇다고 프로 구단들이 마음 놓고 용병 수비수를 뽑을 수도 없다. 수비진은 포지션 특성상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인 까닭이다. 이영진 대구FC 감독은 “수비수는 그라운드 가장 뒤에 위치하며 전체 흐름을 조망하기에 선수들 움직임을 조율하고 위치를 결정해줘야 하는데, 아무래도 이 자리에 용병들을 뽑으면 의사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아 전체 밸런스가 흐트러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경험 부족도 한몫한다. 어릴 때부터 전형적인 수비수로 키워진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이정수와 곽태휘도 학창 시절까지 줄곧 공격수로 뛰다가 프로에 입단하며 수비수로 전향한 케이스. 차두리 역시 2002년 한일월드컵 때는 측면공격수로 활약하다 독일 분데스리가 무대로 떠나면서 풀백으로 변신했다.

이럴 경우 위기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는 게 대다수 지도자의 평가다. 신장과 체격이 좋아 제공권 장악 능력과 몸싸움에는 능할지 몰라도 안정감은 떨어진다. 이정수가 자주 공간을 노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대가 치고 올라올 때 자신이 어디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몰라 멈칫거리다 스스로 위기에 빠진다.

‘수비 감각’과 ‘공격 감각’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수비수란 타이틀을 달았어도 공격 가담 능력에 비해 정작 본연의 임무인 수비에는 소홀한 경우도 종종 있다. ‘볼을 좀 찰 줄 안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 대부분이 수비수보다는 공격수를 선호하고 ‘공격수는 주연, 수비수는 조연’이라는 불합리한 인식에서 비롯됐다.

수도권 유명 고교 축구부의 한 학부모는 “상급 학교 진학이나 프로에 입단하려면 득점이나 어시스트 등 수치로 나타나는 성과가 최우선시되는데, 이런 면에서 수비수가 실력을 인정받기는 아무래도 어렵다”고 귀띔했다. K리그 수도권의 한 유력 구단 스카우터도 “누가 봐도 온갖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쪽은 공격수에 쏠려 있다”며 “현실이 이럴진대 좋은 수비수가 탄생하기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푸념했다.

입력 2010-06-28 11:15:00

  •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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