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0

2010.06.07

인간 한계 넘어선 욕망은 광기를 부른다

‘루이 랑베르’

  •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입력2010-06-07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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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한계 넘어선 욕망은 광기를 부른다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문학동네 펴냄/ 200쪽/ 9000원

    1800년대 초반 프랑스 방돔 기숙학교. ‘시인과 피타고라스’라 불리는 두 단짝 소년의 하루는 오늘도 곤혹스럽다. 학우들의 야유와 교사들의 회초리 세례. 이들이 세트로 ‘왕따’를 당하는 이유는 지나치게 고상해서다. 루이는 전학 첫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 피타고라스라 불리게 됐고 그의 단짝은 몽상에만 전념해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소설은 ‘시인’인 친구가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루이의 지성사를 소고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유년시절 루이는 남달리 조숙했다. 또래 아이들이 흙장난을 하거나 빈둥거릴 때 그는 책을 읽거나 명상했다. 빵과 우유를 사들고 숲으로 들어가 활자를 타고 노닐며 공상에 빠지는 것이 그의 유일한 기쁨. 책과 바람 그리고 바람에 겹겹이 덧입힌 과거의 가르침으로 그의 지성은 하루가 다르게 여물어갔다.

    그러다 열네 살이 되던 어느 날. 루이의 재능을 알아챈 한 귀부인이 후원자를 자처해 그는 곧바로 부모의 품을 떠나 방돔 기숙학교로 보내진다. 반종교적, 반군사적인 오라토리오 수도회 교단 소속 학교. 루이는 그곳에 발을 내딛자마자 가혹한 시간이 펼쳐지리라는 것을 직감한다.

    루이가 오기 전, 4학년 담임교사는 “천재 전학생이 온다”는 소식을 예고한 터다. 술렁이는 교실. 아이들은 “그와 단짝이 되고 싶다”는 설렘과 기대를 나누며 그를 기다린다. 하지만 한 학기가 지나지 않아 루이는 평범한 학생으로 전락한다.

    방돔 학교의 규율은 엄격했다. 사소한 일탈에도 가혹한 처벌이 뒤따랐으며, 그 속에서 학생들은 수도사처럼 변해갔다. 이들의 유일한 숨구멍은 반찬 바꿔먹기와 애완 비둘기 기르기. 하지만 루이와 그의 단짝만은 규율에 순응하기를 거부한 채 ‘마이 웨이’를 외친다. 이들에게 숙제는 의미 없는 속박이요, 수업은 공허한 메아리다. 이들에겐 오히려 독방에 갇혀 사유와 본질에 몰두하는 편이 즐거움이다. 감정, 사유 같은 것만이 ‘시인과 피타고라스’의 관심사인 것.



    전교생의 멸시 속에서도 영혼 깊이 교감하는 단짝이 있어 그들은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아니, 오히려 매일매일 새로운 사유의 발견에 설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로샹보 성’ 사건이 일어난다. 처음 가보는 로샹보 성의 풍경이, 전날 밤 루이의 꿈에 생생히 펼쳐졌던 것이다.

    “엉뚱한 생각이지만, 풍경이 내게로 다가온 게 아니라면 내가 풍경에게 간 걸 거야. 그렇다면 그것은 내 육체와 정신이 완전히 분리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게 아닐까? …만일 부동의 상태에서 어떤 공간을 넘나들었다면, 그것은 우리가 외적 신체의 법칙과 무관한 어떤 내적 능력을 소유했기 때문일 거야.”

    이 경험으로 인간의 무한한 능력을 감지한 루이는 ‘의지론’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학우들의 장난으로 원고가 발각되고, 신부는 “쓸데없는 짓”이라며 내용물을 압수한다. 이후 시인이 학교를 떠나며 두 사람은 절절한 이별을 하게 되고, 오랜 기간 조우하지 못한다. 방돔 학교 이후 루이의 궤적은 그를 돌보던 삼촌과 주고받은 편지, 그리고 연인 폴린 드 빌누아에게 보낸 편지로 갈음된다.

    18세가 된 루이는 파리로 간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지독한 외로움과 고통만을 맛본다. “돈을 버는 어떤 종류의 일도 적성에 맞지 않는” 그는 파리에 대한 환멸을 안고 블루아로 돌아온다.

    블루아에서 루이는 천사성을 내뿜는 빌누아와 사랑에 빠진다. 루이는 그녀와의 사이에 사랑으로 좁힐 수 없는 거대한 심연이 있음을 알면서도 이상적 사랑에 목을 맨다. 결혼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그에게 결국 광기가 찾아든다. 59시간 동안 시선을 한 곳에 둔 채 먹지도 자지도 않는 긴장증. 의사들은 ‘치유 불가’의 진단을 내리지만, 빌누아는 “깊은 명상으로 육체와 정신이 분리됐을 뿐, 미친 게 아니다. 그는 육체가 아닌 다른 형태로 타인을 바라본다”라고 항변한다.

    프랑스 거장 발자크의 이 작품은 이번에 국내에서 초역됐다. ‘나귀 가죽’ ‘미지의 걸작’ 등 20여 편에 이르는 ‘철학 연구’ 시리즈 중 하나다.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 한계를 넘어선 절대 추구의 필연적인 실패. 예민한 기질을 타고나 남다른 것에 탐닉하는 인간 군상이 늘 그 주인공이다.

    루이 랑베르는 발자크 본인의 모습이 투영된 인물이다. 작가는 서술자인 시인과 본인을 동일시하는 듯하지만, 독자들은 루이에게서 발자크의 모습을 본다. 그 역시 어린 시절 무심한 부모 품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했고, 조숙한 사유를 즐겼다. 평전문학의 대가로 꼽히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푸른숲 펴냄)과 ‘루이 랑베르’를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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